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하면서 어렵고 힘든 것을 꼽으라면, 바로 정보공개가 아닐까. 상대에게 자신의 상황을 공개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공개한다면 어느 범위까지 공개할 것인지. 솔직하게 털어놔도 되는 것인지. 혹시 그랬다가 뒤통수 맞는 건 아닌지 등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해관계가 크게 걸려있다면 더욱 그렇다. 서로 믿고 거래하는 사이라면 별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라는 게 문제다. 비즈니스 거래든, 연봉 협상이든, 심지어 아파트 매매 거래든 마찬가지다. 자신의 속내와 정보를 어디까지 공개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이른바 ‘협상가의 딜레마’다.
협상 중 정보공개의 딜레마
P사는 얼마 전 해군으로부터 향후 18개월 동안 전기모터를 납품하는 대규모 방산 계약을 따냈다. 생산에 필요한 부품 공급선을 확보하기 위해 준비에 착수했다. 부품에는 2만여 개의 배선 장치도 포함돼 있었다. 이 장치는 공정상 다른 것보다 우선적으로 급히 조달해야 했다. 불행히도 기존 부품 공급 업체는 모두 다른 주문으로 인해 생산 라인이 밀려 있는 상태였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구매팀은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겨우 한 업체를 찾아냈다. 수도권 외곽에 있는 소규모 생산 업체인 W전기공업사였다. 두 회사 모두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였다. 협상장에서 만난 양측은 중요 정보에 대한 공유를 꺼리고 있었다. 예를 들어 P사 구매팀은 조달과 관련해 자사가 얼마나 급한 상황인지 상대측이 알기를 원치 않았다. 사실 적기 조달에 실패할 경우 해군과 군납 계약이 취소될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W전기공업사가 알게 되면 협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궁지에 몰려 있는 자사의 상황을 상대는 거꾸로 이용할 테니까 말이다. 자칫 잘못하면 터무니없이 높은 단가로 계약해야 할 수도 있다.
한편 W전기공업사 사정은 좀 달랐다. 오히려 자사가 협상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창고에는 재고가 잔뜩 쌓여 있고 공장 가동률은 40%밖에 안 된다. 이 사실을 만약 P사가 알게 되면 최대한 낮은 단가를 요구할 것이다. 쌓인 재고도 처리하고 가동률도 올려야 하는 절박함 때문에 상대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히 그런 정보는 감추고 싶었다. 양사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입장인데도 자사 상황에 대한 정보공개를 꺼리고 있었다. 속사정을 털어놓지 않는다면 더 나은 거래 성사가 쉽지 않다. 정보 부족으로 인해 P사의 구매 희망 가격과 W전기공업사의 판매 가격 간에는 큰 차이가 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합의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고 협상은 결렬될 것이다.
하지만 양측이 자사의 니즈와 비즈니스 상황에 관한 정보를 공유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P사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배선 장치를 적기에 공급받을 수 있고, W전기공업사도 덕분에 공장 가동률을 올리고 장기적인 공급선을 확보할 수 있다. 가격이라는 가치뿐 아니라 적기 공급, 재고 처리, 공장 가동률, 장기 공급선 확보라는 중요한 가치가 창출된다. 이것이 윈윈 협상 영역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양사에 이득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한쪽은 솔직하게 정보를 공개하는데 다른 쪽은 그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대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사의 이익을 더 챙기려는 욕심 때문이다. 이때는 당연히 정보를 감추는 회사가 상당한 이득을 보게 된다. 이런 상황을 ‘내가 이기고, 너는 진다(I win, You lose)’는 협상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양측 모두 정보를 숨기고 속인다면 둘 다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루즈-루즈(lose-lose) 게임도 가능해진다. 이런 정보공개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상호 호혜 심리 활용
먼저, ‘상호 호혜의 심리’를 활용해 볼 것을 제안한다. 상호 호혜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냥 주고받기(give and take) 정도의 의미다.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인류학자 카를 폴라니(Karl Polanyi)는 호혜의 대칭성을 강조한다. 혜택(benefit)이든 손해(harm)든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료가 커피를 사주면 다음에 자신도 커피를 한 잔 사야겠다는 마음의 빚이 생기는 것과 같다. 이런 심리를 협상에 활용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정보를 공개하는 것도 상호주의에 입각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어느 한쪽이 민감한 정보를 공유한다면 자신도 본능적으로 그 수준만큼의 투명성을 보여주려고 한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약간’이라는 단어다. 다 털어놓지 말고 조금씩 하라는 것이다. 협상에는 이런 말이 있다. ‘가져간 보따리를 다 풀지 말라’는 것이다. 다행히 상대로부터 호혜적인 반응이 나온다면 분위기는 좀 더 진전될 수 있다. 미미한 수준이지만 양측 간에 신뢰가 쌓일 것이다. 상대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 좀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게 되고 자사의 중요한 카드를 하나둘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게 될 것이다. 결국 나눌 수 있는 파이(pie)는 커지고 가치 창출의 기회는 많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여전히 감추고 숨길 수 있다. 만약 정보공유를 기피하거나 심지어 악용하려 한다면 거기서 멈추라. 어떤 정보도 추가로 공개하지 말라. 그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
정보 얻으려면 질문하는 게 유리
두 번째 방법은 적절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협상 자리에서는 조금 다르다. 자신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요소나 민감한 정보는 감추려 한다. 물론 대놓고 거짓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부 정보를 누락시키거나 얼버무린다. 노련한 협상가는 이때 가만있지 않고 질문을 한다. 질문한다고 상대가 제대로 답변하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 이를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있다. 위스콘신대학 경영대학원의 모리스 슈바이처(Maurice Schweitzer) 교수와 텍사스 A&M대학의 레이철 크로슨(Rachel Croson) 교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실험 대상자의 61%는 놀랍게도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사실을 실토한다’는 것이 실험 결과로 나왔다. 10명 중 6명은 진실을 얘기한다는 것이다. 반면 질문하지 않았을 때 사실을 밝힐 확률은 0%였다. 물어보지 않는데 불리한 얘기는 할 필요가 없어서다. 결국 질문하면 상대가 실토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들을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물론 끝까지 감추고 속이는 사람도 있다. 그게 약 40%다. 적지 않은 숫자다. 하지만 여기서도 노련한 협상가의 행동은 다르다. 질문을 기록해 둔다. 사람들은 답변을 하다 보면 질문의 요지를 잊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만 언급하거나 이것저것 빼고 얘기한다. 답변이 미심쩍을 경우 처음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번에는 거꾸로 부정적으로 질문한다. ‘그게 정말 사실일까요?’라는 식이다. 이런 과정이 거듭되면 감추고 속이는 비율이 그만큼 줄어들고 사실을 들을 수 있는 확률은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