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콘도의 ‘주식 중개인’, 2002. 사진 구글
조지 콘도의 ‘주식 중개인’, 2002. 사진 구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열린 프리즈 서울 2023은 미술 애호가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세계적 유수한 갤러리들이 참가하면서, 작품의 다양성과 현대미술의 경향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중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작가는 지난해 38억원 최고가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출품한 미국 작가 조지 콘도다.

정철훈
미술 칼럼니스트, 
고려대 대학원 문화 
콘텐츠 박사 수료, 소장전 ‘리틀 사치전’ 개최
정철훈 미술 칼럼니스트, 고려대 대학원 문화 콘텐츠 박사 수료, 소장전 ‘리틀 사치전’ 개최

그는 고전주의를 바탕으로, 입체파와 표현주의, 팝아트적인 요소를 자기식으로 해석하여, 현대미술에 접목했다. 인물들의 얼굴을 조각내고 변형하여, 입체주의적 요소를 가미하고, 심리적 내면을 표현함으로써 ‘심리적 입체주의’를 만들었다.

조지 콘도의 2002년 작품 ‘주식 중개인’은 왜곡된 불안한 커플의 심리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산뜻한 흰색 셔츠, 깔끔한 넥타이, 나란히 서 있는 커플은 일반적으로 평범한 모습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얼굴에 비해 큰 귀는 뉴스나 소문에 민감한 주식 중개인의 심리를 나타내고 바지를 벗고 있는 남자, 인형을 들고 불만에 가득 찬 여자의 모습은 그들의 엇갈린 욕망과 불안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왜곡된 이미지는 대상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변형된 얼굴은 그로테스크하면서, 기이하다.

불안한 시선으로 관객을 응시하는 인물의 표정은 콘도의 ‘심리적 입체주의’를 보여준다. 다양한 각도에서 대상을 보여주는 일반적 입체주의가 아니라 인물의 내면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정을 보여준다. 주식 중개인 커플의 일그러진 이미지는 보통의 초상화가 아니라 인간 본성의 역설과 복잡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인상파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그림에 익숙한 우리에게 조지 콘도의 기이하고 추한 그림은 낯설다. 그로테스크하고 기이한 이미지는 감동을 주기보다 현대미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유발하기도 한다. 마음에 감동을 주는 작품이 예술 작품이지, 기이한 이미지를 현대미술이란 이름으로 작품이라고 하니, 이해하기 힘들다고 할 것이다.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베르툼누스’. 사진 구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베르툼누스’. 사진 구글

엽기적인 초상화로 작위까지 받은 화가는

이 기이하고 괴상한 그로테스크 이미지는 현대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고대 로마에서부터 발생한 것이다. ‘그로테스크(grotesque)’는 아라베스크로 불리던 로마의 당초문양 사이에 사람이나 동물, 꽃 등을 배치하여 만든 무늬를 말한다.

이러한 장식 문양은 1500년쯤 로마 티투스 지역 무덤 동굴의 벽면 장식에서 발견된 이후 ‘그로테스크’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탈리아어로 동굴인 그로테(grotte)가 어원이다. 이 로마의 무덤 동굴에서 탄생한 그로테스크는 당시 비례와 균형의 미가 주류인 예술 분야에서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기이하고, 엽기적인 문양은 아름다운 미적 쾌감에 익숙한 당시의 권력자들에게 오히려 호기심과 남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그로테스키(grotteschi)’라는 괴상한 기물을 수집하는 유행을 낳게 된다.

이 시기 등장한 화가가 주세페 아르침볼도(Arcimboldo, 1526~93)다. 그는 기이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바로 과일, 채소, 꽃, 책과 같은 물건으로 상상력이 풍부한 기발하고 기이한 초상화를 그린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은 화가가 당시의 황제인 루돌프 2세에게 헌정한 ‘베르툼누스(Vertumnus)’다. 

사계절을 나타내는 식물들과 꽃들로 그린 이 기이하고 추한 이미지의 초상화를 보고 황제는 오히려 그에게 작위를 내릴 정도로 기뻐했다. 황제의 권위와 덕을 예찬한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신화 속 계절의 신인 베르툼누스는 황제 본인이며, 갖가지 식물과 꽃으로 장식된 초상은 풍요와 영광을 나타낸다. 사계절을 나타내는 식물들은 계절이 영원히 순환되는 것처럼 황제의 가문도 영원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루치안 프로이트, ‘Benefits Supervisor Resting’, 1994. 사진 구글
루치안 프로이트, ‘Benefits Supervisor Resting’, 1994. 사진 구글

있는 그대로의 ‘날 것’으로의 누드

이러한 그로테스크하고 기이한 미술은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독일 태생의 영국 화가인 루치안 프로이트(Lucian Freud, 1922~2011)도 그들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의 손자로 유명하다.

이 그림은 2015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5620만달러(약 705억원)에 거래된 루치안 프로이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Benefits Supervisor Resting’이다.

비대하고 뚱뚱한 늘어진 살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는 누드는 추하게 보인다. 낮은 채도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인물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거칠고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모델은 127㎏(280파운드)의 실존 인물 틸리 수(Tilley Sue)라는 여성이다. 작품은 애초부터 기존의 아름다운 비례와 균형미를 갖춘 것에서 벗어나 있다.

화가는 기존의 얼굴 위주의 초상화를 몸 전체로 확대하여, 몸이야말로 한 인물의 살아온 인생과 내면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어가는 주변의 평범한 이웃 인물들의 누드를 통해 인간의 삶과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날 것’으로의 누드다. 그것은 그림에서 미화된 인체가 아닌 실재의 일상에서 존재하는 신체이기 때문이다.

좀비 영화도 있는데, 미술만 아름다워야 하나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추한 그로테스크 미술에 익숙하지 않을까. 이는 처음 우리의 미술이 서구에서 유입되는 과정에서 ‘art’가 미술(美術)로 오역된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다. 다수의 전문가가 지적하듯이 ‘art’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기술로 번역되고 인식되면서 미술이 추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미술이 아닌, 오로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란 인식이 낳은 결과이다.

미술이 아닌 다른 예술 장르인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아름다운 영화만을 상상하지 않는다. 좀비나 추한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에서부터 심금을 울리는 감동 어린 인간 승리의 휴머니즘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익숙하다. 그러나 ‘미술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명제는 미술을 감상하는 독자들에게 인식의 한계를 정해 예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폴론적인 이성(理性)의 낮과 디오니소스적인 욕망(慾望)의 밤이 있듯이, 미술도 아름다움과 추함이 공존하는 예술이다. 그로테스크한 추함의 미술은 오히려 미술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인식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균형 잡기’ 역할을 한다.

조지 콘도는 말한다. “아름다움의 가면 뒤에는 추함이 있고, 추함의 가면 뒤에는 아름다운 영혼이 있다. 작가가 아름다운 것만 그리는 것은 끔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