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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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돈을 갚느라 바이오 기업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3년 전 주가 호황기에 바이오 기업들이 발행한 전환사채(CB)가 어마어마한 빚이 돼 돌아온 것이다. 만약 상장기업의 경우 기업의 주가가 올랐거나 비상장기업의 경우 기존보다 더 높은 기업 가치에 투자를 유치했다면, 기업이 전환사채 투자자에게 원금을 상환하지 않아도 되는 ‘투자’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뚜렷한 투자 성과가 보이지 않고 바이오 투자 심리도 좋지 않자 바이오 기업들에 속속들이 빚 독촉장이 날아들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환사채는 투자자와 발행 기업 모두가 이득인 숨겨진 투자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정상적으로 ‘이익’이 나거나 주가가 상승하는 회사들에 한한 이야기로, 그렇지 못한 회사들이 지금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전환사채는 채권의 일종으로서 해당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면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서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는데, 혹시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만기까지 갖고 있다가 정해진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을 통해 만기 전이더라도 투자자는 원금 및 이자까지 회수할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전환사채에 투자했다가 주가가 상승하면 주식으로 전환해 주가 차익을 누릴 수 있고, 주가가 하락하면 풋옵션을 행사해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최고의 투자 수단이 전환사채다.

발행 회사 역시 마찬가지로 전환사채는 ‘채권’이지만 주가가 올라간다면 주식으로 전환돼 상환할 의무가 사라지기 때문에 마이너스(-) 통장처럼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전환사채는 발행 회사에 콜옵션(매도청구권)이라는 권리를 부여해 주가 상승 시 발행 회사의 대주주 및 대표이사가 저렴한 가격에 주식을 인수할 기회까지 갖는 좋은 경영권 방어 수단도 되고 있다.

문제는 일반적인 기업은 전환사채 발행 후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기업이 보유한 현금으로 전환사채를 상환할 수 있지만, 바이오 기업의 경우 이익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결정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바이오 기업은 주가가 하락하면 전환사채를 오롯이 본인이 보유한 현금으로만 상환할 수 있는데, 바이오 기업의 특성상 몇 년 뒤 신약 개발이 성공해야만 이익이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따라서 바이오 기업은 신약 개발에 성공하거나 주가가 전환사채 발행 가격보다 상승해야만 빚을 갚을 수 있다.

엄여진 부국 캐피탈
PE금융팀장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부국 캐피탈 PE금융팀장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임상 성공 여부에 달린 바이오 기업 주가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최근 문제가 불거지는 바이오 기업 중 2020년에서 2021년 사이 주식시장 호황기에 전환사채를 발행한 기업이 많다는 것이다. 당시는 바이오 업황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이오 기업들의 주가가 대부분 사상 최고치에 달한 시기였다. 장밋빛 미래만을 보던 시기라서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도 매우 적극적으로 이뤄졌고, 주가 역시 이에 호응해 최고치를 달성하고 있던 시기였다.

문제는 이 당시 바이오 기업들이 발행한 전환사채의 전환 가격 역시 사상 최고가 수준에서 발행됐고 이후 주가는 그 당시 수준을 전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면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는 매우 보수적이고 엄격한 기준으로 ‘실제로 신약 개발이 성공할 만한 유망한 기술력을 갖춘 기업인가’를 판단해서 투자하겠지만, 2~3년 전 바이오 업황 호황기에는 이러한 면밀한 검토 없이 ‘묻지 마 투자’가 성행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이 안타까운 것은 상장 바이오 기업의 경우 결국 일반 투자자들한테까지도 피해가 안 갈 수 없다는 점이다. 바이오 업황이 좋았던 불과 2~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이오 기업들에 전환사채는 마이너스 통장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졌다.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 앞다퉈서 투자를 받은 이유다. 하지만 그게 이제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당연히 바이오 기업들은 임상 비용이 많이 들 수 있어서 자금 조달을 미리 해야만 한다. 이들 바이오 기업에 전환사채라는 투자 방식은 실제 매우 매력적인 자금 조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바이오 기업의 오너들은 임상이 실패할 수 있다는 점을 너무 간과했고, 이 점이 지금 바이오 기업이 자금난 우려를 겪게 된 핵심이다. 바이오 기업의 주가는 결국 임상 성공 여부에 달려있다. 임상이 실패하면 당연히 주가도 하락하고, 전환사채 투자자들은 주식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회사에 사채를 상환해달라고(풋옵션 행사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임상에 실패한 바이오 기업은 매출과 이익이 나올 수가 없기에 결국 전환사채를 상환할 자금도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내 일부 바이오 기업의 오너들은 이러한 사실은 숨기고 투자받은 자금을 통해 회사 비용으로 본인의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고 높은 연봉과 인센티브를 받으며 투자 자금을 탕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를 짚어본다면 전환사채라는 투자 수단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주가 호황기에 높은 가격에 전환사채를 발행했거나 투자받은 자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흥청망청 탕진해 결국 신약 개발에 실패한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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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떠안는 개인 투자자들

이렇게 실패한 바이오 기업들이 전환사채를 상환하지 못해 결국 거래 정지 또는 상장 폐지로 이어진다면 이러한 정보에 취약한 개인 투자자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최근 강화된 증권거래소 및 금융감독원의 상장회사 감독 규정으로 인해 현금 유동성이나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은 기업들은 주식시장에서 퇴출당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물론 일부 바이오 기업은 자구책으로 주식시장에서 주주들을 대상으로 ‘주주 배정 유상증자’ 등의 방법을 통해 전환사채 상환 자금을 마련하는 등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또 기존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새로운 전환사채를 발행해 상환 자금을 마련하는 기업도 있다. 이 두 가지 방법 모두 결국 주식 투자자들에게는 큰 손실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바이오 기업의 특성상 자금 조달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고, 자금이 수혈된다면 언젠가는 기술 개발에 성공해 큰 수익을 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투자자들은 2~3년 전 대규모 전환사채를 발행한 바이오 기업을 조심하자. 투자란 모름지기 위기 속에서 기회를 발견하는 것이겠으나 소나기가 올 때는 잠시 비를 피했다 가듯이 때로는 시장에 맞서기보다는 조금은 피해 가는 것도 투자의 지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