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출렁다리는 짜릿함을 안겨준다. 사진 최갑수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출렁다리는 짜릿함을 안겨준다. 사진 최갑수
철원 하면 안보 관광을 떠올린다. 아마 노동 당사와 백마고지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이제는 철원에 대한 이런 인식은 조금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외국 못지않은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한탄강 주상절리길과 철원 여행의 새로운 즐거움이 된 모노레일, 철원 지역 작가들의 전시회가 이어지는 아트하우스 등 볼거리, 놀거리가 가득한 곳이 바로 강원도 철원이다.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용암이 만들어 낸 비경

한탄강은 철원을 관통하는 강이다. 북한에서 발원해 철원과 포천을 거쳐 연천에서 임진강과 합류한다. 50만 년 전 화산이 폭발해 마그마가 흐른 자리에 만들어진 강이다. 북녘땅 평강군 오리산에서 수차례 마그마가 분출했고 한탄강을 따라 철원과 포천, 연천을 지나 파주, 문산까지 100㎞ 이상 흘러왔다. 그리고 마그마가 천천히 식어가면서 현무암이 됐고, 용암대지가 강의 침식작용으로 주상절리가 만들어졌다. 좁고 가파른 협곡인 까닭에 물살이 센 여울이 많다. 한탄강(漢灘江)이란 이름은 ‘큰 여울이 많은 강’이라는 뜻이다.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으로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7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됐다.

한탄강 일원에는 화산이 만들고 자연이 가꾸어 온 암석과 지질 경관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철원의 주상절리도 그중 하나다. 예전에는 한탄강 주상절리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했다. 지금은 걷기 좋은 잔도(棧道)가 있어 트레킹하며 짜릿한 비경을 즐길 수 있다. 잔도는 험한 벼랑 같은 곳에 선반처럼 매단 길이다. 중국 장가계의 잔도가 유명하다. 한탄강 잔도는 까마득한 벼랑을 따라 걷는다. 지상에서 20~30m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길이 3.6㎞나 이어진다. 벌써 입소문이 나서 개장 1년 동안 100만 명 이상이 방문했다고 한다.

순담계곡에서는 래프팅도 즐길 수 있다. 사진 최갑수
순담계곡에서는 래프팅도 즐길 수 있다. 사진 최갑수

트레킹의 시작점은 두 곳이다. 강원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 드르니마을 매표소와 순담매표소 중 어느 곳에서 시작해도 좋다. 길은 웅장한 현무암 협곡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부를 만하다. 드르니마을은 ‘왕이 들렀다가 간 마을’이라는 뜻이다. 태봉국을 세운 궁예가 고려 왕건에게 쫓겨 피신할 때 이 마을에 들렀다가 나갔다고 한다. 벼랑에는 50만 년 전에 생긴 현무암과 1억 년 전에 생긴 화강암이 섞여 있다. 스릴 넘치는 포인트도 곳곳에 있다. ‘순담스카이 전망대’는 잔도에서 벼랑을 끼고 허공으로 철제 로프를 매달아 반원형의 길을 냈다. 허공에 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바닥은 유리다. 발아래로는 굽이치는 강물이 보인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리털이 곤두선다. 

절벽 사이를 잇는 잔교도 13개나 된다. 걸음을 뗄 때마다 출렁인다. 13개의 잔교 이름은 주변의 지질 구조에 따라 지었다. 단층교, 선돌교, 돌개구멍교, 수평절리교 같은 식이다. 예컨대 ‘돌개구멍교’에선 강물에 쓸려온 자갈이 기반암에 뚫어 놓은 돌개구멍이 보이고, ‘수평절리교’ 건너편에는 길쭉한 합판 모양의 지층이 켜켜이 쌓인 수평절리가 보인다. 길은 평탄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별 어려움 없이 걸을 수 있다. 마실 물만 넉넉하게 준비하면 된다.

고석정 입구의 임꺽정 동상. 사진 최갑수
고석정 입구의 임꺽정 동상. 사진 최갑수

임꺽정이 숨어 살았다는 곳

한탄강 일원에는 고석정, 직탕폭포, 삼부연폭포 등 지질 명소가 많다. 철원을 대표하는 명승지는 단연 고석정이다. 고석정은 철원 제일의 명승지다. 치솟은 10여m 높이의 거대한 기암이 우뚝하게 솟아 있고, 그 양쪽으로 옥같이 맑은 물이 휘돌아 흐른다. 일찍이 신라 진평왕 때 바위 옆으로 정자를 짓고 ‘고석정’이라 이름 지었단다. 지금 보이는 정자는 한국전쟁 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지금은 바위와 정자, 일대의 협곡을 통틀어 고석정이라 부른다. 조선 시대에 홍길동, 장길산과 함께 3대 도적이라고 명명되었던 임꺽정이 활동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고석정의 신기한 모양 역시 용암과 강물의 합작품이다.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용암대지를 한탄강 물줄기가 이리저리 깎으면서 독특한 지형이 형성된 것이다. 솟아오른 바위를 중심으로 좌우 모습이 다른 것도 신기하다. 정자가 있는 쪽은 현무암이 급격히 식으면서 주상절리를 만들었고, 반대편은 화강암이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었다. 

고석정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작은 농업전시관’ 호미뜰은 철원 지역 농민의 손때 묻은 농기구와 생활 도구 등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호미뜰은 ‘농부의 방’ ‘농부의 창고’ ‘농부의 부엌’ ‘농부의 사진관’ 등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예전에 민통선 안쪽에서 농사짓기 위해 출입증을 걸어 놓은 모습 등 철원 지역의 농사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농부의 사진관’이 특히 눈길을 끈다. 그 시절 농민의 생활을 보여주는 ‘농부의 방’도 볼 만하다. ‘농부의 교실’ ‘농업 역사관’ 등으로 구성된 문화 체험 공간에서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철원의 대표적 여행지 고석정. 사진 최갑수
철원의 대표적 여행지 고석정. 사진 최갑수

한국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곳

소이산은 한반도 내륙에서 관찰되는 유일한 용암대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해발 362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주변에 더 높은 산이 없어, 이곳 정상에 서면 철원평야와 옛 시가지 흔적, 휴전선 너머 북한 땅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용암대지는 용암이 흘러들어와 넓게 퍼지면서 낮은 곳을 메꾸어 생긴 땅이다. 용암 두께는 약 20~30m에 달한다고 한다. 소이산은 모노레일을 타고 오른다. 옛 철원역을 재현한 곳에서 출발한다. 8인승 차량 네 대가 왕복 1.8㎞에 달하는 코스를 30여 분 동안 운행하며 상부 승강장에서부터 약 200m의 데크길을 따라 올라가면 소이산 정상 전망대에 도착한다.

철원역은 서울에서 원산을 잇는 경원선의 중간 기착지이자 일제강점기부터 금강산 관광열차가 출발하던 교통의 요지였다. 1937년 기준으로 승하차 인원 약 28만 명, 수하물 6만3000t을 수송하며 역무원만 80여 명이 근무했다고 한다. 역에서는 옛날 대합실 풍경과 그 시절 열차 노선도를 볼 수 있다.

정상 전망대에는 문화 해설사가 상주해 자세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용암으로 덮이지 않아 섬처럼 남아있는 동산 중에는 한국전쟁 최대의 격전지였던 백마고지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중공군의 대공세에 의해 10여 일간 지속된 전투는 30만 발의 포탄을 퍼붓고 고지 주인이 무려 20번이 넘게 바뀔 만큼 치열했다. 이 전투에서 국군 3000여 명, 중공군 1만4000여 명이 전사했다. 백마고지 동쪽엔 또 다른 격전지 아이스크림고지가 있다.

여행수첩

먹거리 철원에는 막국수를 잘하는 집이 많다. 풍전면옥은 직접 면을 뽑는데, 메밀국수 특유의 묵직한 맛이 살아있다. 신철원의 철원막국수는 60년 3대의 전통을 자랑하는 곳. 새콤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곁들이는 편육, 녹두빈대떡 등의 메뉴가 기다린다. 신철원의 고향식당은 깊고 구수한 맛이 나는 짬뽕으로 인기 있다. 철원식당의 순댓국에는 내장이 듬뿍 들어 있다.

철원의 문화를 만나다 옛 철원역 주변으로는 당시 철원읍 시가지를 재현한 철원역사문화공원이 자리한다. 이곳에는 옛 철원금융조합과 강원도립철원의원, 철원극장, 철원보통공립학교 등 옛날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옛 건물에 담긴 이야기를 읽고, 실내에 전시한 그 시절 물건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올해 문을 연 아트하우스는 지역 작가들과 주민, 관광객 등을 이어주는 전시 공간이다. 철원 지역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미술 작가들이 전시회를 열고, 예술 체험과 주변 관광까지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