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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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에 들어서며 오랜만에 제약·바이오 업종의 주가가 올랐다. 제약·바이오 업황이 좋아졌고, 이차전지 관련주 쏠림이 완화되며 증시 전반적으로 수급이 좋아진 덕분이다. 이는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지만, 국내 제약·바이오 업종에 투자한 경험이 풍부한 투자자라면 지금 같은 때일수록 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제약·바이오 업종에서 특정 종목이 가파르게 주가를 견인해 왔던 과거 사례를 돌이켜보면, 지금 같은 전환점이 제약·바이오 업종에서는 가장 중요한 투자 시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제약·바이오 업황이 좋아진 것이 어제오늘 일만이 아니다. 제약·바이오 업종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연구개발(R&D) 역량이라고 볼 수 있다면 실제로 국내 제약·바이오 업종은 2015년 한미약품의 역사적인 기술 수출 이래로 끊임없이 옥석 가리기를 겪으며 펀더멘털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갑자기 제약·바이오 업황이 좋아졌다고 보기에는 애매하고 그렇다면 단순히 증시 순환매 효과로 주가가 오르는 것이라면 대외 환경의 변수에 취약한 제약·바이오 업종에 선뜻 투자하기란 쉽지가 않다. 하반기에 제약·바이오 업종에 투자하라는 의견이 앞다퉈 나오고 있는 요즘 투자자는 과연 뭘 믿고 제약·바이오 업종에 투자할 수 있을까. 과연 제약·바이오 투자 심리가 살아나는 것은 맞을까.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닐 것이다.

엄여진 부국 캐피탈
PE금융팀장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부국 캐피탈 PE금융팀장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과거와 다른 제약·바이오 시장

제약·바이오 업종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투자 모멘텀이 기존과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제약·바이오 투자를 둘러싼 시장이 그동안의 학습 효과로 인해 전반적으로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우선 제약·바이오 기업부터 달라지고 있다. 2000년대에 설립돼 상장한 1세대 제약·바이오 벤처기업 중에서 20년 넘게 만년 유망주인 곳들도 있고, R&D 결실을 본 곳들도 있다. 특히 LG화학(옛 LG생명과학)을 필두로 대기업 출신 경영진이 창업한 회사가 기존에는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제 선봉에서 R&D를 이끌던 경영진들의 은퇴 시기가 다가오며 R&D를 이끄는 리더십이 다양화하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신약 개발뿐만 아니라 제약·바이오 업종 내에서도 인공지능(AI) 기술 등이 접목되며 R&D 역량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층화되는 추세다. 또한 제약·바이오 기업의 상장 관문이었던 기술성 평가 기준 또한 까다로워지고 있다. 제약·바이오 기업이 어느 정도의 평판이 있으면 통과시켜 주던 시대는 이미 옛날에 끝났다. 아무리 기술이 복잡하고 어려워도 일정 수준의 정량적 기준에 미달하면 과감하게 탈락시키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기술성 평가를 놓고 객관성에 대한 논란은 많으나 정량적 심사를 강화해서 예측 가능성을 높이자는 공감대가 시장에서 형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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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해진 투자자들

주목할 것은 투자자들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일반 투자자들도 이제는 제약·바이오 기업의 ‘라이선스 아웃(기술수출 계약)’ 뉴스에 쉽사리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이제 애매모호한 호재성 공시에 낚이지 않고 라이선스 아웃 뉴스가 나와도 현 주가와 비교해서 상승 여력이 있는지를 꼼꼼히 살펴볼 만큼 평균적으로 제약·바이오 업종에 대한 이해도가 깊다.

이는 일반 투자자만이 아니라 기관투자자들도 마찬가지다. 제약·바이오 투자 전문성에 대해 이제는 학력과 제약·바이오 업계 경력만 앞세워서는 덮어놓고 믿어주지 않는 분위기다. 이는 전문성을 표방해 선발된 운용역들이 기본적인 투자 역량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운용에 투입되며 운용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관련 전공을 중점적으로 뽑다 보니 기초적인 투자 용어조차 모르거나 투자에 필요한 재무 및 법규 관련 지식도 거의 갖추지 못한 운용역들이 양산되며 이에 대해 자체적으로 자정 작용이 이뤄지고 있다.

제약·바이오 기업과 밀접한 관계인 초기 투자자들이 바뀌며 투자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는데 초기 투자 역할을 수행하는 액셀러레이터(AC)나 벤처캐피털(VC)이 그러하다. 최근 몇 년간 이들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며 투자 규모뿐만 아니라 운용역 개개인의 투자 역량도 현저하게 떨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우선 미국의 모더나가 세운 헬스케어 전문 VC ‘플래그십 파이오니어링(Flagship Pioneering)’을 표방하며 국내에서도 기술 전문성을 앞세우는 AC들이 많았으나 아직 자생할 만큼의 체력을 갖추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제약·바이오 전문 AC가 제약·바이오 관련 전공의 박사급 운용역들과 제약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의 대표 펀드매니저를 확보해도 실제로 이들의 지식수준은 첨단 제약·바이오 기업에서는 말단의 연구개발 인력 수준에 상응하기에 기술을 자문하거나 글로벌 제약사들에 소개해 주기에도 역부족이다. 이에 대한 벤처기업의 거부감도 상당해서 어떤 제약·바이오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는 “누가 누굴 돕냐”며 코웃음을 치기도 한다.

이젠 ‘꿈’만으론 부족…수익성 검증해야

이와 같이 투자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은 결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급격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 제약·바이오 업종 내에서 실적주와 R&D 모멘텀 주식을 나누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정도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바뀌었다.

실적이 나오는 곳 중에 R&D 안 하는 곳이 없고, 파이프라인(신약후보물질)만 있던 곳 중에서 기술 수출로 연간 몇백억원 이상의 로열티를 내는 곳들이 있다. 이는 일부 기업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제약·바이오 업종의 전반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변화했기 때문에 제약·바이오 기업의 벨류에이션(기업 가치 산정)이 달라졌다. 제약·바이오 업종은 꿈을 먹고사는 주식이라고 보기보다는 다른 업종처럼 수익성을 검증해 내는 시대가 됐다.

결론적으로 제약·바이오 업종은 제2의 리레이팅(재평가) 국면에 들어갈 것이다. 다만 몇 년 전 제약·바이오 버블 시대처럼 실체도 알기 힘든 임상에 돌입했다고 주가가 몇 배 오르던 시절은 끝났다. 제약·바이오 업종도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시장의 냉정한 잣대를 기준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일반 제조 업체의 주가가 결국은 실적과 수주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처럼 제약·바이오 업종도 결국 실적과 라이선스 아웃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예전같이 기대감만으로 투자한다면 앞으로 제약·바이오 업종에 대한 투자는 결코 성공하기 어렵다. 투자의 결과는 항상 본인의 몫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