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무역 갈등을 시작으로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미·중 양국은 반도체와 전기차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미국은 중국에 대한 첨단산업 제품 수출 통제에 이어 자본 투자 제한에 나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8월 9일(현지시각)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 등 미국 자본이 투자 우려국인 중국의 첨단 반도체와 양자 컴퓨팅, 인공지능(AI) 등 세 개 분야에 투자하는 것을 규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것은 물론 미국 기술이 중국군 현대화에 사용되지 못하도록 하는 안보적 조치 차원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미국이 중국의 발전 권리를 박탈해 패권의 사익을 지키려는 것”이라며 “적나라한 경제적 강압이자 과학기술을 이용한 집단 괴롭힘”이라고 비난했다. 미국은 올해 대(對)중국 정책을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으로 전환하고 있다. 거대 시장인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반도체 등 중국의 군사 기술 발전으로 연결될 수 있는 최첨단 기술만을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는 이에 대해 표현만 바꾼 제스처라며 미국의 대중국 첨단산업 억제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고 폄하하는 목소리가 많다. 필자는 “미·중 갈등은 세계경제를 파괴하고 관념에 어긋나는 (핵) 분쟁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며 미국에 중국과 디커플링보다는 디리스킹으로 접근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어 “경제 및 지정학적 긴장을 완화하고 기후변화 및 AI 규제 같은 글로벌 이슈에 대한 건전한 협력을 촉진하는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블룸버그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블룸버그

미국과 중국은 여전히 충돌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현재의 미·중 신냉전은 결국 대만이라는 매개로 뜨거워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떠오르는 강대국은 필연적으로 기존의 패권국과 충돌한다는 ①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이 불길하게 고개를 드는 형국이다. 그러나 전쟁뿐만 아니라 미·중 간 심각한 긴장 고조로 인한 대격변을 막을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
현 투자자문사 아틀라스 
캐피털 팀 수석경제학자 겸 
공동 창립자, 전 미 대통령경제
자문위원회 수석 이코노미스트, ‘초거대 위협’ 저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
현 투자자문사 아틀라스 캐피털 팀 수석경제학자 겸 공동 창립자, 전 미 대통령경제 자문위원회 수석 이코노미스트, ‘초거대 위협’ 저자

새로 부상하는 강대국이 기존 강대국에 도전할 때는 어느 정도의 긴장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중국과 대결하는 미국은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화하는 가운데 자국의 전략적 쇠퇴를 막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상태다. 미·중 양측은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망상적인 심리 게임을 벌이고 있으며, 건전한 경쟁과 협력보다 대립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 양측 모두 책임이 없지 않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체제하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이라는 개념을 고수하기보다는 더욱 권위주의적인 국가 자본주의로 나아갔다. 또한 덩샤오핑의 ‘힘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자(도광양회·韬光养晦)’는 원칙은 군사적 공세주의로 바뀌었다. 중국이 점점 더 공격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하면서 중국과 여러 아시아 이웃 국가 간 영토 분쟁도 악화했다. 중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장악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만과 ‘통일’하려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나 시 주석은 오히려 미국이 ‘포괄적 봉쇄, 포위, 억압’이라는 공격적인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면 미국인 다수는 중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 지역의 상대적 평화, 번영,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미국의 아시아 패권에 도전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 지도자는 미국이 반세기 동안 미·중 관계를 지탱해온 ‘하나의 중국(One China)’ 원칙을 더 이상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미국이 대만과 관련해 (지지·방어할 것이라는) 명백한 입장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미국·영국·호주 간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 협정, 미국·호주·인도와 함께 구축한 안보협의체 쿼드(Quad),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아시아 영역 확장을 통해 인도·태평양 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중국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우려가 어느 정도 과도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경제 부상에 대한 미국의 불안감은 수십 년 전 독일과 일본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과하게 걱정하는) 태도를 연상시킨다. 현재 중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달성한 연간 10% 경제성장률을 3~4%대로 떨어뜨릴 수 있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인구 고령화와 높은 청년 실업률, 민간 및 공공 부문의 높은 부채 수준, 집권 공산당의 압박으로 인한 민간 투자 감소, 생산성을 저해하는 국가 자본주의에 대한 집착 등이다. 게다가 경제 불확실성 심화와 사회 안전망 부재 등으로 인해 중국의 내수 소비가 부진했다.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이 시작되면서 중국은 이제 바로 옆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장기간의 저성장을 의미하는 ② 저패니피케이션(Japanification·일본화)을 걱정해야 하는 때가 됐다. 다른 많은 신흥 경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은 고소득 국가로 도약해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 되기보다는 ‘중간 소득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중국의 잠재적 부상을 과대평가함과 동시에 자국이 AI, 반도체, 양자 컴퓨팅, 로봇 공학 등 미래 산업과 기술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을 수도 있다. 중국은 ‘중국 제조 2025’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러한 몇몇 분야에 투자해 왔지만, 미래 10대 산업에서 빠르게 우위를 점하겠다는 포부는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중국이 아시아를 지배할 것이라는 미국의 우려도 과하다. 중국은 거의 20개국에 둘러싸여 있고, 이들 중 상당수는 전략적 라이벌 또는 ③ 프레너미(frenemy·우방이자 적인 모호한 관계)다. 북한 같은 몇 안 되는 동맹국 대부분은 중국의 자원을 소모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통해 새로운 우방을 개척하고 의존 관계를 구축하려 했지만, 대규모 프로젝트의 실패로 채무 불이행이 발생하는 등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또한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남반구나 북반구 저위도에 있는 아시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 등의 개발도상국) 및 국제 스윙 국가(정치적 편향성이 명확하지 않은 국가)를 포섭하려는 야망에 많은 중견국이 저항하고 있다. 

미국이 제재를 통해 핵심 기술이 중국 군부 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AI 분야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중국의 추격을 따돌린 것은 정당한 조치다. 그러나 필요한 일부 기술과 중국에 대한 직접 투자 제한을 제외하고는 중국과 디커플링보다는 디리스킹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미국이 ‘작은 마당, 높은 울타리’ 전략을 어느 산업에까지 적용할지 고민할 때 도를 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부과한 무역 제재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소비재에 적용된 것이며 단계적으로 폐지돼야 한다.

대만과 관련해선 미국과 중국이 갈등이 고조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하나의 중국을 재확인하면서도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원칙에 따라 외교정책을 펼쳐야 한다. 미국이 대만이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필요한 무기를 판매하는 게 맞을 수 있지만, 대만 섬 전체를 요새화하는 ‘고슴도치’ 방어 전략으로 너무 과하게 지원이 이뤄진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도록 자극할 수 있는 속도나 규모를 조심해야 한다. 중국의 경우는 대만 인근에서 공군 및 해군의 침범을 중단해야 한다. 궁극적인 통일은 평화적이고 상호 합의된 통일이 될 것이란 걸 분명히 밝히고,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조치에 나서야 한다. 동시에 영토 분쟁으로 조성된 다른 이웃 국가들과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

중국과 미국은 모두 경제 및 지정학적 긴장을 완화하고 기후변화 및 AI 규제 같은 글로벌 이슈에 대한 건전한 협력을 촉진하는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현재 대립을 초래하는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얻지 못하면 충돌은 필연적일 것이다. 이는 세계경제를 파괴하고 관념에 어긋나는 (핵) 분쟁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군사 대결로 이어질 것이다. 미·중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는 양측 모두의 전략적 자제를 필요로 한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새로 부상하는 신흥 세력이 기존 패권 세력의 자리를 위협할 때 극심한 구조적 갈등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일컫는 개념이다.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가 2017년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제시했다. 앨리슨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기술한 펠로폰네소스전쟁(기원전 431~404)이 급격히 부상하던 아테네와 이를 견제하려는 스파르타가 빚어낸 구조적 긴장 관계의 결과였다고 설명하고, 이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 불렀다.

한 국가가 1990년대 일본이 겪었던 장기 경기 침체와 유사하게 낮은 경제성장률, 디플레이션 등을 장기간 경험하는 현상. 원래 여러 나라의 젊은이가 일본 문화에 열광하는 것을 뜻했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선진국들이 위기에서 빨리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많은 언론 매체가 저패니피케이션을 사용해 설명하면서 의미가 확장됐다.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로, 이해관계로 인한 전략적 협력 관계인 동시에 경쟁 관계에 있는 것을 뜻한다. 국제 관계에서 전통적인 동맹 관계가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협력을 맺는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실리 중심의 프레너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