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그 지역의 음식은 그 지역의 와인과 즐기라’는 말이 있다. 식재료와 포도 모두 같은 땅에서 같은 물을 먹고 자랐으니 태생적으로 최고의 궁합을 이룬다는 뜻이다. 서양과 달리 우리 음식은 매운맛이 특징이다. 짭짤한 맛도 간장에서 나올 때가 많다. 소금과 달리 간장은 발효한 양념이라 감칠맛이 난다. 이런 맛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한국 와인이다. 포도를 포함해 여러 가지 과일로 만들어 종류도 다양하고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은 것이 많아 한국 와인은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한 잔 정도는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가격이 비싸지 않고 인터넷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한동안 떨어져 지낸 가족과 친지를 만나는 추석에 한국 와인을 나누며 회포를 풀어 보는 것은 어떨까. 추석 음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베스트 5를 소개한다.
1 국제와인콘퍼런스에서 외국 심사위원들이 청수 와인을 심사하고 있다. 사진 김상미 2 여포 와인농장의 여인성 대표
부부가 여포의 꿈을 나누고 있다. 사진 여포 와인농장 3 포도를 수확하고 있는 산막 와이너리 직원들. 사진 산막 와이너리 4 숙성 중인 와인을 검토하고 있는 예산 사과와인의 정제민 대표. 사진 예산 사과와인 5 너브내 와이너리 전경. 사진 너브내 와이너리
1 국제와인콘퍼런스에서 외국 심사위원들이 청수 와인을 심사하고 있다. 사진 김상미 2 여포 와인농장의 여인성 대표 부부가 여포의 꿈을 나누고 있다. 사진 여포 와인농장 3 포도를 수확하고 있는 산막 와이너리 직원들. 사진 산막 와이너리 4 숙성 중인 와인을 검토하고 있는 예산 사과와인의 정제민 대표. 사진 예산 사과와인 5 너브내 와이너리 전경. 사진 너브내 와이너리

마미농장의 어미실 스위트 화이트 

9월 6일 대전에서 열린 국제와인콘퍼런스에서는 최고의 청수 와인을 가리는 행사가 열렸다. 제11회 아시아와인트로피에 참가한 외국인 심사위원들이 청수 포도로 만든 와인을 심사하고 그중 최고를 뽑는 대회였다. 청수는 농촌진흥청이 육성한 포도로 향이 뛰어나 화이트 와인용으로 각광받는 품종이다. 18종의 와인이 본선에 오른 가운데 스위트 부문 1등은 충북 영동 마미농장의 어미실이 차지했다. 어미실은 지역의 생김새가 생선의 꼬리와 닮아 붙여진 옛 이름이다. 어미실을 맛보면 풍부한 과일 향이 귤, 복숭아, 멜론 등을 연상시키고 감미로운 단맛이 와인의 상큼한 신맛과 새콤달콤한 궁합을 이룬다. 토머스 루버(Thomas Luber) 독일 심사위원은 ‘블라인드로 시음했다면 리슬링으로 만든 독일산 스위트 와인과 구별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어미실의 품질을 극찬했다. 송편, 한과, 약과 등 디저트류와 잘 어울리고 차게 식혀 매콤한 음식과 즐겨도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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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 와인농장의 여포의 꿈 화이트

여포의 꿈은 유럽에서 수천 년간 와인을 만들 때 사용해 온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Muscat of Alexandria)라는 청포도로 만든 와인이다. 이 와인의 매력은 무엇보다 화사한 풍미. 한층 풍부한 향을 내기 위해 발효 전에 포도 껍질을 포도즙에 24시간 동안 침용시켰고, 껍질을 제거한 뒤에는 포도즙을 저온에서 발효해 섬세한 향을 와인 속에 가득 채웠다. 여포의 꿈을 맛보면 배, 복숭아, 살구 등 과일 향이 달콤하고 머스캣 특유의 꽃 향이 와인에 향긋함을 더한다. 보디감이 가볍고 단맛이 은은하며 신맛이 강하지 않아 누구나 즐기기 편한 스타일이다. 해산물과 잘 어울리므로 추석 음식 중에 생선전이나 생선찜과 즐기면 쌉싸래한 여운이 음식의 뒷맛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참고로 여포는 와이너리 대표의 별명이다. 초선의 꿈이라는 로제 스위트 와인도 생산하고 있다.

산막 와이너리의 비원 레드

비원은 우리나라 토착 포도인 산머루에 캠벨 얼리 품종을 블렌드해 만든 와인이다. 산머루는 식용으로 널리 알려진 품종이 아니어서 낯설게 느껴지지만 5만원권에 있는 신사임당의 포도 그림이 바로 산머루다.

포도알의 크기가 작아서 와인으로 만들면 색이 진하고 타닌 감이 좋아 한국의 카베르네 소비뇽이라 불리는 품종이다. 비원은 인터내셔널 와인 챌린지 등 세계적인 와인 대회에서 한국 와인 최초로 수상해 국제적으로 맛과 품질을 인정받은 바 있다. 충북 영동의 산자락에 있는 밭에서 화학비료나 제초제를 쓰지 않고 친환경으로 재배한 포도로 정성껏 만든 결과다. 비원을 열면 잘 익은 자두, 딸기와 함께 싱그러운 포도 향이 한가득 올라온다. 갈비찜, 육전, 빈대떡과 즐겨보자. 와인의 풍미가 음식 맛을 끌어올리고 쌉쌀한 끝맛이 음식의 기름진 맛을 개운하게 씻어준다.

예산 사과와인의 추사 로제

미네랄이 풍부한 황토 흙과 적당한 일교차를 갖춰 맛있는 사과가 나기로 유명한 충남 예산. 그곳에 자리한 예산 사과와인은 사과 중에서도 특이하게 속살이 빨간 레드 러브 품종으로 추사 로제를 만들고 있다. 

잘 익은 붉은 사과의 달콤함과 상큼한 신맛의 조화가 탁월한 이 와인은 간장의 짭조름한 맛과 무척 잘 어울린다. 추석 음식 중에 불고기, 찜닭, 갈비찜, 잡채에 곁들이면 와인의 산뜻한 신맛이 입맛을 돋우고 적당한 단맛이 음식의 짠맛과 ‘단짠’ 궁합을 이룬다. 식용 금가루가 들어 있으므로 잘 흔들어 잔에 따르면 금빛 와인에 금가루가 고루 퍼져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을 이야기’라는 뜻과 함께 예산 태생인 추사 김정희 선생을 기리는 마음을 담은 추사 로제. 둥실 떠오른 가을 달을 안주 삼아 음미하기에 더없이 좋은 와인이다.

너브내 와이너리의 스파클링 화이트 브뤼

강원도 홍천에 있는 너브내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의 만찬주로 선정될 정도로 스파클링 와인에 일가견이 있는 와이너리다. 너브내는 스파클링 와인을 탄산 주입 방식으로 만들지 않는다. 유럽의 와이너리처럼 압력 탱크에 와인을 넣고 한 번 더 발효해서 얻은 천연 이산화탄소를 와인 속에 녹아들게 해서 만든다.

와인의 재료인 청향이라는 포도는 강원도 농업기술원이 개발한 품종으로 독특한 향이 특징이다. 와인의 맛을 보면 부드러운 기포 속에서 사과와 라임 등 신선한 과일 향과 아카시아 같은 꽃 향이 우아하게 피어오른다. 단맛이 없고 청량한 스타일이어서 평소 드라이한 와인을 즐기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하다. 스파클링 와인은 모든 음식과 잘 어울리지만 전이나 튀김 같은 기름진 음식에 곁들이면 상큼한 산미가 깔끔한 뒷맛을 선사해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다. 국내 와이너리 중에는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 많다. 가을 정취가 가득한 포도밭을 거닐고 간단한 음식이나 바비큐와 함께 와인도 시음할 수 있다. 숙박 시설이 마련된 곳도 있어 1박 2일로 다녀와도 좋다. 가을에 떠나는 와이너리 여행은 향긋한 추억을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