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가 시장이 초양극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돌이켜보건대 상가 시장은 코로나19가 대유행했던 지난 3~4년 동안 정부 주도의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 두기(집합 금지 명령, 영업시간 제한 등)로 상권 쇠퇴, 매출액 감소, 공실 증가, 자영업자 줄폐업이라는 사상 초유의 암흑기를 피할 수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올해 들어 위드코로나(With Corona·단계적 일상 회복) 내지 탈코로나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대한민국 상가 시장도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는 모양새다. 다만 상가 시장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양극화를 넘어 초양극화 시대로 재편되고 있다는 게 다소 낯설 뿐이다. 좀 더 상세히 살펴보자.
1│상가 공실률이 말해주는 초양극화 시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대한민국 상가 시장은 이른바 ‘될 곳만 되는’ 초양극화 시대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상가 시장의 활성화 정도를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로 ‘상가 공실률’이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최근 발표한 ‘2023년 2분기 상가(중대형, 소규모, 집합 상가) 공실률’을 살펴보면, 지역별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음은 물론, 더욱 세분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서울 및 수도권(경기·인천)의 집합 상가 공실률(5~8%)은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는 반면, 지방의 경우 경북(26.8%), 전남(22.5%), 울산(18.2%), 세종(15.7%) 등 상당수 지역이 두 자릿수 공실률을 기록하고 있다. 상가 시장이 지역에 따라 양극화를 보이는 것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 같은 지역별 양극화 현상이 과거보다 더욱 세분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같은 서울이라도 도심과 강남의 차이는 제법 커 보였다. 서울 도심의 집합 상가 공실률이 11.0%, 중대형 상가는 15.3%, 소규모 상가는 8.8%이지만, 서울 강남의 경우 집합 상가 공실률이 5.4%, 중대형 상가는 8.0%, 소규모 상가는 0.9%로 나타났다. 한편 같은 서울 강남(광역 상권)일지라도 좀 더 국지적으로 들여다보면 서로 많이 다른데, 일례로 강남의 하위 상권인 압구정의 경우 집합 상가 공실률이 1.8%, 중대형 상가 공실률 역시 3.5%에 불과했지만, 논현역의 경우 집합 상가는 10.2%, 중대형은 17.1%에 달했다. 이처럼 비록 같은 서울, 같은 강남일지라도 상가 시장의 온도 차는 확연했다. 될 곳만 되는 상가 시장 초양극화 시대가 자리한 것이다.
2│MZ 세대를 잡은 상권만 떴다
상권의 흥망성쇠는 주 소비층을 얼마나 많이, 또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한민국의 상권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10~30대 연령층으로 구성된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다. 실제로 이들은 핫플레이스를 찾아 대한민국 곳곳을 돌아다녔으며, 없는 상권을 만들거나 미약한 상권을 확장 강화했다. 관련하여 대표적인 사례로 ‘힙지로(힙한 을지로) 상권’을 들 수 있다. 사실 힙지로 상권은 MZ 세대가 찾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인쇄소, 조명 가게, 공구상, 음식점 등이 혼재된 그저 평범한 도심지 뒷골목 상권이었다. 하지만 MZ 세대를 붙잡고 난 뒤부터는 새로 생긴 가게만 해도 수백 개가 넘을 정도로 제대로 뜨면서 유명 상권으로 자리했다. 반면 MZ 세대의 철저한 외면으로 상권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고전하고 있는 곳도 적지 않았다. 전통 시장, 대학가, 아파트단지, 오피스타운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 기존 상권의 경우 경기침체와 맞물려 공실이 꾸준히 늘고 있다. MZ 세대를 잡은 상권과 그러지 못한 상권 간의 갭은 향후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확산할 전망이다. MZ 세대가 본의 아니게 상가 시장 초양극화 시대의 마중물이 된 것이다.
3│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답이다
코로나19 장기화 및 고금리에 따른 가처분소득 감소로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된 가운데 기존의 가두 상권(거리 상권)은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지만,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보유한 골목 상권은 핫플레이스로 거듭나 수많은 사람의 환대를 받고 있다. 비록 골목에서 출발했지만, 스토리가 담긴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보유함으로써 젊은 층의 무한 유입과 함께 명품 상권으로 거듭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 상권을 들 수 있다. 익선동 한옥마을은 전통과 상권이 한데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으로 유명하며, 10~20대에서부터 30~40대, 50~6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에서 선호하는 최고의 핫플레이스다. 서울 종로구 도심 한복판에서 100년 된 한옥마을을 구경할 수 있고 퓨전식으로 개조된 카페, 음식점, 각종 숍이 상당수 자리 잡고 있어서 매력적이다. 상가 시장 초양극화 시대를 이끌어갈 비법은 오로지 경쟁력 있는 콘텐츠뿐이다.
4│트렌드에 민감하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금까지도 전통 상권(가두 상권)은 소비층의 구매력 감소로 곤란을 겪고 있는 반면, 트렌드 리딩 상권(익선동 상권, 힙지로 상권, 열정도 상권, 망리단길 상권 등)은 최신 트렌드와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MZ 세대의 구애에 힘입어 나름 호황을 누리고 있다. 트렌드는 단순히 유행하다 소멸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시대 전환기에 소비 행태가 달라지는 방향을 확인하고 미래의 변화 형태를 가늠하는 척도로 기능한다. 실제로 트렌드 리딩 상권에 입지한 점포의 경우 임대료 하락은커녕 상승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최대 소비층이라고 말할 수 있는 MZ 세대의 경우 최신 트렌드에 관심이 많고, 이색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세대인 만큼 쇠락하는 전통 상권보다는 그들이 선호하는 트렌드 리딩 상권에 투자하는 편이 좋아 보인다.
한편 근래 들어 각종 무인점포가 지역 상권으로 빠르게 유입되고 있는데, 이는 경기침체가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인건비 부담과 겹치면서 그 해결 방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인점포는 그 유형도 매우 다양한데, 아이스크림, 스낵, 신선식품, 편의점, 노래방, 빨래방에서부터 사진관, 세차장, 성인용품점, 모텔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격히 늘어난 무인점포가 이제는 상권 트렌드로 완전히 자리한 모양새다. 점포의 무인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추세가 됐다. 트렌드는 상가 시장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매우 중요한 변수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5│지금은 SNS 시대
각종 소셜미디어(SNS)는 상가 시장의 초양극화를 가속화하는 매개체로써 왕성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상가 시장의 주 소비층인 MZ 세대의 경우 자신들이 직접 겪었던 소소한 경험담을 SNS로 타인과 소통하는 것을 즐겨한다. 만일 스토리텔링만 된다면 당장 어디든 찾아갈 기세다. SNS가 상가 시장의 초양극화 시대를 가속화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