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신 친나왓(가운데) 전 태국 총리가 8월 22일 수도 방콕 돈므앙 공항에 도착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친(親)탁신계 정당인 프아타이당을 이끄는 
탁신의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오른쪽)이 안내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
탁신 친나왓(가운데) 전 태국 총리가 8월 22일 수도 방콕 돈므앙 공항에 도착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친(親)탁신계 정당인 프아타이당을 이끄는 탁신의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오른쪽)이 안내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

탁신 친나왓(74) 전 태국 총리가 15년간의 해외 도피 생활 끝에 8월 22일 태국으로 돌아왔다. 2008년 부정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해외로 도피한 그는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이 이끄는 친(親)탁신계 정당 프아타이당의 집권이 유력해지면서 사면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보고 귀국한 것으로 풀이된다. 

로이터통신·타이PBS 등에 따르면, 탁신 전 총리는 8월 22일 오전 개인 전용기를 타고 방콕 돈므앙 공항에 도착했다. 패통탄 등 가족을 만난 탁신은 공항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이후 태국 국왕 라마 10세의 초상화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며 예를 표하고, 공항 주변에 모여든 지지층에게 두 손 모아 인사하며 손을 흔들었다. 이날 태국 방송들은 실시간으로 탁신의 귀국 장면을 중계했다.

이후 탁신은 대법원으로 이동해 8년 형을 선고받은 뒤 방콕의 한 교도소로 이송됐다. 망명 중 미얀마 차관(借款·정부나 기업 간 대출) 불법 승인, 통신사 주식 불법 보유, 디지털 복권 발행 관련 비리 등 부정부패 혐의 세 건에 대해 8년 형이 확정돼 구금 절차를 밟은 것이다. 태국 교정 당국은 고령과 기저 질환을 고려해 탁신을 교도소 내 병원의 1인 병실에 입원시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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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신의 귀환 

탁신은 20여 년간 군부와 태국 정치를 양분해온 탁신계의 수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통신 재벌 출신인 그는 2001년 총선에서 총리에 올랐고, 2005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연임에 성공했다. 특히 도시 서민과 농민 등을 지원하는 이른바 ‘탁신노믹스’ 정책을 펼치며 저소득층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왕실과 군부 등 기득권 세력과 갈등을 빚었고, 2006년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상황에서 군부 쿠데타로 실각했다. 이후 해외에서 생활하던 탁신은 2008년 2월 귀국했으나 그해 8월 부정부패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다시 출국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영국 런던 등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그러나 탁신은 해외에서도 태국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레드 셔츠’로 불리는 농민과 도시 빈민층의 지지로 탁신계 정당은 선거에서 승승장구했다. 2008년에는 탁신의 매제 솜차이 웡사왓이 총리로 선출됐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집권당 해체 판결로 3개월 만에 사퇴했다. 탁신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은 프아타이당 소속으로 2011년 태국 첫 여성 총리가 됐지만, 2014년 헌법재판소가 권력 남용을 이유로 해임 결정을 해 쫓겨났다. 

정치적 혼란 속에 2014년 5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쁘라윳 짠오차 현 총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2000년대 태국 정치는 이처럼 탁신 세력과 군부로 대표되는 반(反)탁신 세력이 양분해 왔다. 이번 귀국으로 탁신은 2006년 쿠데타 이후 17년간 이어온 해외 생활을 마치게 됐고, 2008년 이후 15년간의 도피도 막을 내리게 됐다. 

탁신의 귀국은 태국 군부와 그의 사면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했다는 기대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태국 현지 언론 방콕포스트는 “탁신 전 총리는 왕실에 사면을 요청할 것이며, 그가 사면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귀국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탁신의 딸 패통탄이 이끄는 프아타이당의 집권이 유력해지면서 사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프아타이당이 군부와 연정으로 (군부가) 집권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대가로 탁신의 징역형을 사면받게 됐다는 것이다. 태국 현행법은 유죄 판결을 받은 70세 이상 국민은 왕실 사면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국 BBC는 “(탁신의) 사면까지 과정이 한두 달 정도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타 타위신(가운데) 전 산시리 회장이 8월 22일 태국 총리로 선출됐다. 
그는 탁신 전 총리의 측근으로 알려졌다. 사진 AFP연합
세타 타위신(가운데) 전 산시리 회장이 8월 22일 태국 총리로 선출됐다. 그는 탁신 전 총리의 측근으로 알려졌다. 사진 AFP연합

탁신계 세타, 군부 손잡고 총리 등극 

군부와 탁신계의 대결 구도로 관심을 모았던 올 5월 하원 500석을 뽑는 총선에서 프아타이당은 징병제 폐지, 왕실 모독죄 개정 등 개혁적인 공약을 내건 전진당(MFP)에 밀려 2위를 차지했다. 예상 밖의 결과였고, 프아타이당은 전진당이 주도한 민주 진영 야권 연합에 참여했으나,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 대표가 선거법 위반 논란 등으로 의회 총리 선출 투표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후 정부 구성 주도권을 넘겨받은 프아타이당은 전진당을 배제하고 왕실 모독죄를 개정하지 않는 조건으로 앙숙인 군부 정당을 포함한 보수 세력과 손잡았다. 8월 17일 프아타이당은 군부와 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5일 후인 22일 탁신이 귀국했다. 

탁신이 돌아온 22일 오후 태국 의회는 프아타이당이 내세운 세타 타위신(60)을 총리로 선출했다. 태국 총리 선출은 군부가 2017년 개정한 헌법에 따라 군정이 임명한 상원 의원 250명과 총선에서 선출된 하원 의원 500명이 참여한다. 하원에서 과반 지지를 얻어도 보수 기득권 세력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집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날 열린 태국 상·하원 합동 총리 선출 투표에서 세타는 프아타이당이 결성한 정당 연합의 단독 후보로 지명돼 과반을 득표했다. 세타는 태국의 대형 부동산 개발 업체 산시리 회장 출신으로 지난 5월 총선을 앞두고 경영에서 손을 떼고 정계에 입문한 정치 신인이다. 그는 정치인이 되기 전부터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며 가깝게 지내온 것으로 전해졌다. 프아타이당 등은 패통탄을 외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내각 구성안을 미리 마련한 상태다. 

이에 따라 탁신계 정당과 군부계 정당이 ‘공동 집권’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앙숙이었던 탁신계와 친군부 정당의 정권 내 권력 다툼과 제1당에 오르고도 야당으로 전락한 전진당 지지자들의 시위 등으로 태국 정국의 혼돈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국 혼란은 태국 경제에도 불안 요소다. 태국의 올 2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1.8%에 그쳤다. 1분기(2.7%)는 물론 시장 예상 중앙치 3.1%를 크게 밑돌았다. 영국 경제 분석 기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5월 총선 이후 정부 부재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줬고, 시간이 지날수록 불확실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