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박사, 
옥스퍼드대 명예펠로, 
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박사, 옥스퍼드대 명예펠로, 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역병에 이어 또 하나의 전쟁이 일어났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이다. 지금 세계는 1년 8개월을 끌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이어,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비극을 보고 있다. 전격적으로 도발한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의 적대 행위와 이스라엘의 단호한 반격은 중동 평화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가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같이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무엇보다도 하마스는 국가라기보다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사실상 통치하고 있는 정파이기에 긴 전쟁을 수행할 주체는 되지 못한다. 테러와 전쟁의 요소를 섞어 놓은 듯 진행되는 전투 양상도 조기 종전을 예상케 한다. 이스라엘이 수행한 과거 전쟁이 모두 단기전으로 끝났다는 기록도 있다.

전쟁 향방 걸린 두 가지 상황

향후 이 전쟁이 얼마나 갈 것인가는 두 가지 상황 전개에 달려 있다고 판단된다. 첫째는 이스라엘 정규군의 가자 지구 진입 이후 상황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상군의 가자 지구 진격을 통해 하마스 집단을 끝까지 추격하여 ‘테러리스트 집단’을 발본색원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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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가자시티(가자 지구 중심 도시)를 포함해 이 지역으로 진격해 갈 때, 하마스는 게릴라전으로 대응할 것이다. 군산시보다도 더 작은 가자 지구에는 24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제곱킬로미터(㎢)당 6500명이 넘는 초고밀도 거주 지역이다. 게다가 이스라엘 정보기관에도 감지되지 않을 정도로 지하 연결망이 촘촘히 만들어져 있는 요새 지역이기도 하다. 가자 지구 진입 작전으로 인명과 물적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이스라엘군은 작전 중 비극적인 민간인 살상 행위에 개입될 수도 있다. 국제사회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으면서 스스로 수렁에 빠지는 상황을 이스라엘 정부는 절대 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애초 목적을 달성하고 가자 지구로부터 명예롭고 자발적인 철수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많은 고비를 넘어야 한다.

둘째는 이란의 개입 여부다. 이란은 처음부터 하마스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전쟁의 직접 지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있다. 자국의 대리 전쟁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하마스의 잘 준비된 공격 양태로 볼 때 이란 개입 여부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이 많다. 또한 레바논의 한 정파로 인정받고 있으면서 이란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헤즈볼라의 도발은 비록 그것이 전면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이스라엘을 더 곤혹스럽게 하려는 시도임은 틀림없다. 

미국과 이란을 포함한 주변 당사국들이 모두 확전을 원치 않는다고 할 때, 중동에서 여러 개의 전선이 형성되는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다만 향후 이란의 태도 및 이란을 대하는 아랍 수니파 국가들과 미국의 대응에 따라 상황 악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분명한 것은 ‘아브라함 협정(2020년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의 관계 정상화 협정)’과 이스라엘-사우디 관계 개선으로 대표되는 중동의 화해 무드는 사그라졌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불확실성이 전 세계에 던져졌고, 긴박한 위험과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동시에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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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중동戰 때와 다르지만…세계경제 불안정

세계경제는 이 지역에서 분쟁이 시작되자 즉각 출렁거렸다. 10월 9일(이하 현지시각) 유가는 배럴당 4달러(약 5380원) 이상 올라갔고, 각국의 주식시장은 대체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 상황 전개만으로 판단하건대, 비록 인명 피해는 상당하지만 당장 부정적 충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은 원유나 천연가스 생산지나 운송 경로상에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란이 전쟁에 휘말리지만 않는다면 가자 지구에서 전투가 지루하게 계속되더라도 원유나 천연가스에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다.

혹자는 제4차 중동전쟁이 있었던 1973년을 떠올리면서 비관적인 전망을 한다. 마침 제4차 중동전쟁이 있은 지 정확하게 50년이 되는 시점이다.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시리아 연합군의 선제 공격으로 시작된 제4차 중동전쟁과 연이은 오일쇼크로 세계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5년 동안 계속된 회복과 번영의 시기에 종말을 고했다. 1971년 닉슨 미 대통령의 금태환 정지 선언 이후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세계경제는 본격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침체를 동반한 물가 상승)의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다른가. 그 당시 상황을 좀 더 살펴보자.

1973년 10월 17일 한창 전쟁이 진행되던 와중에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모인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석유 장관들은 개전 초기에 큰 피해를 보고 수세에 몰린 이스라엘을 지원해 승기를 잡도록 해 준 미국과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들에 대해 원유 수출 통제라는 보복에 합의했다. 이 합의안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유가는 즉각 70% 올랐고 12월에 가서는 추가로 130% 올랐다. 이듬해 4월에는 애초 유가의 네 배가 되었다. 1979년 2차 오일쇼크 이후 유가는 불과 7년 만에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전 가격의 10배가 되었다. 오일쇼크의 충격은 10년 이상 세계경제에 큰 암운을 드리웠고, 1980년대 중반 다시 번영의 시기가 오기까지 각국은 그야말로 혼란과 갈등, 반목과 절망의 경제 침체와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당시 석유 카르텔의 힘이 막강했던 데는 원유 수급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가 배경에 도사리고 있었다. 이전에 석유 구매 시장의 큰손은 유럽이었다. 미국은 에너지를 거의 자급자족하고 있었고, 북해산 석유도 발견되지 않았던 유럽은 거의 전적으로 중동산 원유에 의존했다. 196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에서 에너지 수요가 급증, 국내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면서 미국이 세계 원유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이런 수급 구조의 변화가 OPEC의 힘을 키웠다.

작금의 상황은 1970년대와 많이 다르다. 근본적인 원유 수급 구조의 변화가 없다는 점, 다른 아랍 국가들이 참전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 원유 대체 에너지원이 다양해졌다는 점 그리고 세계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하여 강한 회복과 반등의 동력을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한 유가 급등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은 장기적으로 볼 때 세계경제에 암운을 드리운다. 이스라엘과 여타 중동 국가 간 해묵은 양자 대립을 다시 소환하는 작금의 상황은 걸프 국가들의 증가하는 역동성과 개방성, 사우디의 개혁 정책 등 이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개방적이고 다원화되는 새로운 흐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길을 잃고 있는 미국의 중동 정책 난맥상과 남북으로 두 전쟁에 대응해야 하는 튀르키예(옛 터키)의 지정학적 딜레마를 키운다. 그 결과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거시 경제의 안정성이 위협받고, 지정학적 위협의 재생산으로 더욱더 긴밀히 연결되고 있는 중동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연대 등 보이지 않는 위험이 자라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2년 12월 1일 중동 국가로는 최초로 이스라엘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했다. FTA 발효 이후 급증한 이스라엘산 자몽 수입이 타격받게 돼 국내에 자몽 대란까지 일어날 조짐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FTA를 계기로 기대되던 양국 간 경협 고도화에 암운이 짙어지고 있다는 것. 올해 양국은 교역 확대뿐만 아니라 투자 확대, 직항 노선 재개, 그리고 무엇보다도 첨단 미래 산업에 대한 연구개발(R&D) 공동 출자와 활발한 인적 교류 등 경제 안보 시대에 걸맞은 수준 높은 경제 협력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많은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