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은 C막걸리 대표가 
제품별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기자
최영은 C막걸리 대표가 제품별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기자
404가 무슨 뜻인지 아는가. 404는 응용 프로그래밍에서 흔히 사용하는 오류 코드를 말한다. 영어로는 Not found, 혹은 요청한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등의 뜻으로 쓰이는 용어(에러 코드)다.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원치는 않지만 숱하게 만나게 되는 친숙한 용어다. 하지만 관련 업무를 하지 않는 사람 대부분은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용어다. 최근에 이 용어(404 not found)를 술 이름으로 한 막걸리를 내놓은 양조장이 있어서 화제다. 술병 라벨(404 not found) 역시, 프로그래밍 폰트 그대로 가져왔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 사이에서 친숙한 코드인 404를 그대로 술 이름으로 썼다는 의미는 다시 말해 특정 직업군(소프트웨어 개발자)을 염두에 둔 최초의 술이란 뜻이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서 소규모 양조장으로 시작했다가 2022년 경기도 양평으로 둥지를 옮긴 C막걸리 최영은 대표 이야기다.
C막걸리 신제품 막걸리 
‘404 not found’. 사진 C막걸리
C막걸리 신제품 막걸리 ‘404 not found’. 사진 C막걸리

프로그램 에러 코드 상징하는 이름

“이 술은 나 혼자 만든 게 아니라, 개발자 프로그래밍 인기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조코딩님 그리고 주류 스마트오더 플랫폼 업체 이렇게 ‘3인’이 컬래버해서 만든 막걸리다. 조코딩님이 이 술의 스토리텔링을 맡았다. 대개 개발자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며칠 밤을 꼴딱 새워가며 일한다더군. 프로그래밍을 짤 때마다 수도 없이 만나는 에러 코드가 404고. 이런 에러 코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또 결국 사무실에서 날밤 새우고 아침을 맞는 힘든 과정, 그런 스토리를 ‘404 not found’ 막걸리에 담았다.” 

그래도 그렇지 전통주 이름이 404 not found라니. 이 뜻을 모르는 사람은 아예 이 술에 관심도 두지 말란 말인가. 막걸리 이름치고는 가장 이상한 경우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느린마을 막걸리, 장수 막걸리, 지평 막걸리 같은 이름에 익숙한 40·50세대는 어쩌라고. 그러나 술 이름이야 양조장 맘대로 짓는 것이니 괜히 더 불평했다가는 ‘꼰대’ 소리밖에 더 듣겠는가.

그럼 404 not found 막걸리 맛은 어떻고 또 시장 반응은 어땠을지 궁금했다. 쌀을 주재료로 한 이 술에는 도라지와 둥굴레가 부재료로 들어갔다. C막걸리 술은 죄다 다채로운 부재료가 특징이다. 2020년 서울 강남에서 소규모 양조장으로 출발한 C막걸리는 건포도, 블루베리, 라벤더, 당근, 카카오닙스 등을 넣어 전통주 시장에 ‘부재료 막걸리’ 시대를 활짝 연 주역이다. 부재료 막걸리란 곡물에서 비롯되는 고소한 향과 단맛 외에 다양한 향, 풍미, 색상을 내기 위해 쌀을 주원료로 하되, 다양한 원료들을 소량 첨가한 막걸리를 말한다. C막걸리 술은 옆으로 나란히 세워두면 무지갯빛이 연상될 정도로 술 색깔도 다채롭다.

‘막걸리 맛을 한 가지로 규정 짓지 말자’며 수제 맥주 빚듯이 실험 정신으로 빚은 다양한 술이 C막걸리 술이다. C막걸리 이전 부재료 막걸리로는 오미자 같은 과일 막걸리가 대부분이었다. C막걸리 양조장은 전 제품이 부재료 막걸리로, 순곡주(쌀로만 빚은 술) 제품 자체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라지와 둥굴레를 넣은 404 not found 막걸리를 내놓았다.

올 5월에 출시된 이 술의 시장 반응도 괜찮은 편이다. 2000병씩 두 차례 론칭 행사가 조기에 마감됐고, 3차 행사도 순항 중이다. 최영은 대표는 “소프트웨어 개발 종사자들뿐 아니라, 새로운 맛에 즐겨 도전하는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도 술 이름(404 not found)과 맛이 독특하다고 좋아들 한다”고 말했다.

C막걸리 술은 최근 더 다채로워졌다. 2020년 서울에서 양조장을 열었다가 2년 뒤인 2022년 4월 경기도 양평으로 이전하면서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선 양평산 재료를 보면, 쌀은 기본이고 배즙, 딸기, 블루베리, 둥굴레, 도라지를 술에 넣고 있다. 인근 가평의 건포도, 여주 고구마, 광주의 토마토 그리고 강원도 홍천의 도라지도 사용하고 있다. 최 대표는 “현재 사용 중인 지역 농산물만 10여 가지이고, 앞으로 술에 사용하겠다고 허가받은 농산물까지 치면 37가지에 이른다”고 말했다.

다양한 부재료 조합해 양조

막걸리 만드는 방법은 전통 주조 방식을 따르지만, 지금까지 전통주에 사용하지 않았던 다양한 부재료를 조합해서 술을 만드는 것이 C막걸리 양조장의 특징이다. 2020년 서울 강남에서 막걸리를 출시할 때부터 ‘부재료 막걸리’ 정체성은 변함이 없고, 오히려 부재료의 넓이와 깊이는 더 확대됐다. 이런 관계로 C막걸리 술은 스테디셀러 술이 많지 않다. 매 시즌 새롭게 한정 수량만 나오는 제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레시피 변경 없이 출시 때부터 지금껏 똑같이 만드는 술은 시그니처큐베 막걸리 한 제품뿐이다. 다양한 부재료가 특징인 반면, 인공감미료, 색소, 정제 효소는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것도 C막걸리의 특징이다. 무지갯빛 다양한 술 색깔 역시, 다양한 부재료에서 비롯된다. 양조장 시작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부재료 막걸리만 만들어온 최영은 대표의 말을 더 들어보자.

“한 가지 술을 많이, 그것도 오랫동안 꾸준히 팔 수 있으면 제일 좋지. 몇백 개가 넘는 막걸리 양조장 중 새카만 후발 주자로 뛰어들었으니, 어떻게든 선배 양조장과 차별화를 꾀하려 하다 보니까, 부재료 막걸리를 만들게 됐다. 또 쌀로만 빚은 순수 쌀막걸리는 이미 좋은 제품이 차고 넘쳐 가망이 없어 보인 탓도 컸고.”

C막걸리의 터줏대감 시그니처큐베 막걸리는 어떻게 만드는지 살펴보자. 이 제품은 일년 내내 생산되는, 몇 안 되는 ‘상시 생산 제품’이다. 주니퍼베리, 건포도 그리고 배즙을 가미해 유쾌한 산미를 강조한 술이다. 알코올 도수가 12도나 돼 일반 막걸리의 두 배로, 애주가를 겨냥한 제품이다. 시그니처큐베의 알코올 도수가 다소 부담스럽다면, 새로 나온 시그니처나인 막걸리는 어떨까. 우선 알코올 도수가 9도로 큐베보다는 많이 낮다. 특히 배즙 함량을 높여 단맛이 큐베보다 더 도드라진다. 그래서 C막걸리의 캐릭터는 그대로 담으면서도 훨씬 순하고 담백한 제품이 시그니처나인이다. C막걸리 제품 중 알코올 도수가 가장 높은 술은 ‘와일드그린 15’다. 쌀을 주원료로 이번에는 케일과 개똥쑥을 넣었다. 그래서 색상이 그린에 가깝다. 양조장이 있는 양평의 개똥쑥 생초를 넣어 술맛이 다소 쌉싸름하다. 알코올 도수가 15도나 되는 것은 발효 끝난 술에 물을 전혀 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도수가 워낙 높아 호불호가 있을 줄 알면서도 마니아층을 염두에 두고 높은 도수의 막걸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C막걸리 제품 중 물을 전혀 타지 않는 술은 와일드그린 15 제품이 유일하다. 이 제품이 다른 제품과 다른 점 하나는 제조 기간이 무려 6개월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대개 C막걸리 제품은 발효 2주, 숙성 4주 포함해 총 6주가 지나면 완성된다. 하지만 와일드그린 15는 여기에 5개월 더 추가 숙성을 거친 다음에 병입한다. 장기 숙성을 하는 이유는 향 때문이다. 향이 깊어지면서 동시에 부드러워진다. 개똥쑥의 진한 향이 조금 더 안정감 있게 변한다. 높고 거친 알코올도 많이 순해진다.

다음 목표는 톡톡 튀는 증류주

C막걸리 최영은 대표의 다음 목표는 증류주다. 막걸리를 증류하면 쌀증류주, 소주가 된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어렵다. 왜냐하면 증류를 거치면 발효주인 막걸리가 갖고 있는 향이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색상도 살릴 수 없다. 증류주는 맑고 투명하기 때문에 항아리에서 숙성할 경우, ‘무색’이다. C막걸리의 정체성인 다양한 색상과 향을 증류주로 살리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최영은 대표다. 그래서 고민도 깊다.

“증류주 레시피는 일단 만들어놨는데, 계속 테스트를 거치고 있다. 증류하더라도 향을 살릴 수 있는 부재료를 열심히 찾고 있다. 우리 막걸리 제품 시그니처큐베에 들어가는 주니퍼베리는 증류주 진을 만드는 주원료이지 않나. 주니퍼베리 그리고 쌉싸름한 향이 강한 개똥쑥 같은 원료는 증류 후에도 특유의 향을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막걸리 레시피와 증류주 레시피는 처음부터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적어도 2년 이상 개발 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기대하라. C막걸리 제품답게 톡톡 튀는 증류주를 꼭 만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