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아시아 아트페어 도시의 왕좌를 물려받은 듯하다. 작년 제1회 ‘2022 프리즈 서울’의 블록버스터급 성공은 세계 아트계의 ‘신드롬’이며 ‘센세이션’이었다. 프리즈가 공식적으로 발표하진 않았지만 천문학적인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지며, 본고장인 ‘프리즈 런던’에 이어 ‘프리즈 서울’이 세계 두 번째 규모의 아트페어로 급부상했다. 이 새로운 아트의 성지에서 펼쳐지는 경이로운 현상을 경험하기 위해 9월 6일부터 9일 사이 펼쳐진 제2회 ‘2023 프리즈 서울’엔 전 세계 30여 개국, 120여 개 유명 갤러리와 빅 컬렉터들이 몰려들었다.
더 놀라운 현상은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에 의해 펼쳐졌다. 서울 곳곳에서 전시를 펼치며 ‘아트슈머(Art+Consumer의 합성어)’를 초대한 호스트들이 샤넬, 디올, 프라다, 보테가베네타 등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들이었기 때문이다. 샤넬은 작년에 이어 프리즈와 파트너십으로 두 번째 ‘나우&넥스트(NOW&NEXT)’ 프로젝트를 펼쳤다. ‘나우&넥스트’ 비디오 시리즈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의 기성 현대 예술가 3인(임민욱, 홍승혜, 문성식)과 신예 현대 예술가 3인(이은우, 전현선, 장서영)을 조명하는 특별한 아트 프로젝트다. 프리즈 서울 오픈일과 같은 9월 6일 샤넬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칵테일 리셉션을 진행했는데, ‘샤넬 넥스트 프라이즈(CHANEL Next Prize)’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작곡가로 주목받는 정재일의 공연이 함께 펼쳐졌다. 또한 샤넬 앰버서더 지드래곤과 김고은 외에 정려원, 전여빈, 아이린, 이제훈, 박정민 등 수많은 셀러브리티가 샤넬 컬렉션을 입고 참석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샤넬 이상으로 수많은 스타를 전시회 오프닝에 참석시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브랜드는 디올이다. 디올은 서울 성수동 콘셉트 스토어에서 ‘레이디 디올 셀러브레이션(Lady
Dior Celebration)’ 전시회를 열었는데, 9월 1일 오프닝 파티에 블랙핑크의 지수, BTS의 지민, 차은우, 아이돌 그룹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 등 20여 명의 스타가 포토월에서 연이어 포즈를 취해 레드카펫 못지않은 장면을 연출했다. 더욱 역대급인 건 ‘레이디 디올 셀러브레이션’ 전시에 참여한 아티스트의 수다. 박선기(Bahk Seon Ghi), 최정화(Choi Jeong Hwa), 지지수(Gigisue), 김홍석(Gimhongsok), 하종현(Ha Chong-Hyun), 김희원(Heewon Kim), 오세정(Jay Sae Jung Oh), 이지아(Jia Lee), 권죽희(Jukhee Kwon), 이정진(Jungjin Lee) 등 무려 24인의 한국 아티스트와 글로벌 아티스트의 작품이 전시됐다. 이번 대규모 전시에서는 시대를 초월한 디올의 아이콘 백,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백으로 잘 알려진 ‘레이디 디올(Lady Dior)’을 각 작가들의 시선으로 새롭게 재해석하고 재창조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프리즈 서울 기간에 ‘프라다 모드 서울’도 서울 인사동 복합문화공간 코트(KOTE)에서 이숙경 큐레이터가 기획한 ‘다중과 평행’이란 타이틀로 진행됐다. ‘프라다 모드’는 2008년 기획된 프라다 더블 클럽이 기원으로, 마이애미, 런던, 파리 등을 투어하며 아티스트, 크리에이터들과 협업 작품들을 선보여 왔는데, 이번 프리즈 서울 기간에 맞춰 전시를 진행했다. 발렌티노는 ‘탕 컨템퍼러리 아트’와 파트너십으로 우국원, 윤협, 디렌 리, 장콸, 요나스 버거트, 공칸의 특별 전시를 펼쳤다. 보테가베네타는 리움에서 강서경 개인전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를 후원했고, 불가리는 제1회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로 우한나 작가를 선정하며 전시를 후원했다. 에르메스는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에 자리한 ‘아뜰리에 에르메스’ 갤러리에서 꾸준하게 한국 아티스트들의 전시를 펼쳐왔는데, 이번 프리즈 서울 기간에 박미나 작가 개인전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전시를 중심으로 ‘청담 나잇’에 참여했다. 멀버리는 프리즈 91 서울 파티의 공식 파트너로 프리즈 아트 페어 애프터 파티를 개최하고 서울을 배경으로 한 작품과 함께 자우림, 250, 소울스케이프 등 뮤지션의 라이브와 DJ 공연을 진행했다. 일일이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시와 이벤트가 프리즈 서울 기간에 서울 곳곳에서 진행됐는데, 럭셔리 브랜드들이 경쟁을 펼치는 듯 보일 정도였다.
왜 프리즈 서울에 대한 럭셔리 브랜드들의 관심이 폭발한 걸까. 최근 마케팅에서 자주 언급되는 ‘아트슈머’는 럭셔리 브랜드들의 주요 고객이기도 하다. 특히 럭셔리 브랜드의 특급 VIP인 ‘영앤드리치(Young and Rich)’ 그룹들은 에르메스, 샤넬, 디올 등의 명품을 입고 아트 컬렉팅을 하는 것이 라이프스타일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패션을 즐기며 유명 디자이너 가구를 집에 전시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들의 마지막 쇼핑 종착지는 아트다. BTS의 RM과 뷔가 아트계의 큰손인 것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며, 지드래곤은 미국 유명 미술 전문지 ‘아트뉴스’의 ‘주목할 만한 컬렉터 5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 영앤드리치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고의 마케팅은 결국 ‘아트 마케팅’인 것이다.
무엇보다 K문화가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지금. 서울에서 이벤트를 하고 그 이벤트 장소에 K스타들이 참석하면 놀라운 바이럴의 물결을 일으키기에 최고의 브랜드 홍보이자 마케팅이 된다.
물론 올해는 카오스 해이기도 했다. 지나치게 이슈성에 급급한 나머지 패션 브랜드들의 이벤트가 겉만 화려한 보여주기식 쇼윈도 전시였다는 비평이 있다. 초대된 게스트들도 소셜미디어(SNS)용 사진을 찍기에 바쁜 이가 많았다. 하지만 프리즈 서울이 트리거가 되어 폭발한 패션과 아트의 파트너십은 너무나 매력적인 결합이다. 몇 해의 혼돈의 시기를 지나 중심을 잡아가며 서울이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아트와 패션의 허브이자 에픽 센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