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인공지능(AI) 개발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면 양극화와 불평등은 더 심해질 것입니다.”
대런 애스모글루(Daron Acemoglu)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AI와 노동시장 전망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러면서 “자동화, 감시, 데이터 수집에 치우친 AI 개발이 지속될 경우 노동시장의 고용 안정성뿐 아니라 근로자 소득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며 “기술 발전 방향을 사회적으로 유익하게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가 업무 자동화를 장려하는 유인책을 제거하고 AI 연구 방향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도록 개입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세계 경제학계의 주목을 받는 그가 역사적 사례를 바탕으로 Al 확산 대응 방법을 다룬 신간 ‘권력과 진보’는 미국 출간 한 달 뒤인 올해 6월 국내에도 번역 출간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AI 발전이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나.
“AI 기술, 특히 생성 AI(Generative AI)는 분명 노동시장을 변화시킬 것이다. 다만 두 가지 이유로 노동시장이 어떻게 변화할지 단정하기 어렵다. 첫째, 우리는 여전히 AI 능력을 이해하는 과정의 초기 단계에 있다. AI가 복잡하고 창의적인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주장 중 일부가 과장됐을 가능성이 있다. 과장과 현실을 구분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둘째, AI는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우선 각종 업무를 자동화해 근로자 임금과 고용 안정성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동시에 근로자 업무를 보완해 새로운 작업을 창출할 수도 있다. AI가 업무 생산성과 효율성에 기여할 뿐 아니라 개인이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하고 더 높은 임금을 받도록 도울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지금 일부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가 주도하는 AI 개발 방향이 근로자 업무를 대체하는 쪽에 더 가깝다는 점이다. AI에 대한 근본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당장 어떤 직업이 타격을 입을까.
“AI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키는지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알고리즘과 거대언어모델(LLM)로 손쉽게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이 자동화될 가능성이 크다. 단순한 문서 작성부터 데이터 분석, 단순 프로그래밍, 보안 IT 작업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창의력을 요구하는 직종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기회도 있다. 이는 빅테크가 데이터 수집, 감시, 자동화보다 (AI가) 인간을 보완하도록 하는 투자에 우선순위를 둘 경우에만 가능하다.”
AI가 저임금 일자리를 대체한다면 인력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더 심해질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일각에선 AI가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화이트칼라로 불리는 사무직 근로자와 회계사, 재무 분석가 등 일부 고임금 근로자를 AI가 대체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고숙련 근로자가 하는 업무를 AI가 전면 대체하기엔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가장 큰 피해는 ‘반복적이며 단순한 업무(routine task)’에 종사하는 근로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일부 회계사나 재무 분석가는 일자리를 잃어도 다른 사무직 직종에 취업할 수 있다. 이는 곧 저숙련 근로자 소득에 하방 압력을 가할 것이다. AI 개발 방향을 사회적으로 유익하게 바꾸지 않는다면 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은 더 심해질 것이다.”
그럼 인간이 AI로 대체되는 것을 정부가 나서서 규제해야 하는가.
“우선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AI는 분명 다양한 업무를 빠르게 자동화할 것이다. 근로자 임금 역시 끌어내릴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AI의 업무 자동화를 직접 규제할 수 없어도 AI 연구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자동화를 위해 존재하는 인위적인 유인책을 제거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이를테면 미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의 세법에선 자동화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동시에 근로자를 고용하면 세금을 부과한다. AI가 가져올 불평등을 더 키우지 않으려면 이런 왜곡을 제거해야 한다. 산업화한 국가의 정부라면 기업이 인간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AI를 연구개발할 수 있게 장려할 필요가 있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저서 ‘권력과 진보’에서 자동화에 집중된 기술 개발 방향을 전환하는 데 필요한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인센티브 지급 △거대 테크 기업 분할 △조세 개혁 △근로자 교육 훈련 프로그램 △프라이버시 보호와 데이터 소유권 강화 △디지털 광고세 등이다. 그는 “이제는 규제를 넘어 디지털 기술과 AI 분야 혁신에 대한 진지한 방향 전환이 필요할 때”라며 “이를 위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국가가 다가올 AI 시대에 가장 잘 대비하고 있다고 보나. 미국 상황은 어떤가.
“기업과 근로자 두 측면에서 분석하겠다. 우선 기업이 AI를 통해 근로자 생산성을 크게 높일 만한 충분한 전문 지식을 갖춘 국가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령 미국 기업들은 일부 측면에서 다른 나라보다 (AI 기술이) 앞서 있지만, 대부분 데이터 수집과 자동화를 위한 것이다. 최근 공동 저자들과 함께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은 2019년 기준 AI 기술을 도입한 기업이 2% 미만이었다. 이 비율은 확실히 증가할 테지만, 그 과정은 느릴 것이다. 근로자로 눈을 돌려보면 유연성, 사회성, 소통 능력, 창의성을 함양하는 교육 시스템을 갖춘 국가가 AI 시대를 가장 잘 활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대비를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나쁜 아이들이 고품질 교육을 못 받고 있어서다. 가난한 지역 학교에서는 사회성 기술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 일부 유럽 국가와 캐나다는 노동 유연성 측면에서 더 잘 준비가 돼 있을 것으로 본다.”
AI 덕분에 아이들이 고품질 교육을 받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교육은 AI 시대에 가장 흥미로운 분야 중 하나다. 현재 교육 업계는 시험을 자동화하고 온라인에서 더 많은 자료를 도입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것은 분명 교사 역할을 줄이는 자동화의 한 형태라고 본다. 그러나 첫 번째 질문에서 대답했듯이 대안적인 방향도 있다. 교사가 실시간으로 AI 기반 도구를 활용해 학생에게 개별화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학생이 어려움을 겪는 부분을 더 쉽게 파악하고 알고리즘 권장 사항에 따라 교육 커리큘럼을 변경하거나 소규모 학습 그룹을 적절하게 구성할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학생들에게 꽤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자면, 이는 업계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아니다. 학교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도 아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닭과 달걀의 문제다. 기술이 없으면 학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학교의 수요가 없으면 업계도 이러한 기술을 개발할 동력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러한 방향은 더 나은 AI 도구뿐 아니라 훨씬 더 잘 훈련된 많은 교사를 필요로 한다. 학교가 돈을 아끼려 하고, 기술 산업이 사람을 돕는 기술에 투자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없다.”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 수상한 대런 애스모글루 교수는 누구
대런 애스모글루 교수는 경제학계에서 이른바 ‘스타 교수’로 꼽힌다. 그는 MIT 교수 1080명 중 12명밖에 없는 ‘인스티튜트 프로페서(Institute Professor)’ 중 한 명이다. 정치와 제도가 경제의 핵심이라는 연구 주제로 정치경제학을 진일보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5년엔 40세 미만 최고의 경제학자에게 주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았다. 이 메달은 수여자 40%가 평균 22년 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아 ‘예비 노벨 경제학상’으로 불린다. 그는 이후에도 번영과 빈곤의 역사적 기원 그리고 새로운 기술이 경제, 고용,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이 공로로 2016년 BBVA재단으로부터 지식 프런티어상을, 2019년 키엘경제연구소의 글로벌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가 2012년에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현 페이스북) 창업자, 재러드 다이아몬드 UCLA 교수 등이 추천했으며,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인생 책 중 한 권으로 꼽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