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경제학부 교수가 10월 9일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경제학부 교수가 10월 9일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2015년 소비와 빈곤, 복지 연구로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후 노벨 경제학상은 사회문제에 대한 경제학적 해법에 관심을 기울였다. 사회적 계약 관계, 기후변화의 경제적 효과, 저개발 국가에서의 빈곤 퇴치, 노동시장에서 임금과 고용 창출 간 관계 등을 연구한 학자들을 수상자로 선정한 것이다. 올리버 하트·벵트 홀름스트룀(2016년), 윌리엄 노드하우스·존 로머(2018년),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에스테르 뒤플로·마이클 크레이머(2019년), 데이비드 카드·조슈아 앵그리스트·휘도 임번스(2021년) 등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시장 균형을 통한 가격 결정에 천착한 전통 경제학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비주류 분야 연구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

2022년 은행과 금융위기 연구 공로로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등에게 돌아간 노벨 경제학상 수상 영예가 올해는 노동시장에서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 연구 업적을 쌓은 클로디아 골딘(Claudia Goldin) 미국 하버드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10월 9일(현지시각) “골딘 교수는 수 세기 동안 여성의 소득과 노동시장 결과에 대해 처음으로 포괄적인 설명을 제공했다”면서 수상자 선정 사유를 밝혔다.

최초의 노벨 경제학상 여성 단독 수상자

이번 수상으로 클로디아 골딘 교수는 엘리너 오스트롬(2009년), 에스테르 뒤플로(2019년) 이후 노벨상을 받은 세 번째 여성 경제학자가 됐다. 그러나 공동 수상이 아니라 단독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여성은 골딘 교수가 최초다. 골딘 교수는 하버드대 경제학부에서 최초로 종신교수에 오른 이력이 있다. 노동시장 연구자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2021년(데이비드 카드 등) 이후 두 번째다. 여성에 관한 연구가 수상 사유로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4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골딘 교수는 코넬대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하고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량 경제학 기법을 활용한 경제사 연구 토대를 만든 공로로 199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포겔이 그의 스승이다. 골딘 교수는 수상 후 인터뷰에서 로버트 포겔이 197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사이먼 쿠즈네츠의 문하생이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자신을 ‘제3세대 노벨’이라고 표현했다.

44세이었던 1990년 하버드대 종신교수가 된 골딘 교수는 2013년 전미경제학회장을 역임했다. 그의 남편 래리 카츠도 하버드대 경제학부 교수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 노동부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카츠 교수는 골딘 교수를 “개인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파트너”라고 표현한다. 두 사람은 2008년 ‘교육과 기술의 경주’라는 책을 함께 썼다. 학계에서는 “경제학이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결과” “기념비적 성과”라는 극찬을 받았다. 두 사람 슬하에 자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년 美 고용 데이터 분석…성별 임금 격차 원인 규명 

“골딘은 미국의 200년간 임금 데이터를 수집해 성별 소득과 고용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보여줬다. 골딘의 연구로 인해 성별 격차의 근본적 요인과 해결해야 할 장벽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

노벨위원회는 골딘 교수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안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실증하기 위해 버거킹, KFC 등 패스트푸드점을 조사해 직접 데이터를 모은 데이비드 카드, 무작위 통제실험(RCT) 기법을 활용해 빈곤 퇴치 정책 효과를 데이터로 실증한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에스테르 뒤플로 부부에게 노벨상 영예를 안겨준 전례와 비슷한 맥락이다. 다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 정책은 데이터 등 증거로 입증돼야 한다는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골딘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노동 시장 참여가 선형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유(U) 자형 곡선을 형성한다. 농업 사회에서 높은 수준이었던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산업화가 확산하면서 낮아지다, 서비스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높아지는 상황이다. 골딘은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증가했지만, 임금에 있어서는 뚜렷한 남녀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도 입증했다. 역사적으로 남성보다 더 적었던 여성의 임금은 20세기 동안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일부 고소득 국가에서는 남성을 능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일한 전문·고소득 직종에서 여성의 임금은 남성보다 낮으며, 임금 격차는 첫 아이 출산 때 발생한다는 점이 골딘 교수의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골딘의 연구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 피임약이 도입된 것은 여성들에게 직업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미혼의 젊은 여성들이 피임약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전문성을 쌓기 위한 장기간의 교육 비용을 낮추고 초혼 연령이 높아지게 하는 효과를 유발했다.

‘유연한 일자리’ 확산, 저출산 문제 해결 해법 될까

남녀 간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골딘 교수의 해법은 무엇일까. 그는 2022년 5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여성은 자녀를 돌보기 위해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job)’가 아닌 ‘유연한 일자리’를 선택하면서 남성과 임금 격차를 벌린다”면서 “유연한 일자리의 생산성을 높여 탐욕스러운 일자리와의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기업 문화를 바꿔 고임금의 대가로 모든 일상을 일에만 집중하는 탐욕스러운 일자리 비중을 낮추는 게 출산·육아에 따른 성별 간 임금 격차를 줄이는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연한 일자리는 출산·육아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정도로 업무 강도와 임금을 조정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 등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해법을 내놓을까. 골딘 교수는 수상 후 하버드대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한국의 출산율은 0.86명(2022년 1분기 기준, 2023년 2분기 현재 0.7명까지 하락)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뒤, “20세기 후반 한국보다 더 빠른 경제적 변화를 겪은 나라는 거의 없다. 한국 노동시장이 세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저출산 문제는) 여러 가지가 얽혀 있어서 답을 내기 매우 어렵고 변화가 단시간에 이뤄지기 어렵다”면서 “기성세대, 그들의 딸보다는 아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을 교육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속적인 교육 등 노력을 통해 사회·문화적 인식을 점진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Plus Point

더욱 거세진 女風…금 가는 노벨상 ‘유리천장’

왼쪽부터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카탈린 카리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안 륄리에, 노벨 평화상 수상자 나르게스 모하마디. 사진 연합뉴스
왼쪽부터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카탈린 카리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안 륄리에, 노벨 평화상 수상자 나르게스 모하마디. 사진 연합뉴스

헝가리계 이민 여성 과학자인 카탈린 카리코 독일 바이오엔테크 수석 부사장(생리의학상)에서 시작해서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부 최초 여성 종신교수 클로디아 골딘(경제학상)으로 끝났다. 10월 9일 막 내린 2023년 노벨상 시즌은 이렇게 요약된다. 안 륄리에 스웨덴 룬드대 교수(물리학상), 이란 인권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평화상) 등도 올해 노벨상을 받는 여성들이다. 올해와 마찬가지로 11명 수상자 중 4명이 여성이었던 2020년 노벨상 시즌에 버금가는 ‘여풍(女風)’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백인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노벨상의 권위주의에 균열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 등에 따르면, 1901년부터 올해까지 120여 년 동안 노벨상(경제학상 포함)을 받은 여성은 중복 수상자(마리 퀴리)를 포함해 65명이다. 2년에 1명꼴로 여성 수상자가 탄생한 것이다. 이 중 노벨 평화·문학상 수상자 35명을 제외한 과학·경제 분야 수상자는 중복 수상자를 포함해 26명으로 줄어든다. 같은 분야 전체 수상자 중 3% 남짓한 수치다. 노벨상의 남성 우월주의에 틈새가 생긴 것은 2000년대부터다. 26명에 이르는 과학·경제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의 절반 이상인 15명이 2000년 이후에 나왔다. 이런 흐름 속에서도 여성들에게 문호를 열지 않았던 노벨 경제학상의 철옹성은 2009년 엘리너 오스트롬 당시 인디애나대 교수가 수상하면서 깨졌다.

올해 노벨상은 ‘여성 권익 옹호’라는 관점에서 여성 수상자 4명을 배출한 2020년 노벨상과 비교해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성들의 사회적 권익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수상 이유로 직접 명시했다는 차원에서다.

특히 이란 여성들의 ‘반(反)히잡’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아 투옥 중인 모하마디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은 여성 인권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상징적인 일로 평가된다. 

지난 200년간 데이터를 분석해 남녀 고용 불평등과 임금 차별을 연구한 골딘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것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야코브 스벤손 노벨 경제학상 선정위원장은 “노동에서 여성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사회에 중요하다”고 수상자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