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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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한 딜로이트 리더십 회의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는 인공지능(AI)이었다. AI는 콘퍼런스 의제였을 뿐 아니라 딜로이트 리더 대화에서도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내가 대화를 나눈 리더들 중 적어도 두 명은 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AI를 주제로 과제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딜로이트가 속한 전문 서비스 산업과 상당수 고객에게 AI가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문제는 AI가 경제성장 속도를 가속화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또 그것이 가능하다면 언제가 될지이다. 유수의 경제학자가 이 문제에 대해 논쟁하고 있다.

아이라 칼리시 
딜로이트 투쉬 토머츠 
리미티드 수석 글로벌 
이코노미스트
배서칼리지 경제학,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박사
아이라 칼리시 딜로이트 투쉬 토머츠 리미티드 수석 글로벌 이코노미스트
배서칼리지 경제학,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박사

과거 경험을 보면, 신기술이 도입돼도 생산성 증대가 실제로 나타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과 기업이 신기술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AI도 비슷한 과정을 밟을 가능성이 크지만, 일각에서는 AI는 너무도 혁명적인 기술이고 매우 빠르게 도입될 수 있기 때문에 ‘이번엔 다르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빠른 시일 내에 생산성이 대폭 증대되는 한편 노동력이 파괴적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생산성은 노동 시간당 산출량이 증가할 때 향상된다. 생산성이 향상되면 일부 일자리가 사라져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경제적 파이가 더 커질 수 있다. 없어진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정도로 고용 수요가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근로자의 여가 시간이 더 늘어나는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신기술은 이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전혀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상용화됐을 때 고속도로 건설, 자동차 보험, 자동차 수리, 패스트푸드 레스토랑과 모텔 등 전에 없던 새로운 산업이 생겼다.

생산성은 신기술이 사람의 일과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때 향상된다. 1980년대 초 기업들이 앞다퉈 개인용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도입했으나 즉각적으로 이렇다 할 생산성 증대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인류는 똑똑한 종이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이용해 일과 삶의 프로세스가 실제로 변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결국 컴퓨터 도입이 생산성을 향상한다는 사실이 수치로 증명된 것은 1990년대 말에 가서다. AI의 경우도 앞으로 10년간 생산성 증대 효과를 보지 못할 수 있다.

생성 AI ‘생산성’ 둘러싼 논쟁

오픈AI의 챗GPT 같은 생성 AI의 도입이 결국 생산성에 상당한 영향을 주겠지만, 이것이 과거 신기술만큼의 파급효과가 있겠느냐를 둘러싼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경제학자 중에서는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로버트 고든 교수가 가장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고든 교수는 대략 1870년부터 1970년까지를 생산성이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향상된 황금기로 보고, 이는 다시 재현되지 않으리라 전망한다. 이 100년간 도입된 신기술이야말로 인간이 이동하고 상호 메시지를 교환하고 재화를 생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했기 때문이다. 말을 타고 다니던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기 시작하면서 생산성이 극적으로 향상됐고, 전력망이 도입되면서 근로자 1인당 생산능력이 대폭 증가했으며, 전신과 전화가 도입되면서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혁명적으로 단축됐다. 고든 교수는 이와 비교하면 1970년 이후 도입된 기술들은 앞선 시대의 신기술만큼 인류의 삶을 극적으로 바꿔 놓지 못했다며, 앞선 황금기에 나타난 생산성 향상이 다시 반복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AI가 패턴 인식 등 능력을 통해 일부 프로세스의 속도를 높일 수는 있겠지만, 내연기관 엔진 도입 같은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힘은 없다고 봤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주장도 있다. 기타 고피나트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는 “AI는 특정 인지 임무를 자동화하는 한편 사람이 더욱 생산성이 높은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게 해줌으로써 생산성을 향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계가 틀에 박히고 반복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사람은 창의적인 혁신과 문제 해결 등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대다수 근로자가 이러한 전환을 할 수 있어야만 그 효과가 축적돼 전반적인 생산성 향상이 이뤄질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인적자원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과거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향상됐던 시기를 되돌아보면, 사람들은 이러한 전환을 비교적 쉽게 받아들였다. 농장에서 일하던 중국 근로자가 공장 근로자로 탈바꿈한 것을 보라. 기본적인 교육을 받았다면 훈련만 제대로 하면 생산성이 높은 새로운 업무를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다. 중국은 이러한 전환을 대대적으로 이뤘고, 결국 고속 경제성장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AI, 제대로 활용해야 생산성 향상

그렇다면 AI가 확산하면 대다수 근로자가 첨단 기술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혁신적 문제 해결사로 거듭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알 수 없다. 인류가 AI가 가져올 변화에 준비돼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생성 AI가 노동시장에 어떠한 파괴적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AI는 많은 근로자를 기계로 대체할 수도 있고, 또한 기존 근로자의 생산성을 증강할 수도 있다. 나아가 이는 대규모 근로자를 채용하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수도 있다. AI로 인해 기업들이 요구하는 스킬(실무 능력)의 종류가 달라질 수 있다. 노동력의 스킬 구성이 이에 맞춰 변화하지 못한다면, 소득 불평등이 심화하고 AI가 제공하는 혜택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고피나트 수석 부총재는 노동시장의 파괴적 변화로 대다수 중간급 일자리가 AI로 대체돼 소득 불평등이 한층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AI가 인류에게 혜택을 주거나 승자가 얻은 이익이 패자가 잃은 것을 충분히 상쇄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할 뿐 일자리를 뺏긴 사람들이 차지할 수 있는 더욱 생산적인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을 가능성도 다분하다”는 경고음을 냈다. 또한 AI의 도움으로 자유로워진 근로자의 시간이 생산성 향상에 쓰이지 않으면, AI 도입 초기에는 생산성이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3년 고용 전망’ 보고서에서 노동 대체 가능성을 집중 조명해 “자동화로 사라질 위험이 가장 높은 일자리는 약 27%”라고 발표했다. OECD는 AI가 일자리를 대체할 뿐 아니라 일자리의 형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다. OECD 서베이에 참여한 근로자 중 “AI가 일자리 품질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답한 비율이 63%에 달했다. AI 혁명으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스킬과 더불어 ‘휴먼 스킬(human skill)’도 오히려 훨씬 중요해진 것이다. OECD는 AI가 사람 근로자를 대신하기보다 사람이 하는 일의 형태를 바꾸는 데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전체적으로 볼 때 가장 부정적인 시나리오는 AI로 인해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노동력이 이를 활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아, AI로 얻을 수 있는 생산성 향상이라는 열매를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성 AI가 인류의 경제적 ‘웰빙’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업들과 더불어 딜로이트가 속한 전문 서비스 분야가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상당수 대기업은 이미 AI 투자에 열심이다. 일부는 AI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그 효과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AI 투자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이러한 투자 열기가 형성되고 있는 만큼, 전문 서비스 산업은 무모한 투자와 실질적으로 효율성을 대폭 개선해줄 투자를 구분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임무를 맡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