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크 터핀 
중국·유럽국제공상학원(CEIBS) 유럽 총장
프랑스 ESSCA 경영학 석사, 일본 조치대 경제학 박사, 현 유럽경영대학협의회(EFMD) 이사, 
전 국제경영개발원(IMD) 총장 사진 CEIBS
도미니크 터핀 중국·유럽국제공상학원(CEIBS) 유럽 총장
프랑스 ESSCA 경영학 석사, 일본 조치대 경제학 박사, 현 유럽경영대학협의회(EFMD) 이사, 전 국제경영개발원(IMD) 총장 사진 CEIBS

“최근 ‘프리미엄’과 ‘가성비’를 동시에 선호하는 소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는 등 기업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미·중 갈등 등으로 세계의 지정학적 긴장도도 높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특정 사업에 집중하고, 동시에 변화에도 민첩하게 반응해야 한다.”

도미니크 터핀(Dominique Turpin) 중국·유럽국제공상학원(CEIBS) 유럽 총장은 8월 25일 인터뷰에서 ‘뷰카(VUCA) 시대 CEO가 갖춰야 할 자질’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뷰카는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첫 글자를 딴 용어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예측하기 어려워진 현대사회를 지칭하는 말 중 하나다.

이날 서울에서 열린 CEIBS 주최 경영 세미나 참석차 방한한 터핀 총장은 “마케팅에서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명확한 전략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남아에서 비 오는 날 교통 불편을 경험한 것에 착안해 창업한 택시 서비스 기업 ‘그랩(Grab)’과 젊은 부자를 집중 타기팅한 고급 시계 브랜드 ‘블랑팡(Blanc-pain)’을 이 같은 전략의 성공 사례로 소개 했다.

터핀 총장은 “디지털 신기술의 발전은 현대사회의 불확실성을 키웠지만, 이를 잘 활용한다면 다양한 충성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며 “CEO는 새롭고 다양한 세대로부터 의견을 청취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CEIBS는 장강상학원과 함께 중국의 양대 경영대학원으로 꼽히는 곳으로 터핀 총장은 세계경제포럼(WEF)이 스위스에서 운영하는 국제경영개발원(IMD) 총장을 지낸 바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뷰카’ 시대에 대한 언급이 많아졌다.
“뷰카는 냉전 종식 이후 복잡하고 모호한 다자간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됐다가 이후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최근엔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여러 지정학적 요인이 불확실성을 키우면서 다시 부각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기업들이 직면한 리스크는.
“최근 지정학적 위험에 대응하는 데 있어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과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이라는 개념이 떠오르고 있다. 이는 일부 국가나 기업이 시장에 매우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러시아나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들을 생각해 보자. BMW는 생산하는 자동차의 50%가 중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결정이 매우 중요하다. 스위스의 한 대형 제약 회사는 자국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중국에서 약을 생산한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급망에 충격을 받자,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베트남이나 인도로 생산을 이전하려고 한다. 이렇게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뷰카 시대에서 기업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뷰카 시대에 맞춰 의사 결정 과정에서 어떤 변화를 시도하냐가 중요하다.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개발도 기업이 직면한 리스크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 뇌졸중으로 쓰러진 미국 여성이 AI를 통해 말을 할 수 있게 된 사례가 있듯 AI는 의학 분야 등에서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을 통제하는 데 사용되는 것에 대한 위험성도 제기되고 있다.”

기업의 경영진은 어떻게 해야 하나.
“경영의 정도(正道)를 따르지 않고 파괴적 혁신으로 성공하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이는 대기업들도 예전과 같은 전략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복잡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 경영진에 있어 ‘집중’이 더 중요해진 이유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최대한 많은 영역에 진출하고자 했다. 한국의 삼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러 대기업이 최근 소수의 제품과 기술에 집중하려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업은 선택해야 한다. 경영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것이냐’가 아닌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이냐’이다. 동시에 모든것을 잘할 수는 없다.”

복잡할수록 역설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민첩성도 갖춰야 한다. 하나에만 집중하면 변화에 취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중력과 민첩성을 동시에 지니는 것이 바로 경영의 아름다움이다. 항상 변화를 받아들이고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다.”

변화를 늘 받아들이라고 했는데, 소비자들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소비 스타일이 양극화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가장 ‘프리미엄’한 것을 원하거나 가장 ‘가성비가 있는 것’을 원한다. 어중간한 브랜드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 이런 현상은 특히 반려동물 사료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반려동물을 자식처럼 여기는 사람들은 프리미엄 사료를 많이 소비하지만, 단순한 동물로 여기는 사람들은 저렴한 사료를 구매한다. 자동차 시장에서도 벤츠의 경우, 가장 비싼 차와 가장 저렴한 차의 판매 실적이 좋다.”

뷰카 시대에 기업은 어떤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하나.
“기본으로 돌아가 보자. 마케팅에서 가져야 할 궁금증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복잡한 시대에는 소비자들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소비자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게 중요한 이유다. 이를 잘 해결한 사례로는 동남아의 택시 서비스 ‘그랩’이 있다. 그랩의 창업자는 ‘동남아 여행을 갔을 때 비 오는 날 택시를 잡기 너무 어려워서 이 일을 시작했다’라고 창업 계기를 밝혔다. 또, 브랜드마다 명확한 전략을 확립해야 한다. 많은 숫자의 브랜드로 포트폴리오를 만든 기업들은 각각 브랜드의 이미지가 겹치거나 희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혼란을 느낀 소비자는 그 브랜드를 소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급 시계 브랜드인 블랑팡은 부를 축적한 젊은 직업인들을 타기팅한다. 디자인 수는 적게 유지하고, 부품은 소량 생산하며, 손으로 조립해 제품을 만든다. ‘메이드 인 제네바(made in Geneva)’라며 고급 마케팅을 하며, 유통도 선택적으로 한다.”

마케팅에서 틱톡 등 숏폼 소셜미디어(SNS)의 중요성도 커지지 않았나.
“요즘은 종이 신문을 찾기 어렵다. 그만큼 지면 광고는 큰 효과가 없다. 마케팅에 있어 넘쳐나는 온라인 플랫폼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세대마다 주로 사용하는 플랫폼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세대의 직원을 고용하는 것도 효율적이다. 디지털 기술을 잘 활용한다면 고객 관리도 훨씬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롤렉스 같은 고급 시계 기업은 데이터로 충성 고객을 가려낸다. 이름과 이메일을 알려주면 5년의 품질보증, 2년의 무료 세척 서비스를 제공하며 고객 데이터를 확보한다. 일정 기간에 몇 개의 제품을 구입했는지 등을 고려해 충성 고객에게 희소한 신제품을 먼저 제공하는 방식으로 고객을 관리한다.”

한국 CEO들에게 조언한다면.
“이 시대에 필요한 사고방식을 정의하기 위해 나는 ‘HAVE’라는 모델을 생각해 냈다. ‘H’는 겸손(Humility)을 뜻한다. 한국에서는 전통 기업의 CEO가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세상이 불확실해졌을 때, 리더는 ‘나는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A’는 적응력(Adaptability)이다. 새로운 사실과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재검토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10~20년 전만 해도 리더가 의견을 바꾸는 것은 무능력한 것으로 간주됐다. 뷰카 시대에서는 자신의 결정을 재검토할 줄 알아야 한다. ‘V’는 비전(Vision)을 의미하고, ‘E’는 참여(Engagement)를 의미한다. 리더는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회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장기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되도록 많은 사람을 (전략을 수립하는 데) 참여시켜야 한다. 특히 디지털 기술이 발전한 만큼 새롭고 다양한 세대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이주형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

정서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