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무기재료 학·석사, 고려대 재료공학 박사, 전 KCC글라스 생산기술총괄 본부장, 전 KCC 중앙연구소 부소장·여주공장 공장장 사진 KCC글라스
국내 건축용 판유리 시장 1위 기업 KCC글라스의 인도네시아 공장이 오는 2024년 완공된다. KCC글라스는 46만㎡(약 14만 평) 규모의 인도네시아 공장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에 ‘K글라스 클러스터’를 조성, 중동과 오세아니아 유리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신기술 개발과 더불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향후 세계 무대에 진입하겠다는 전략도 세웠다.
‘K유리의 세계화’라는 출사표를 던진 인물은 변종오 KCC글라스 판유리사업총괄 부사장이다. 그는 과거 우리나라의 선도 산업인 자동차, 건설 등의 분야에 수입산 유리가 쓰인 시절부터 ‘유리 국산화’를 위해 힘써온 유리 전문가다. 1984년 KCC글라스의 전신인 주식회사 금강에 입사한 그는 KCC 중앙연구소 연구임원과 KCC글라스 여주공장 공장장 등의 자리를 거쳐왔다. 원료 확보부터 공정 개발 그리고 KCC글라스가 세계 최대 규모 판유리 생산 공장인 여주공장을 보유한 현재까지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과정이 없다.
최근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 KCC글라스 여주공장에서 만난 변 부사장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유리 생산 공정을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곳에선 경기 가평공장에서 온 규사(석영분이 포함된 모래)와 강원 영월공장에서 들여온 백운석(탄산염 광물) 등 원료들을 섭씨 1600도의 용융로(용해로)에 넣은 뒤 성형, 서냉(냉각)의 과정을 거쳐 판유리를 만든다. 매일 생산되는 판유리만 2400t 규모로 서울 여의도 63빌딩을 4겹으로 두를 수 있는 양이다.
변 부사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유리 산업이 성장하려면 ‘극강의 기술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도체를 비롯한 국내 선도 산업이 기술력으로 세계 무대에서 승부를 봤던 만큼, 그 기반이 되는 유리 산업도 기술력을 확보해 시너지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유리에 다양한 기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며 “2차 산업이었던 유리가 4차 산업화하면서 앞으로 기술력이 시장 점유율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변 부사장과 일문일답.

세계 최대 규모의 여주공장을 보유한 KCC글라스가 해외 공장 설립을 서두르는 이유는.
“건축물 에너지 절감이나 친환경 문제 등으로 향후 세계적으로 판유리의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현재 판유리 시장에서 중국·동남아 등의 저가 유리 수입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품질의 상향 평준화가 이뤄진 상황에서 소비자는 가격을 따진다. 물론 타 국가의 제품보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하루빨리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KCC글라스가 해외 진출의 교두보로 인도네시아를 선택한 이유는.
“인구, 경제성장률, 인건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가장 적합한 국가라고 판단했다. 위치상으로도 중국, 인도, 유럽 등으로 진출이 유리하다. 이러한 이점이 있기 때문에 중국 국적의 경쟁사도 인도네시아 진출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보이지만, 인도네시아 공장에 KCC글라스의 모든 기술을 집약할 계획이기 때문에 승리할 자신이 있다.”
KCC글라스 여주공장과 인도네시아 신규 공장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되는가.
“유리 산업은 각종 첨단산업의 근간이 되기 때문에, 기술이 발전할수록 유리에 요구하는 기술도 많아진다. 국내 공장은 고부가가치, 고성능을 요구하는 첨단 유리 제품 생산 기지로 운영할 계획이다. 인도네시아 공장은 가격 경쟁력 확보 및 생산성 향상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양과 질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겠다는 취지다.”
비교적 세계 유리 시장에 늦게 진출한 국내 기업이 외국 기업과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루이 14세 시절에 설립된 프랑스 유리 기업 ‘생고뱅(Saint-Gobain)’ 등 세계 유수의 기업 사이에서 KCC글라스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기술력뿐이다. 유리가 기술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분야가 넓은 만큼 KCC글라스만의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 특허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KCC글라스가 가장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신기술은 무엇인가.
“건축용 판유리 및 자동차용 유리의 경우 고기능성 원판 개발, 세계 최고 성능 수준의 코팅 유리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복사열 차단율을 극대화한 ‘트리플 로이유리’ 개발이 대표적이다. 전자, 디스플레이, 반도체, 자동차 등 한국이 선도 중인 산업 분야가 필요로 하는 스마트 글라스 등 특수 유리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 산업에 들어가는 기초 유리는 외국 회사들이 과점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국산 유리로 대체하는 것도 목표다.”
1980년대 KCC글라스의 판유리 사업 초창기 부터 사업을 이끌어 왔다. 40여 년 만에 국내 점유율 1위를 넘어 세계 진출까지 넘볼 수 있도록 성장한 배경은.
“수많은 위기를 기회로 삼은 것이 성장의 가장 큰 비결이다. 처음에는 한국유리공업의 광산권(채굴권)에 밀려 (유리) 원료인 규사를 구하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경기도 가평의 한 돌산을 발파한 뒤, 이를 파쇄·분쇄해 규사를 얻는 방법을 찾아냈다. 또 세계 최대 유리 기업인 프랑스 생고뱅의 기술을 들여왔지만, 유리가 깨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우리의 규격에 맞게 조정했다. 공장에 들인 설비를 납품한 회사가 폐업하는 바람에 직접 효율적인 수리법을 찾아내는 등 위기를 극복하면서 습득한 기술력이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
향후 유리 산업의 전망을 어떻게 보는가.
“에너지 고효율 자재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에너지 절약 및 온실가스 절감 이슈가 부각되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시장 전반의 노력은 ‘패시브 하우스(에너지 저소비 주택)’와 ‘에너지 제로 하우스’를 통한 건축물의 에너지 절약 움직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성능이 좋은 고성능 코팅 유리 제품에 대한 수요도 함께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외에도 자동차 시장의 메가트렌드인 Connected(연결), Autonomous(자동 운전), Sharing(공유), Electricity(전동화)를 뜻하는 ‘CASE’와 다양한 가전·전자용 디스플레이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 기기도 새로운 (유리) 수요 창출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유리 산업이 더 발전하려면.
“1983년 서울대 무기재료 석사학위를 취득할 당시에 유리 관련 전문가가 없어 고생했었는데, 지금도 교육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 유리는 건축 자재 중에서 유일하게 투명하다. 유리를 통해서만 밖을 내다볼 수 있다는 의미다. 유리는 대체 불가하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가가 필요하다. 다양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유리 분야를 학문화해 후학을 양성해야 산업이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