황선경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 연구원 사진 황선경
황선경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 연구원 사진 황선경

“상당수의 국내 부자(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보유)는 일반 대중(금융자산 1억원 미만 보유)보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기간(2020~2022년) 중 높은 수익을 올렸다. 최근 설문조사 결과 국내 부자 중 약 30%가 팬데믹 기간에 자산이 10% 이상 증가했다. 반면, 자산이 10% 이상 증가한 일반 대중은 12%에 그쳤다.”

황선경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7월 19일 인터뷰에서 팬데믹 이후 부자들이 자산 증대에 더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2007년부터 부자의 자산 관리 행태를 분석한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를 매년 발표하고 있다. 황 연구원은 2022년부터 이 리포트 발행을 총괄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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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부자들의 포트폴리오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당시 부자의 금융자산 포트폴리오 구성은 현금·예금 41%, 펀드·신탁 28%, 주식 16%, 보험·연금 11%, 기타 4%였다. 팬데믹 발생 첫해인 2020년 부자들은 우선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현금·예금 비중을 46%까지 늘렸다. 주식시장이 급격한 상승세를 보인 2021년에는 반대로 현금 비중을 줄이고 주식 비중을 늘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 결과 부자들의 주식 비중은 2020년 16%에서 2021년 27%까지 11%포인트 상승했다. 2022년에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거듭된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지면서 다시 현금과 채권 같은 안전 자산으로 부자들의 관심이 이동했다.”

팬데믹과 금리 상승이 부자들의 현금 보유를 늘리게 한 건가.
“현금 같은 유동성 자산들은 팬데믹 같은 위기가 왔을 때 안전망 역할을 하기도 하고, 필요시 투자 수익을 극대화시키는 재원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팬데믹뿐 아니라, 2022년 금리 인상 때도 부자들은 현금 보유를 늘렸다. 금리 인상 때문에 일시적으로 예금 선호도가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불확실성에 대비해 현금 보유율을 늘린 측면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부자들은 위기 상황이 닥치면 현금 같은 유동성 자산을 확보하려는 경향을 보여왔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부자들의 포트폴리오에 일어난 변화는 없었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자들에게 다음 해 자산 구성 변화 계획을 물어보면 현재의 자산 구성을 유지하겠다는 응답이 가장 많이 나온다. 실제로도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다만 주목할 만한 특징은 지난 10년간 부자들의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2013년과 2022년 부자의 자산 구성을 비교해 보면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44%에서 55%로 11%포인트 높아졌다.”

글로벌 부자와 한국 부자의 차이점은.
“가장 큰 차이점은 부동산 보유 비중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캡제미니의 ‘월드 웰스 리포트(world wealth report)’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지역별 부자의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유럽이 18%, 북미가 15%로 나타났다. 한국과 가까운 일본 역시 13%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한국 부자 총자산 중 부동산은 54%에 달했다. 또 다른 차이로는 채권 보유 비중의 격차를 들 수 있다. 2021년 기준 지역별 부자의 자산에서 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유럽이 17%, 북미가 20%였다. 반면 한국 부자들의 총자산 중 채권 보유 비율은 1%에 그쳤다.”

한국 부자들의 부동산 보유가 줄지 않는 이유는.
“한국 사회는 부동산으로 부자가 된 경우가 많다. 영리치(49세 이하 부자)조차도 자금을 묶어두는 종착역은 부동산이라고 이야기한다. 부자에게 부동산 투자의 장점은 자산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른 투자자산에 비해 수익률이 우수하다는 점이다. 부자들에게 부동산을 추가로 매입할 계획이 있는지, 아니면 보유한 부동산을 매각할 계획이 있는지 물어보면, 매각보다 매입하겠다는 계획을 가진 응답자가 더 높은 비율을 보였다. 특히 부동산 대출 규제로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던 2022년 부자들의 부동산 추가 매입 의향은 2021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부자들의 가상자산 투자는 어떤가.
“2021년 가상자산 투자에 대한 부자들의 행태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다. 2021년 말 기준 국내 부자 중 7.5%가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자 중에서도 금융자산 규모가 클수록 암호화폐 보유자는 줄어드는 경향이 있었다. 금융자산 100억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의 경우 암호화폐 보유자가 없었다. 부자들이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이유로는 차익 거래를 통한 수익, 장기적 관점에서의 가치 상승 기대감, 포트폴리오 다양화 등이 꼽혔다. 그러나 부자들 중 향후 가상자산 투자 의향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0.8%에 불과했다. 높은 가격 변동성으로 인해 투기 또는 도박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슈퍼 리치의 포트폴리오 특징은.
“2022년 말 기준으로 금융자산 100억원 이상 또는 총자산 300억원 이상을 보유한 국내 슈퍼 리치 1인 평균 총자산은 323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50%가 부동산, 48%가 금융자산, 2%가 기타 자산(귀금속, 예술품, 암호화폐, 회원권 등) 형태였다. 금융자산의 세부 구성은 현금·예금이 58%, 주식이 16%, 보험·연금이 9%, 펀드·신탁이 8%, 채권이 7%였다. 슈퍼 리치 중 73%가 해외 주식과 달러 등을 포함한 외화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들이 보유한 주식 중 약 16%는 해외 주식이었다. 이들은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에는 투자 의향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팬데믹 이후 또는 한국 부자들이 가장 많이 돈을 번 자산을 꼽으라면.
“팬데믹 이후 국내 부자의 자산 증대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준 자산은 부동산을 제외하면 주식이다(부동산은 보유 기간이 길고, 보유 중에는 수익률 계산이 어렵다. 그래서 부동산은 제외했다). 금융자산 100억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들 3명 중 1명꼴로 주식이 가장 큰 수익을 안겨줬다고 답했다. 다음은 정기예금이었다. 이는 팬데믹으로 인한 금융시장 변화와 맥을 같이하는 결과다. 팬데믹 초반 불안감으로 주식시장이 폭락했다가 반등했고, 중·후반에는 금리 인상이 거듭됐으니 주식과 정기예금이 수익률 효자일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가장 부정적 영향을 준 자산 또한 주식이었다. 그만큼 변동성이 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향후 부자들의 자산 포트폴리오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 같나.
“내년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팬데믹 이후 유동성 공급 확대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심화되면서 고강도 긴축정책과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 최근 원자재 가격이 내려가고, 인플레이션이 다소 완화되면서 고강도 긴축 기조는 마무리 단계에 돌입한 모습이다. 현재 국내 시장에도 한국은행이 네 차례 연속으로 금리를 동결하면서 긴축 사이클이 종료됐다는 기대감이 확산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경우 대출금리 인하, 저점 인식 등으로 주택 매입 여건이 개선되면서 매매가격 하락세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부동산 시장이 내년부터 회복될 것으로 예측된다. 부자들의 투자 의향이 가장 높은 자산 1순위가 부동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부자들의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부동산 투자 비중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심민관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