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친구 A는 어릴 적에 농사를 지어 본 적은 없지만, 평소 캠핑을 즐기고 땀 흘려 운동하는 것을 즐긴다. 교외에 텃밭을 분양받아 부지런히 채소를 재배한다. 그렇게 기른 채소를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는다. 은퇴하면 고향 집에서 텃밭이나 가꾸며 소일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다른 친구 B는 A와는 사뭇 다른 성정을 지니고 있다. 운동도 싫어하고 캠핑도 좋아하지 않는다. 교외에 나가는 것은 좋아하지만 호텔이나 콘도에서 편히 쉬는 것을 즐긴다. 텃밭을 분양받아 채소를 기르는 것은 생각도 해 본 적 없다. 그는 퇴직 이후에도 서울을 지킬 것이다.
그런데 A와 B 두 친구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둘 다 자연에서의 체험이나 야생동물의 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그중에서도 깊은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 사는 이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A는 그렇다 쳐도 B는 왜 그런 것일까.

자연 노출 줄어든 현대인
한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현대 미국인은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화면을 응시하며 산다고 한다. 그것이 휴대전화든 태블릿 PC든 텔레비전 화면이나 냉장고에 부착된 모니터든 상관없이 말이다. 요즘의 한국인도 매일반일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동시에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지구촌에서 이런 추세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우리가 자연에 노출되는 시간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사람들이 자연에 노출되면, 즉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 그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매우 많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아진다.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된다. 햇볕을 쬐면 비타민D 수치도 높아진다. 싱그러운 자연을 접하면서 원거리 시력도 좋아지고 인지능력도 좋아진다. 혈압이나 암, 당뇨병 위험의 감소에도 도움 된다. 스트레스나 우울증, 불안과 분노를 줄이고 심장박동 수를 늦춰 평온한 마음을 회복하고 자신감이나 자존감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사회적으로는 공감 및 협력 행동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우리가 이렇게 자연과 연결될 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먼저 ‘바이오필리아(Biophilia) 가설’이 있다. 바이오필리아는 1970년대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주창한 것이다. ‘살아있는 유기체에 둘러싸여 있는 데서 오는 풍부하고 자연스러운 즐거움’을 뜻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연과 연결되려는 타고난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먼 옛날 우리 조상이 야생의 환경에서 살던 시절부터 생존을 위해서는 자연에 의존했기 때문에 그런 성향이 생겼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스트레스 감소 가설’도 있다. 자연과 연결, 즉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사람들의 스트레스 수준을 낮추는 생리적 반응을 유발한다는 주장이다. 세 번째 ‘주의력 회복 이론’도 있다. 자연과 연결되면 자연이 사람의 인지적 자원을 보충해서 주의 집중하는 능력을 회복시킨다는 주장이다.
바이오필리아 가설이 좀 더 궁극적인 데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면, 나머지 두 이론은 원인이라기보다는 자연과 연결이 주는 결과에 따른 상관관계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어떤 이론이 정설인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앞의 세 가지 이외에도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할 것이다.
자연과의 재연결은 인류에게 유익
원래 사람은 자연이라고 하는 큰 전체의 극히 작은 일부이다. 우리가 자연 속의 한 부분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기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말 그대로 ‘나는 자연인이다’는 프로그램 속에 나오는 사람처럼 오지에 숨어 들어가라는 말이 아니다. 문명의 그림자가 덜 드리운 자연에 노출되는 것, 그런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소박한 개념이다. 이것을 요즘 서양인은 ‘자연과 재연결(reconnecting with nature)’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앞에서도 얘기했다시피 이러한 자연과 재연결은 우리에게 여러 면으로 유익하다. 심리학자 리사 니스벳 캐나다 트렌트대 교수는 말한다. “자연이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웰빙 모두에 좋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 자연 속, 도시의 자연 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 자연과 연결되는 느낌은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자연에 몰입하지 않을 때도 행복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니스벳 교수에 따르면, 우리가 직접 물리적으로 자연에 몰입하지 않을 때, 그러니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같은 동영상 혹은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연과 접할 때도 유사한 행복감을 준다. 그렇다면 개성이 판이한 내 친구 A와 B가 뜻밖에 ‘나는 자연인이다’는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공통점을 가진 것은 그들이 무의식중에 이런 행복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녹지 공간 많은 곳에서 자란 아이 인지능력 발달
자연과 연결은 여러 가지 인지적 이점이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학교나 어린이집 근처에 녹지 공간이 많은 곳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은 그렇지 못한 곳에서 자라는 아이들보다 인지적으로 더 발달하고 더 자제력 있게 행동한다. 성인 역시 녹지 공간이 풍부한 곳에 거주하는 이들이 그렇지 못한 곳에 거주하는 이들보다 주의력과 인지적 유연성이 높다고 한다.
호주의 한 연구팀이 학생들에게 화면상에 특정 숫자가 깜빡일 때 키를 누르는 다소 지루하고 집중을 요하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한 팀은 과제를 하는 중간에 잠시 쉬면서 약 40초 동안 멀리 꽃이 만발한 녹색 지붕을 바라보게 한 반면, 다른 한 팀은 이런 과정을 생략했다. 놀랍게도 1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녹색 지붕을 바라본 학생들이 그러지 않은 학생들보다 실수가 훨씬 적었다. 잠시 자연과 연결된 것만으로 자연은 빠른 치유력과 회복력을 선물해 주는 것이다.
또 다른 실험은 자연의 소리와 인공의 소리를 가지고 이뤄졌다. 한 팀의 실험 참가자들에게는 자연의 소리, 즉 귀뚜라미 울음소리나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듣게 했다. 다른 한 팀에게는 인공의 소리, 예컨대 도심 출퇴근 시간에 자동차가 오가는 소리나 바쁜 카페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들려줬다. 자연의 소리를 들은 팀이 인공의 소리를 들은 팀보다 다소 까다로운 인지 테스트에서 더 나은 성과를 보였다고 한다.
이처럼 자연과 연결되는 것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유익하다. 심지어 이런 연구도 있다. 영국에 거주하는 35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다소 고립돼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연과의 연결성이 높은 사람은 높은 수준의 웰빙을 보였다는 것이다. 연구책임자인 화이트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반드시 타인과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더라도,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고, 그것이 그들의 행복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내가 보기엔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사람들이 딱 그런 사람들이다.
‘자연 결핍 장애’ 예방 중요
결론은 자명하다. 대자연은 따뜻한 엄마의 품처럼 우리를 감싸 안는다. 일상에 지치고 힘든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시켜 준다. 공원이나 숲 같은 녹지 공간이나 강이나 바다 같은 푸른 공간과는 무조건 친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모니터만 보고 있지 말고 시간 나는 대로 자연을 찾아 나서야 한다.
야외가 안 되는 사람이라면 도심 속 공원이라도 산책해야 한다. 채소밭을 가꿀 의향이 없는 사람은 집 안에 화분 하나라도 들여놓자. 잿빛 아파트를 환하게 바꿀 싱그러운 녹색식물을 키워야 한다. 영국에서 2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주에 2시간 이상 자연을 접한 사람은 그러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더 건강한 한 주를 보낼 수 있다고 한다.
아직 정식으로 정신의학 용어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자연 결핍 장애(nature deficit disorder)’라는 게 있다. 야외에서 그러니까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면 광범위한 행동 문제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이 말씀하신 물아일체(物我一體), 그러니까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고도의 자연과 연결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와 내 가족이 자연 결핍 장애로 고생해서는 안 될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