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엔터는 지난 3월 ‘K팝 왕국’ SM을 인수했다. 사진은 SM의 걸 그룹 에스파. 사진 SM
카카오엔터는 지난 3월 ‘K팝 왕국’ SM을 인수했다. 사진은 SM의 걸 그룹 에스파. 사진 SM

7년 만에 퍼즐이 모두 맞춰졌다. 카카오는 2016년 음악 서비스 회사 ‘멜론(Melon)’을 운영하는 콘텐츠·연예 기획사 로엔엔터테인먼트 지분의 76.4%를 1조8700억원에 인수한 후 엔터테인먼트 제국 건설을 위해 수십 건의 인수합병(M&A)을 단행해 왔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엔터)는 K콘텐츠 산업에 대한 비전을 내세워 영토 확장에 필요한 전투 자금도 숨 가쁘게 확충했다. 지난 3월 ‘K팝 왕국’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를 인수한 것은 이 장정의 화룡점정이었다. 

이제 눈여겨볼 것은 카카오엔터가 만든 ‘K팝+K스토리+K미디어’가 얼마나 큰 위력을 만들어 낼 것인가다. 카카오엔터는 7년간의 장정을 통해 스토리(웹툰·웹소설)-미디어(드라마·영화 제작)-음악(기획·제작, 스트리밍)에 이르는 수직 계열화한 엔터테인먼트 생산 체계를 만들었다. 이 체계가 아돌프 주커가 만든 할리우드 스튜디오 모델처럼 흥행 비즈니스의 타율을 높일 수 있을까.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월트디즈니처럼 지식재산권(IP)의 사업 다각화를 구현해 낼까.

SM의 보이 그룹 엔시티(NCT)의 세계관을 활용한 웹툰 ‘엔시티: 드림 콘택트(왼쪽)’와 신인 그룹 라이즈(RIIZE)의 성장 스토리를 담은 웹소설 ‘라이즈 앤 리얼라이즈’. 사진 카카오엔터
SM의 보이 그룹 엔시티(NCT)의 세계관을 활용한 웹툰 ‘엔시티: 드림 콘택트(왼쪽)’와 신인 그룹 라이즈(RIIZE)의 성장 스토리를 담은 웹소설 ‘라이즈 앤 리얼라이즈’. 사진 카카오엔터

역시 K팝…승자의 저주는 없었다

일단, 카카오엔터가 최적기에 K팝 시장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거치면서 K팝 팬층이 한층 두터워졌고 콘서트 매출이 증가하는 등 엔데믹(endemic·감염병 주기적 유행)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8월 2일 공개된 SM 2분기 연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한 2398억원, 영업이익은 84% 증가한 357억원. SM은 “에스파(aespa)의 신규 앨범이 ‘더블 밀리언셀러(200만 장)’에 등극했고, 오프라인 콘서트 매출과 라이선스 사업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호재는 하반기에도 많다. 에스파 북미 싱글, 엔시티(NCT) 127 및 레드벨벳 정규 앨범, 에스파 미니 앨범 발매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다. 보이 그룹 ‘라이즈(RIIZE)’도 9월부터 활동에 들어간다. 에스파 이후 3년 만에 데뷔한 신인 아이돌이다. 카카오엔터와 SM의 북미 현지 통합 법인도 출범, 비즈니스 확대에 가속 페달을 밟을 예정이다. 

지난 3월 카카오와 카카오엔터는 1월 기준 7만원대였던 SM 주식을 두 배가량 높은 15만원에 사들였다. 하이브와 SM 인수 경쟁이 격화한 탓이었다. SM 지분 35%를 인수하는 데 1조2500억원이나 썼다. 하지만 카카오가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는 현재 쑥 들어간 상태다. 최근 SM 주가는 카카오의 공개 매수 가격에 근접하는 13만원대 후반까지 올랐다. NH투자증권은 SM의 목표 주가를 17만원으로 높였다.

SM과 첫 협업, 반응은?

카카오엔터는 ‘‘슈퍼 지식재산권(IP)을 제작하고 유통하고 연결하는 독보적이고 강력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가치사슬을 만들겠다”고 강조해 왔다. 카카오엔터가 수많은 회사를 인수한 명분이었다. 

이 같은 기조에 따라 카카오엔터와 SM의 첫 협업물이 8월 18일 나왔다. SM 소속 그룹인 엔시티(NCT)의 세계관을 활용한 웹툰 ‘엔시티: 드림 콘택트(NCT: Dream Contact)’가 카카오웹툰과 카카오페이지에 공개됐다. NCT 정규 4집 ‘골든 에이지’ 프로모션 차원이지만, 단편인 까닭에 누적 조회 수는 2만5000회로 적은 편이었다. NCT의 강력한 팬덤이 바로 폭발적인 웹툰 조회 수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신작 ‘여주의 첫사랑을 빼앗아 버렸다’ ‘창백한 말’ ‘예쁘게 우는 남자’ 등은 조회 수가 4~5일 만에 156만·30만·68만 회를 기록했다. 

한국 콘텐츠 산업은 인터넷 발달 이후인 2000년대부터 게임, K팝, 드라마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미국·일본에 비하면 역사가 짧다. 일본 애니메이션 ‘아톰’, 캐릭터 ‘헬로키티’가 나온 게 1952년, 1974년이었다. 군에 입대한 방탄소년단(BTS) 멤버처럼 한국의 아이돌 팬덤 비즈니스는 애니메이션·캐릭터와는 다른 돌발 변수들도 고려해야 한다. 김일중 한국콘텐츠진흥원 혁신·IP전략TF팀장은 ‘슈퍼 IP’를 만들어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로 연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국 특유의 모델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는 “일본은 강력한 오프라인 유통망을 바탕으로 촘촘하게 짜인 IP 수익 창출 수단이 있는 반면, 큰 내수 시장에 의존하다 보니 세계화가 덜 돼 있다”면서 “한국은 역사는 짧지만, 디지털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세계로 연결된 플랫폼 활용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영화 전문가·K팝 애호가 “기대 반, 우려 반”

20세기 미국이 세계 문화 시장의 ‘원톱’을 차지했던 것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헝가리 시골 마을 출신인 아돌프 주커가 배급사 파라마운트(Paramount)를 인수해 영화 제작과 배급을 수직 결합한 게 시작이었다. 송낙원 건국대 영상영화학과 교수는 “할리우드 제작 스튜디오와 아마존 등 IT 플랫폼 회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제작 저변에 투자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할리우드 제작 스튜디오는 대작도 만들지만, 인디 영화 제작에도 매년 상당한 투자를 단행하면서 차세대를 길러낸다는 것이다. 반면, 아마존 등 IT 플랫폼 회사들은 당장 돈 되는 작품에만 골라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 카카오엔터의 저변 확대 기여 여부가 카카오가 IT 플랫폼 회사를 넘어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거듭나는 데 관건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K팝 애호가들은 대체로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이른바 ‘SM 3.0(피인수 후 SM)’을 바라보고 있다. 한 애호가는 “슈퍼 IP 활용 극대화라는 명분으로 아티스트들을 상업적으로만 소모시킬까 걱정이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수만 SM 창업자의 불투명한 경영은 문제였지만, 아티스트들을 발굴·성장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면서 “카카오엔터의 SM도 차세대 아티스트들을 육성하는 데 투자를 많이 하면 좋겠다”고 했다.

Plus Point

K팝 음반 판매 연 1억 장 시대 온다

K팝 시장이 뜨겁다. 한국음악콘텐츠협회가 운영하는 ‘써클차트’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판매량 상위권 400개 음반의 판매량은 5500만 장이었다. 7월 K팝 음반(실물 CD) 판매량은 2010년 집계 이래 월간 최다(1430만 장)를 기록했다. 

K팝 전체 음반 수출액 역시 기록을 갈아치웠다. 관세청이 집계한 지난 상반기(1~6월) K팝 음반 수출액은 전년보다 17.1% 증가한 1억3293만달러(약 1781억원)에 달했다. K팝 그룹들의 국내외 음반 판매량이 연일 고공 행진을 기록하면서 연내 ‘K팝 1억 장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빅 4(하이브·SM ·JYP·YG)’가 모두 좋은 실적을 거둔 이유다. 특히 하이브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반기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K팝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이유는 ‘오프라인’ ‘북미’로 요약된다. 하이브의 경우, 공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85.4%나 증가했다. BTS 멤버 슈가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월드투어, 세븐틴 팬미팅이 2분기에 개최됐다. 음반 속 팬 사인회 추첨권을 얻기 위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 팬들까지 음반을 대량 구매 중이다. 올 상반기에는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K팝 수출 대상국 2위 자리에 올라섰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 통계에 따르면, 미국 수출 금액이 전년 동기 42.1% 증가한 2551만900달러(약 341억원)였다. 요즘엔 신인들도 데뷔와 동시에 미국 진출에 나서는 등 K팝 글로벌화에 가속도가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