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에 있는 
까르푸 쓰위안차오 지점. 
8월 말 이미 폐점해 입구가 막혀 있다. 사진 이윤정 기자
9월 5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에 있는 까르푸 쓰위안차오 지점. 8월 말 이미 폐점해 입구가 막혀 있다. 사진 이윤정 기자

9월 5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까르푸 쓰위안차오 지점. 매장 입구는 노란 철제 울타리와 붉은 띠로 막혀 있었고, 안쪽 진열대는 물건 하나 없이 텅 비어있었다. 이곳은 베이징에 남은 마지막 까르푸 지점이었지만, 결국 지난 8월 말 문을 닫았다. 그런데도 고객의 발길은 이어지고 있었다. 까르푸 선불카드를 미처 다 소진하지 못해 방법을 찾는 이들이다. 이날 유일하게 출근한 직원은 고객의 항의에 “재고만 확보하면 이달 중 다시 문을 연다고 하니 일단 기다려 보라”면서도 “정확한 영업 재개일은 알 수 없다”고 했다.

까르푸 쓰위안차오 지점의 폐점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7월 31일 매장을 찾았을 때도 현장은 재난영화 속 무질서한 사재기 끝에 엉망이 된 대형마트 모습과 흡사했다. 각종 물건이 뒤섞인 채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신선식품은 물론 공산품까지 대부분 매대가 텅텅 비어있었다. 그나마 재고가 있는 것은 냉동식품과 조미료 등 유통기한이 비교적 긴 제품뿐이었다. 깨진 유리조각과 정체 모를 오물로 바닥 청소가 시급해 보였지만, 매장을 돌아다니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쇼핑카트조차 찾을 수 없어 고객은 매장 내 굴러다니는 박스를 주워 물건을 담아야 했다.

이날 기자가 고객센터 직원에게 선불카드 처리 방법을 문의하는 사이 한 남성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는 “남은 선불카드가 있으면 내게 팔아라”라며 “값은 잘 쳐주겠다”고 제안했다. 이미 베이징에 남은 까르푸가 없는데 선불카드로 뭘 하려는 것인지 묻자 “아직 상하이엔 까르푸 연 곳이 있으니 거기서 쓰면 된다”고 했다. 이 남성과 대화를 시작하자 순식간에 네 명이 나타나 “나한테 선불카드를 팔라”며 기자를 둘러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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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사 대금 밀려 소송…韓 오리온도 피해

1995년 중국 시장에 진출해 한때 ‘중국 3대 슈퍼마켓’까지 올랐던 프랑스의 까르푸가 중국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12년 전성기까지만 해도 중국 전역에 321개 점포를 보유하고 있었던 까르푸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151개로 줄었고, 올해 1분기에는 33개 매장이 추가로 문을 닫았다. 이후에도 폐점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현재 중국 내 까르푸 매장은 100개가 채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은 물론 광둥성 대표 도시인 광저우와 선전에서도 모두 철수했고, 후베이성 성도인 우한에서도 까르푸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인이 까르푸에 등을 돌린 데는 두 가지 사건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열악한 티베트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참여를 거부하자”고 주장하자 중국인이 까르푸 불매운동을 벌인 것이 까르푸의 첫 번째 위기였다. 이후 2011년 까르푸가 원가를 속이거나 가격표보다 더 높은 값을 받는 식으로 ‘꼼수’를 부린 것이 들통나고, 10년간 직원 임금을 동결한 것이 알려지면서 브랜드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금의 까르푸 역시 이미 껍데기일 뿐이다. 프랑스 까르푸 본사는 2019년 중국 가전 유통 기업 쑤닝닷컴에 까르푸 중국 법인 지분 80%를 매각하고 중국 시장에서 사실상 철수했다. 쑤닝닷컴은 까르푸를 온·오프라인 통합 슈퍼마켓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지난해 까르푸는 33억3700만위안(약 6063억3290만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2020년 순손실(7억9500만위안)보다 320% 가까이 확대된 수준이다. 

까르푸의 경영난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대만 1위 제과 기업 왕왕그룹은 까르푸로부터 2000만위안(약 36억3400만원) 이상의 대금을 받지 못해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 오리온의 중국 법인 하오리요우도 까르푸의 은행 예치금 2274만위안(약 41억3200만원)에 대한 동결을 신청하고 추심에 나선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현재 공급사들은 까르푸에 제품 공급을 대부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까르푸가 문을 열고 싶어도 못 여는 사정이 여기에 있다. 지난 4월부터 정리해고에 나섰지만, 직원에게 보상금과 퇴직금도 지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경제 매체 제일재경은 쑤닝닷컴이 까르푸를 인수하면서 대형마트 공급망에 정통한 기존 까르푸 인사들을 쑤닝닷컴 쪽 인사로 대거 교체한 것이 패착이라고 봤다. 대형마트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이들이 이끌다 보니 남아있던 까르푸의 장점들까지 손상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전자상거래 위주로 중국 유통시장 환경이 변화하는 가운데 적시에 대응하지 못한 점도 까르푸 몰락을 불러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베이징상보는 “한때 슈퍼마켓의 간판 브랜드이자 대형 매장의 원조였던 까르푸는 비즈니스 전환 기회를 여러 번이나 놓쳤다”며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까르푸가 물품을 확보해 문을 다시 연다고 해도 소비자와 파트너사의 신뢰는 이미 바닥난 상황이라 재기가 불투명하다. 까르푸는 올해 들어 현금 확보를 위해 소비자의 선불카드 사용을 제한했다. 구매 금액의 20%만 선불카드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제일재경은 “2월부터 선불카드 사태를 포함, 까르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각 지역 및 온라인에서 점차 확대돼 왔다”며 “이 같은 여론은 공급 업체를 비롯한 파트너사의 신뢰를 낮춰 유동성 압력 증가, 공급망 차단을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Plus Point

中 상하이, 백화점 천국은 옛말
대만·프랑스·일본계 짐 쌌다

8월 31일 영업을 중단한 중국 상하이의 대만계 타이핑양백화점이 간판을 내리고 있다. 사진 웨이보
8월 31일 영업을 중단한 중국 상하이의 대만계 타이핑양백화점이 간판을 내리고 있다. 사진 웨이보

중국 유통시장에서 고전하는 외국 기업은 까르푸만이 아니다. 특히 중국 첫 ‘현대식 백화점’이 들어선 곳이자 외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 진출할 때 최우선 지역으로 꼽히는 상하이에서 이 같은 분위기가 더욱 짙게 나타나고 있다. 

1993년 문을 연 이후 상하이의 랜드마크로 꼽혔던 대만 위안둥그룹의 타이핑양백화점 쉬후이점이 8월 31일 문을 닫았다. 위안둥그룹은 상하이에 쉬후이점을 포함해 총 세 곳의 백화점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각각 2016년과 2020년 문을 닫았고, 쉬후이점까지 정리하면서 상하이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됐다. 

프랑스 프렝탕백화점 역시 한때 상하이에 11개 지점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현재 7개 지점만 남아 있다. 1993년 일본 백화점 중 최초로 중국에 진출한 이세탄은 중국 내 첫 점포인 상하이 화팅 지점을 2008년 폐쇄했고, 상하이 난징시루 지점 역시 내년 임차 기간이 만료되면 영업을 중단할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유통 업체들이 중국 시장에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변화하는 소비 형태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점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력이 약화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끝나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소비 여력도 외국 유통 업체의 경영난을 부추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