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웨이가 2020년 4월 스마트폰 판매량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 한 적이 있었다. 미국은 같은 해 5월 “제3국 반도체 회사들도 미국 기술을 부분적으로라도 활용했다면 화웨이에 제품을 팔 때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치를 발표했다. 화웨이는 반도체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이 반도체를 설계해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를 통해 칩 생산이 불가능해졌고, 삼성전자, SK하이닉스로부터도 메모리 반도체 공급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지난해 10월에는 미국 상무부가 18나노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핀펫(FinFET) 기술을 사용한 14나노 이하 시스템 반도체 생산 장비의 중국 수출을 통제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D램 기업인 창신메모리(CXMT), 낸드플래시 기업인 양쯔메모리(YMTC) 같은 메모리 반도체 기업과 파운드리 기업인 SMIC의 기술 발전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는 미국으로선 매우 강력한 중국 제재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화웨이가 8월 29일 ‘메이트60 프로’라는 신제품 스마트폰을 전격 공개했다. 이 제품에 탑재된 ‘기린 9000s’ 응용프로세서(AP)는 하이실리콘에서 자체 설계했고, 중국 SMIC가 7나노 공정으로 제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AP에는 5세대(5G) 모뎀이 탑재됐다. 이 제품은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의 방중 시기에 공개됐는데 미국의 압박과 제재하에서도 중국은 반도체 설계에서 제조까지 기술 자립을 이뤄냈다는 것을 과시하고자 했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미 상무부 장관이 신제품 홍보 모델로 합성된 가짜 광고 이미지가 등장하기도 했다.
SMIC ‘7나노 반도체’ 두 가지 의문점
화웨이 스마트폰에 탑재된 7나노 반도체는 하이실리콘이 반도체를 설계했고, SMIC에서 제조했다. 첫 번째 의문점은 설계 부분이다. 설계상 두 가지의 어려움이 있는데 어떻게 해결했는지가 의문이다. 반도체 설계를 하기 위해선 전자설계자동화(EDA) 툴을 사용해야 한다. EDA는 반도체 설계 시 시뮬레이션을 통해 회로 설계 및 오류를 검출하고 해결하는 소프트웨어다. EDA는 미국 회사인 케이던스와 시놉시스가 시장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 CPU는 영국 암(ARM)의 것을 기반으로 AP를 설계해야 한다. 화웨이의 기린 9000s도 ARM의 기술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 의문인 점은 제조 부분이다. 반도체 분석 기관 테크인사이츠가 분해한 결과에 따르면 화웨이 기린 9000s는 SMIC 7나노 공정으로 생산됐다. 이미 SMIC는 2021년에 7나노 공정을 적용한 비트코인 채굴용 칩을 공급한 바 있다. 일종의 테스트 칩을 만들어 본 셈이다.
웨이퍼 위에 회로 패턴이 담긴 마스크상을 빛을 비춰 회로를 그리게 되는데, 여기서 패턴을 형성하는 방법은 흑백사진을 만들 때 필름에 형성된 상을 인화지에 인화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때 패턴을 그려 넣는 데 사용하는 ‘붓’으로 빛을 사용하기 때문에 ‘포토(Photo) 공정’이라고도 한다. 이 과정에서 심자외선(DUV·Deep Ultraviolet)이나 극좌외선(EUV·Extra Ultraviolet) 장비를 사용한다.
노광 공정에서 회로를 그릴 때, 더 촘촘하게 그려 선폭을 좁히려면 노광 공정에 사용하는 빛의 파장을 줄여야 한다. 파장이 짧아질수록 빛을 얻어내는 것부터 어렵고, 주위 물질에 쉽게 흡수되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ASML은 10년이 넘는 연구 끝에 13.5㎚의 매우 짧은 파장의 빛을 사용하는 EUV 노광 장비 상용화에 성공했다.
DUV 공정에 적용 중인 불화아르곤(ArF) 광원은 248㎚ 파장이다. EUV는 DUV 대비 훨씬 파장이 짧기 때문에, 더 미세하고 오밀조밀하게 패턴을 새길 수 있다. 미세회로를 만들기 위해 수차례 노광 공정을 반복해야 하지만 EUV 장비는 공정 단계를 줄일 수 있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이번 SMIC의 기린 9000s의 7나노 제조는 미국의 제재로 EUV 도입이 어려웠으니 DUV 장비만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EUV 장비로 7나노 반도체를 만들려면 웨이퍼에 패턴을 새기는 작업을 1회 하면 된다면, DUV 장비를 사용할 경우 같은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당연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 수밖에 없다. TSMC도 초반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7나노 반도체를 생산하다가 비용과 시간 등의 문제로 EUV 장비로 전환한 바 있다.
기술력 확보 中…한국과 경쟁 심화 예상
화웨이 7나노 스마트폰 출시에 대한 의미를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양산성은 떨어지지만 7나노 공정의 기술력을 확보했다는 점은 미국이 우려할 만한 사안이다. 물량이 많지 않은 군사용 반도체는 얼마든지 설계·생산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TSMC 7나노 A100 GPU 칩 수준의 AI용 GPU 칩을 화웨이가 개발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고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둘째,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첨단 AP에 대한 화웨이의 설계 능력이 건재하다는 점이다. 미국 제재 이후에 한때 세계 1위를 넘봤던 화웨이의 스마트폰 출하량은 약 2억 대에서 3000만 대 밑으로 급감했지만, 하이실리콘의 설계 인력은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셋째, 중국인을 중심으로 애국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화웨이가 스마트폰으로 재기할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 화웨이는 구글 안드로이드를 쓰지 않고, 자체 개발한 스마트폰 운영체제(OS) ‘하모니(鴻蒙)’를 쓴다. 하모니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자동차, TV, 태블릿 PC, 생활가전 등 가전, 스마트팩토리 등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이라는 큰 시장을 기반으로 정보기술(IT) 생태계 토대를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앞으로 미국의 대중 규제는 전선이 넓어지면서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지만,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하에 반도체 국산화 전략이 지속될 것이다. 특히 장비·소재 분야에 대한 투자가 공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한국에 미칠 영향은 매우 크다.
중국 1위 파운드리 기업인 SMIC는 2019년 14나노 공정 기술 확보에 이어, 올해 7나노 공정 기술도 개발했다. 비록 지금은 수율이 낮지만, 개선 노력을 할 것이다. 구형(레거시) 공정을 기반으로 한 제조 라인에 대한 투자를 더욱 늘릴 가능성이 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D램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낸드플래시 분야는 양쯔메모리가 높은 수준에 와 있다. 팹리스(반도체 설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있다. 2000여 개 회사가 있고, 질적으로 우수한 팹리스도 제법 많다. 군사용, RF 칩, 전기차에 활용되고 있는 GaN(질화갈륨)과 SiC(실리콘 카바이드) 두 종류의 화합물 반도체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은 절대 만만치 않다. 파운드리, 낸드플래시, D램, 화합물 반도체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 기업과 경쟁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7나노 반도체를 탑재한 화웨이 스마트폰 출시를 계기로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 주시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