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현 케이노트 대표, 
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현 케이노트 대표, 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8월 19일, 서울 강남 도산공원 일대가 소란스러워졌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 도산 (Supreme 도산) 스토어 오프닝 때문이다. 매장 앞은 입장 예약을 한 슈프림 팬의 긴 웨이팅 라인이 이어져 있었다. 슈프림 도산 스토어는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이은 7번째 글로벌 스토어이자, 16번째 공식 오프라인 스토어다. 현재 중국 경제 상황을 보았을 때 일본을 이을 아시아의 두 번째 스토어가 한국일 수밖에 없겠지만, 7번째 글로벌 오프라인 스토어가 서울이란 것에 대해 국내 슈프림 팬은 환호했다.
8월 19일 오픈한 슈프림 도산 스토어. 
사진 슈프림뉴욕 인스타그램
8월 19일 오픈한 슈프림 도산 스토어. 사진 슈프림뉴욕 인스타그램

기대감과 희소성 높인 드롭 마케팅 

슈프림 도산 스토어는 오프닝 한정 박스 로고 티셔츠와 후디를 함께 출시했다. 한국의 국화인 무궁화와 슈프림 도산 스토어의 주소가 프린트되어 있다. 이 한정판은 금세 리셀 마켓에 올려졌다. 슈프림이란 로고가 없으면 과연 입고 거리를 다닐 만한 디자인인가 싶지만, 리셀가는 발매가의 다섯 배까지 점프해 있다. 

1994년 뉴욕 태생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은 ‘최고의’ ‘최상의’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패션 컬트가 됐고 패션사에 남을 센세이션과 이슈를 일으킨 아이코닉 브랜드다. 또한 전설적인 오픈런을 일으킨 드롭 마케팅(drop marketing·특정 요일이나 시간대를 정해 신제품을 판매하는 마케팅 방식)의 원조다. 스케이트 보더를 위한 반항심 가득하고 불친절한 비주류 브랜드가 어떻게 세계적인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가 됐는지, 그 이유 중 하나로 드롭 마케팅이 꼽힌다. 슈프림의 경이로운 성공 이후 드롭 마케팅은 하나의 광고 마케팅 바이블이 됐다.

제품 드롭(product drop)은 한정 수량의 신제품을 특정 매장에 특정일에 판매 개시한다는 예고 후 판매하는 방식이다. 특정일에 특정 장소에 신제품을 떨군다는 의미에서 ‘드롭(drop)’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그럼 신제품 론칭(product launching)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드롭하는 제품은 최초 출시 이후 계속 만들어지고 판매될 거라는 약속이 없는 희소성이 있다. 

드롭 마케팅은 바로 ‘희소성’과 ‘기대감’이란 두 가지 주요 심리학적 요소가 서로 지렛대가 되어 무형의 광고 효과와 기억에 남는 브랜드 경험을 남긴다. ‘이 가격에 마지막으로 구매할 수 있다’나 ‘지금 얻지 못하면 결코 얻지 못할 것’이라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즉 다른 사람은 모두 누리는 좋은 기회를 놓칠까 봐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슈프림 도산 스토어 오픈 기념 한정판 후디와 티셔츠는 
예약 판매됐다. 사진 Supreme Leaks News 인스타그램
슈프림 도산 스토어 오픈 기념 한정판 후디와 티셔츠는 예약 판매됐다. 사진 Supreme Leaks News 인스타그램

스트리트 패션의 마케팅이 산업 전반으로

드롭 마케팅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슈프림 창립자 제임스 제비아는 미국 보그와 인터뷰에서 “우리가 만드는 옷은 일종의 음악과 같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드롭 마케팅이 엔터테인먼트 산업 같다는 것이다.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와 좋아하는 아이돌의 신규 앨범 발표나 콘서트 정보를 커뮤니티에서 나누고 밤새워 줄을 서며, 프리미엄을 주고 티켓을 구매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엔터테인먼트에서 벌어지던 현상이 드롭 마케팅에 의해 패션계에서도 벌어지게 된 것이다. 

최근 론칭된 킴 카다시안의 보정 속옷 브랜드 스킴스(SKIMS)의 초기 컬렉션은 출시 10분 만에 완판됐다. 매우 제한된 수량의 제품을 제한된 소매점에서만 판매하고 ‘솔드아웃’을 온라인 숍 헤드라인에 올린다. 스킴스 제품을 손에 넣은 여성들은 독점 클럽에 가입한 듯한 성취감을 느끼고, 자랑스럽게 언박싱과 리뷰 영상을 올린다. 이 영상을 보는 다른 소비자는 다음 제품 드롭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느끼며 상품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 

드롭 마케팅의 규모가 커지면서 여러 불만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텐트를 설치하고 밤을 새워 줄을 서는 일 그 자체를 즐기는 팬도 있지만 분명 불편한 일이고, 매장에서 먼 지역에 사는 이들에겐 매장까지 찾아가 기약 없이 줄을 서는 것이 불공평하다.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며 드롭 마케팅은 복권 형식의 ‘래플 마케팅(raffle marketing)’으로 바뀌어 갔다. 래플은 온라인 응모나 추첨으로 정해진 기간 내에 접수만 하기 때문에 사이트 트래픽 초과로 불이익을 겪거나 장시간 줄을 서야 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1 드롭 마케팅으로 성공을 거둔 킴 카다시안의 보정 속옷 브랜드 스킴스. 스킴스×펜디 협업 제품은 드롭 마케팅을 통해 완판됐다. 사진 스킴스 인스타그램 2 나이키코리아는 지난 7월, 스니커즈 드롭 정보를 공유하고 편리한 래플과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SNKRS 앱을 론칭했다. 사진 나이키코리아
1 드롭 마케팅으로 성공을 거둔 킴 카다시안의 보정 속옷 브랜드 스킴스. 스킴스×펜디 협업 제품은 드롭 마케팅을 통해 완판됐다. 사진 스킴스 인스타그램 2 나이키코리아는 지난 7월, 스니커즈 드롭 정보를 공유하고 편리한 래플과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SNKRS 앱을 론칭했다. 사진 나이키코리아

드롭 마케팅의 변화와 진화 

드롭 마케팅과 래플 마케팅은 스트리트 패션과 스니커즈 문화에서 시작되어 먼 길을 걸어왔다. 이젠 슈프림이나 나이키뿐 아니라 맥도널드, 이케아 등 산업 전반으로 퍼지고 루이비통, 프라다 같은 명품 브랜드도 드롭이나 래플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이젠 너무 남발된 면이 없지 않다. 앞으로의 키워드는 충성도 높은 ‘로열 고객’ 관리라 할 수 있다. 브랜드의 로열 고객에게 계속 제품 드롭과 래플에 참여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며 그들이 1차, 2차 바이럴 광고 효과를 일으킬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줘야 한다. 나이키의 경우, 지난 7월 브랜드 한정 스니커즈, 의류 발매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앱 ‘SNKRS’를 론칭하며 성수동에서 팝업 스토어를 진행했다. SNKRS 앱은 나이키 제품의 온라인 구매뿐 아니라 드로 응모, 실시간 줄서기 서비스를 포함한다. 앱 내 SNKRS 패스는 오프라인 예약 제품의 빠른 수령을 돕는다. 또한 라이브 스트리밍 기능 ‘SNKRS 라이브’는 출시 임박 제품의 세부 정보를 안내하고, 실시간 투표 기능 폴링은 사용자 간 제품 정보, 드롭 소식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준다. 슈프림으로 시작해 모든 산업으로 뻗어나간 드롭과 래플 마케팅도 변화와 진화가 간절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