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 미국 UC 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 미국 미시간대 인류학 석·박사, 현 UC 리버사이드 교수의회 의장, 
전 일본 소고켄큐다이가쿠인대 박사후연구원, 
전 UC 리버사이드 인류학과장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이상희 미국 UC 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 미국 미시간대 인류학 석·박사, 현 UC 리버사이드 교수의회 의장, 전 일본 소고켄큐다이가쿠인대 박사후연구원, 전 UC 리버사이드 인류학과장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남성은 사냥하고, 여성은 과일과 버섯을 딴다. 원시사회를 그린 영화나 책에 등장하는 성(性) 분업 가설이 잘못된 신화로 밝혀졌다. 미국 워싱턴대 인류학과 카라 월-셰플러(Cara Wall-Scheffler) 교수 연구진은 지난 7월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전 세계 수렵·채집 사회 10곳 중 8곳에서 여성도 사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상희 미국 UC 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는 당시 소셜미디어에 “워싱턴대 논문은 2019년 내가 대학원생과 같이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에서 나온 책에 실은 논문을 읽은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이라고 글을 올렸다.

이 교수는 앞서 국내 언론에 성 분업 가설이 틀렸다는 칼럼을 실었다. 그때 인터넷에 ‘남자는 사냥하고 여자는 채집했다는 기본 상식도 모르는 X가 무슨 학자’라 댓글이 올랐다. 이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하도 화가 나서 열심히 그 주제로 글을 썼는데 이제 결실을 보게 된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이상희 교수는 ‘한국인 1호 고인류학 박사’로 유명한 학자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후 미국 미시간대 인류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2004년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3만 년 전 인류 사회에 노년층이 급증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문화가 태동했다고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인류 문명을 발전시킨 주역은 할아버지, 할머니였다는 증거를 찾은 것이다. 이 교수는 고인류학 연구 논문 50여 편을 발표하면서 대중에게 고인류학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지난 2015년 발간한 ‘인류의 기원’은 8개 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올해는 최신 고인류학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인류의 진화’를 출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 9000년 전 안데스 고원지대에서 사냥하는 여성 상상도. 사진 UC 데이비스 2 소녀가 네안데르탈인 복원상(왼쪽)을 보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인은 DNA에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1~2% 갖고 있다. 사진 독일 네안데르탈인 박물관 3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석회암 동굴에서 발견된 4만5000년 전 멧돼지 그림. 동물을 그린 가장 오래된 벽화다. 사진 호주 그리피스대
1 9000년 전 안데스 고원지대에서 사냥하는 여성 상상도. 사진 UC 데이비스 2 소녀가 네안데르탈인 복원상(왼쪽)을 보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인은 DNA에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1~2% 갖고 있다. 사진 독일 네안데르탈인 박물관 3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석회암 동굴에서 발견된 4만5000년 전 멧돼지 그림. 동물을 그린 가장 오래된 벽화다. 사진 호주 그리피스대

기존 관념을 뒤집는 결과들이 계속 나온다.
“지난 10년은 지적 완고함이 깨지는 시기였다. 예전 같으면 미친 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상한 소리로 치부됐을 주장이 지금은 한 번 더 생각을 해보는 분위기다.”

6월에는 머리가 침팬지 크기인 미스터리 고인류인 호모 날레디(Homo naledi)가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나 사촌 격인 네안데르탈인보다 16만 년 앞서 무덤을 만들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매장은 이승에 대한 개념을 가져야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두뇌 용적 1400cc인 네안데르탈인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고차원적 일을 두뇌 용적 400~600cc에 불과한 고인류가 했다니 충격이었다. 물론 그 주장은 아직 논란이 많다. 그렇지만 많은 학자가 예전에 생각하지 않았던 가설을 더 많이 연구하는 변화를 반영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갑자기 전에 없던 발굴 결과물이 엄청나게 쏟아진 게 아니라는 말인가.
“발굴은 전처럼 꾸준히 하고 있고, 결과를 새롭게 보는 시각들이 좀 더 자유롭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예전에 묻지 않던 질문을 던지고 발굴하는 흐름도 있다. 그런 부분에서 정사(正史)와 야사(野史)의 구분이 사라진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인류학에서 최근 가장 급격하게 생각이 바뀐 것은 무엇인가.
“먼저 생각나는 건 두뇌 크기다. 지금까지 두뇌가 커야 도구를 만들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인간이 포함된 호모 속(屬)이 나오기 전 출현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도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동안 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시작해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을 거쳐 마지막으로 가장 뛰어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고 배웠다.
“20세기 중반까지 단선적 진화가 정설이었다. 20세기 후반에는 나뭇가지처럼 뻗어가는 진화도로 바뀌었다. 공통 조상에서 두 개 이상의 자손으로 진화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다시 새로운 진화도가 나왔다. 가지가 얽히듯, 서로 다른 종 사이에서도 유전자 교환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스반테 페보 교수가 호모 사피엔스와 사촌 격인 동시대의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이 서로 피를 나눴음을 증명한 공로로 지난해 노벨 의학상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페보 교수는 1997년부터 네안데르탈인 화석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분석했는데 처음엔 호모 사피엔스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다가 2010년에 DNA의 30억 개 염기 전체를 해독했더니 그중 4%까지 오늘날 인류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이전 연구를 부정하고 고인류가 서로 피를 나눴다고 생각을 바꿨다.”

단선적이고 일방통행식 인류 진화는 없었다는 말인가.
“인류의 진화는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앞으로 행진하는 모습도, 곁가지와 본가지로 갈라져서 울창한 아름드리나무가 되는 모습도 아니다.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고 다시 갈라지는 강줄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아시아 고인류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도 밝혀지고 있다고 들었다.
“2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출현하고 70만 년 전부터 아시아로 퍼졌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최근 210만 년 전 고인류 화석이 중국에서 나왔다.”

인류가 아프리카와 아시아 양쪽에서 기원했다는 말인가.
“호모 속이 아프리카에서 나와 빠르게 아시아로 갔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아시아에 가서 따로 호모 속으로 진화했을 수도 있다. 중국의 고인류 연구가 발전하고 국제 학계와 활발히 교류하면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 밝혀질 수 있다.”

동남아시아도 인류 진화에서 중요한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류가 이주할 때는 자원을 얻기 쉬운 해안선을 따라갔을 것이다. 그 점에서 동북아시아인의 기원도 동남아시아로 볼 수 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과거 유럽인이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과 같은 인종주의이다.”

호빗이 살았던 곳도 동남아시아로 들었다.
“2003년 인도네시아에서 나온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1m 키에 두뇌 용적이 침팬지보다 적은 380cc에 불과했다. 과학자들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온 키 작은 종족의 이름을 따 호빗족(族)이라고 불렀다.”

첫 동물 벽화 그린 고인류가 호빗이라는데.
“2021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동굴에서 4만5000여 년 전 멧돼지 그림이 발견됐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 벽화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두뇌가 침팬지보다 작았지만 처음으로 동물 벽화를 그린 고인류일 수 있다.”

고인류학자가 되려면 어떤 공부가 필요할까.
“재미없는 답이겠지만 닥치는 대로 많이 읽고 쓰는 공부를 해야 한다. 고인류는 자료가 많지 않아 상상력이 중요하다. 수학이나 유전학만 잘한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 자체가 다방면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궁금하면 정말 많이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