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는 가장 적극적으로 전동화를 꾀하는 회사다. 전기차 전용 브랜드 EQ로 다양한 차를 국내 소개하고 있다. EQE 500 4매틱 SUV 역시 고급 전동화 시장을 장악하려는 벤츠의 야심이 담긴 차다. 올 초 출시된 EQS SUV에 이어 벤츠 전기차 전용 구조(아키텍처) EVA2를 기반으로 만든 두 번째 제품이다.
벤츠는 전기차 시대에도 가장 잘 달리고, 가장 편안하며, 가장 안전한 차를 목표로 한다. 얼마 전 방한한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그룹 회장은 회사의 전기차 방향성에 대해 “어떤 차를 타더라도 벤츠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겠다는 게 우리의 철학”이라고 했다. EQE 500 4매틱 SUV 역시 그런 철학이 잘 반영돼 있는 차라고 할 수 있다. 총 250㎞쯤을 주행했다.
둥근 외관으로 공기저항 최소화
전체적인 외관 디자인은 둥글다. 전기차는 공기저항을 최소화하는 공력 성능이 중요한데, 공기저항이 클수록 주행거리에 영향을 받아서다. 벤츠는 내연기관에서도 가장 높은 공기역학 성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EQE 500 4매틱 SUV도 차에 부딪히는 공기 흐름을 최대한 원활하게 하기 위해 유려한 곡선 디자인이 이뤄졌다. 벤츠 전기차의 공통된 형태이기도 하다. 차체 크기는 길이 4863㎜, 너비 1940㎜, 높이 1686㎜로, 동급 전기 세단인 EQE보다 83㎜ 짧고, 21㎜ 좁다.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장르인 덕분에 높이는 174㎜ 껑충하다. 앞뒤 바퀴의 중심 거리를 의미하는 휠베이스는 3030㎜로, EQE 세단과 비교해 90㎜ 짧다. 때문에 중형급인 차인데도 크기가 아담해 보인다.
전기차 시대에는 엔진 열을 식히는 라디에이터 그릴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100여 년간 눈에 익숙한 디자인 형태를 갑자기 없애기는 어렵다. 벤츠는 기능성보다 디자인 묘를 살리기 위해 이 부위를 꾸미는데, 검은 유리처럼 고광택 마감을 했다. 표면에는 벤츠의 삼각별 장식을 촘촘히 새겼다. 그릴 부위 뒤로는 부분 자율주행 등에 필요한 센서와 카메라 등을 넣었다.
헤드램프에는 260만 픽셀(화소) 이상의 디지털 라이트를 채용해 높은 시인성을 보여준다. 각각의 픽셀을 별도 제어하는데, 차에 올라타 전원 스위치를 넣으면 램프가 좌우로 순차 점등하며 달릴 준비를 마쳤다는 표시를 운전자에게 해준다. 카메라와 센서, 내비게이션 등에서 수집한 도로 환경 등의 각종 정보는 헤드램프의 밝기를 주행 상황에 따라 조절한다. 마주 오는 차가 있다면 빛의 밝기를 낮추는 식이다.
실내는 거주성이 나쁘지 않다. 앞면을 넓게 채우는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 등 디지털 기능도 굉장히 호화스럽다. 실내 무드 조명은 파란색으로 미래 지향적이다. 에어컨 온도나 바람 세기를 바꿀 때마다 색을 바꾸며 출렁이는데, 꽤 재미있는 경험이다.
차체 옆 발판은 사족 느낌
SUV 특성을 살리기 위한 것인지, 차체 옆쪽에 발판이 달려있다. 차에 타고 내릴 때 다리에 닿아 살짝 불편하다. 발판을 장착할 정도로 차가 높지 않은데 괜히 달아놓은 사족 같은 느낌이다. 트렁크 공간은 생각보다 적재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 SUV임에도 도심 주행에 최적화됐기에 많은 짐을 실어야 하는 아웃도어 활동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EQE 500 4매틱 SUV는 영구자석 동기모터(PMSM·Permanent Magnet Synchronous Motor)가 장착됐다. PMSM의 장점은 출력 밀도가 높고 효율이 우수하다는 점이다. EQE 500 4매틱 SUV 성능은 최고 출력 476마력, 최대 토크 87.49㎏f.m다. 전기차로서 매우 준수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차 무게가 2510㎏에 달해 육중하지만, 모터 힘이 차 자체를 상당히 강한 힘으로 떠받치고 있다.
가속페달에 아주 작은 힘을 줬는데, 차는 놀라우리만큼 빠르게 반응한다. 도로의 제한속도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결코 길지 않다. 전기차 토크 특성상 가능한 일이다. 내연기관차에 비해 전기차는 토크 전달이 빛의 속도와 맞먹는다.
곡선주로에서도 차가 뒤뚱거리지 않는다. 원심력이 강하게 걸릴 법하지만, 차는 안정적으로 코너를 빠져나간다. 도로 접지력이 좋은 네 바퀴 굴림 차인 덕분이다. 여기에 주행 상황에 따라 앞뒤 바퀴의 조향각이 최대 10도 틀어지는 리어 액슬 스티어링이 장착됐다. 리어 액슬 스티어링은 코너를 돌 때 뒷바퀴를 앞바퀴와 같은 각도로 틀어 차체가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원심력을 최소화한다. 그만큼 차가 안정적으로 돌아 나간다. 주차, 유턴 등의 상황에서는 뒷바퀴가 앞바퀴와 반대 방향으로 틀어지면서 회전각이 커진다. 도심에서 조금 더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다.
EQE 500 4매틱 SUV의 배터리 용량은 88.8㎾다. 중국 CATL의 삼원계(니켈·코발트·망간)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했다. 국내 인증 기준으로 최대 401㎞(상온·복합)를 달린다고 한다. 그러나 체감 주행거리는 이 이상이다. 얼마나 달릴 수 있는지가 표시돼 있는 자동차 내 트립 컴퓨터 모니터에는 주행가능 거리가 500㎞로 꽤 길다. 덕분에 주행거리를 의식하지 않고 곳곳을 다닐 수 있었다.
겨울 등 저온 환경에서는 주행거리가 짧아질 수밖에 없다. 국내 인증 기준으로도 EQE 500 4매틱 SUV는 250㎞밖에 달리지 못한다. 이에 DCU와 히트펌프 기능이 들어갔다.
전기차에 첫 적용이라는 DCU는 큰 힘이 들어가지 않는 주행 상황에서 동력을 차단하는 기능이다. EQE 500 4매틱 SUV는 앞바퀴와 뒷바퀴에 전기모터를 각각 적용했는데, 큰 힘이 필요하거나 고속일 때는 두 개의 모터를 모두 돌려 네 바퀴 굴림 차처럼 움직인다. 도심 같은 저속 상황에서는 DCU가 앞바퀴 동력을 차단하고 뒷바퀴만 움직이는 뒷바퀴 굴림 차가 된다. 두 개의 모터를 쓰다가 하나만 돌아가니, 그만큼 전력 사용량은 줄고 주행거리를 더 확보할 수 있다.
히트펌프는 모터나 배터리 등에서 발생하는 열을 겨울철 실내 온도를 높이는 데 쓰는 기능이다. 난방을 위해 별도로 전기를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남은 전력을 온전히 동력에 사용할 수 있다.
회생제동 기능은 수준이 높은 편이다. 스티어링휠(운전대) 뒤쪽의 스위치를 조절하면 강한 회생제동, 약한 회생제동, 지능형(인텔리전트) 회생제동을 고를 수 있다. 강한 회생제동은 가속페달 하나로 가속과 정지가 가능한 원페달 드라이빙을 할 수 있다. EQE 500 4매틱 SUV 가격은 1억2850만원이다. 함께 출시된 EQE 350 4매틱 SUV는 1억990만원에 판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