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방낙지와 나폴리탄 스파게티
‘조방낙지’는 부산 향토 음식이다. 조방 낙지볶음은 1960년대 초반 부산 동구 범일동 지역에서 시작됐다. 당시 범일동에는 큰 공장이 있었고 그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안주로 낙지를 삶아 제공한 것이 기원이다. 조방 낙지볶음은 고추장을 안 쓰고 해산물 육수에 고춧가루를 풀어서 전골 같은 느낌으로 제공되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퍼졌고 ‘낙곱새(낙지, 곱창, 새우)’ 등의 메뉴가 유명하다. 범일동에 있었던 큰 공장은 ‘조선방직’이었다. 조선방직의 줄임말은 조방, 그래서 조방낙지라고 불린다. 이름에 역사가 담겨있다. 지어낸 스토리가 아니다.
‘나폴리탄’은 이름 때문에 이탈리아 음식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 주둔한 미군을 통해 전래된 케첩 스파게티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현지화된 음식이다. 이민 온 나폴리 사람들이 미국에서 생토마토 대신 토마토케첩을 사용해 스파게티를 먹는 경우가 왕왕 있었고, 미국인은 그것을 케첩 스파게티라 불렀다. 면을 케첩에 비비면 되는 간단한 조리법 때문에 군용 식단에 포함됐고 통조림 형태로 많이 제공됐다. 전쟁 후 미군은 요코하마를 통해 점령군으로 들어간다. 이때 요코하마의 한 호텔 주방에서 통조림의 느낌이 나도록 푹 삶은 스파게티 면에 케첩으로 맛을 낸 요리를 만들어 냈다. 이것이 나폴리탄 스파게티의 시작이다. 이후 파스타 면이 자체 생산되면서 대중적인 파스타 요리로, 나폴리탄이란 이름으로 일본 전역에 퍼졌다. 이탈리아 음식도 아니고 나폴리 음식은 전혀 아니다. 그럴듯한 가짜 역사, 꾸며낸 스토리다.
만든 스토리, 만들어진 스토리
‘서 켄싱턴(Sir Kensington·켄싱턴 경)’이라는 브랜드가 있다. 2010년 브라운대학의 졸업반이었던 스콧 노턴과 마크 래머던이 만든 브랜드다. 미국에서 100여 년이 넘도록 시장을 독점하는 하인즈 케첩에 당당히 맞서 싸운다고 해서 더 유명해졌다. 제품의 콘셉트는 ‘건강한 케첩’, 그래서 유기농 재료를 쓰고 첨가물을 뺏다. 서 켄싱턴은 미국의 유기농 식품매장인 홀푸드마켓에서 먼저 인정받았고 미국의 유명 셰프들이 찾는 프리미엄 케첩으로 알려지면서 성장했다. 2017년에는 거대기업 유니레버에 약 1600억 원에 인수됐다.
두 창업자는 차별적 경쟁우위를 구축하기 위해 그리고 하인즈의 히스토리를 뛰어넘으려고 브랜드의 스토리를 대대적으로 내세웠다. 가상의 인물을 만들었다. 제품 병에 그려져 있는 캐릭터 ‘켄싱턴 경’은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위해 만든 가상 인물이다. 전 세계의 왕족, 귀족들과 교류하면서 미식의 경험을 널리 알렸던 옥스퍼드대학 출신의 영국인 무역상이라는 설정을 가상의 인물에 입혔다. 영국 여왕의 요청으로 동인도회사에서 향신료 관련 일을 했고 러시아 왕족의 부탁으로 케첩을 만들어 줬더니 그 케첩이 너무나도 맛있어서 ‘케첩의 왕’이라고 불리게 됐다는 에피소드도 붙였다. 허구적인 스토리지만 소비자들은 이마저도 브랜딩의 일부로 받아들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과연 그런가? 실체나 역사에 근거하지 않고도 그럴듯한 이야기이기만 하면 브랜드의 스토리텔링으로 문제가 없는 건가. 공장식 생산방식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유기농 재료를 썼다는 등의 실체적인 강점을 전달하는 브랜딩이 거짓 스토리를 활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아쉽기 그지없다. 2023년 서켄싱턴은 케첩을 더 이상 만들지 않고 마요네즈에 집중하겠다는 발표를 한다.
소비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스토리도 있다. 한때 담배 ‘말보로(Marlboro)’는 ‘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ce Over’의 약자라는 이야기가 유행했었다. ‘남자는 흘러간 로맨스 때문에 항상 사랑을 기억한다’라는 뜻이라면서. 문법적으로 잘 안 맞는 영어 문장이었어도, 미국에 살았던 청춘남녀의 슬픈 사랑에서 비롯된 브랜드라는 설정이었다. 브랜드의 팬이 말보로가 좋아서였거나, 자신의 흡연을 정당화하는 시도에서였거나 둘 중 하나 때문에 만든 스토리였을 것이다. 그래도 봐줄 만하다. 마케팅을 위해 기업이 억지로 꾸며낸 것은 아니니까.
시적 허용과 마케팅적 허용
문학, 특히 시에서는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문법상 틀린 표현도 어느 정도는 용인된다. 시적 허용이다. 없는 것을 지어내도 되는 자유가 아니라 있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재량과도 같다. 이런 맥락에서 애경의 ‘덴탈클리닉 2080’ 치약은 마케팅적 허용에 해당한다. ‘20개의 건강한 치아를 80세까지 유지하자’는 의미를 ‘2080’이라는 숫자로 강조한 것이다.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은 아니다. 브랜드의 혜택을 강조하는 충분히 수용 가능한 마케팅적 허용이다. ‘2080’의 뜻을 알았을 때 속았다고 분해하는 소비자는 없다.
와인 ‘1865’의 스토리텔링도 마케팅적 허용에 해당한다. 1865는 산 페드로(San Pedro)라는 칠레 와인 회사의 제품이다. 1865는 이 회사의 설립 연도다. 1865는 세계 80여 개국에서 팔리고 있는데 한국이 최대 소비국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성공을 거둔 이유는 스토리에 있다. 1865를 ‘골프 18홀을 65타에 칠 수 있게 해 주는 와인’이라고 이야기를 입혔다. 65타면 아마추어들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드림 스코어다. 와인 수입사는 마케팅을 위해 골프장의 클럽 하우스를 집중 공략했다. 골퍼들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꿈이 담긴 와인, 그래도 마시면 혹시라도 그럴지 모른다는 기대감의 와인’이 됐다.
문제는 마케팅적 허용을 벗어나는 스토리 텔링이다. 진정성이 중요한 시대라면서 마케팅을 위해 진실성 없는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브랜딩에 활용하는 기업을 너그러이 봐줘야 하는지 자꾸 의문이 들게 된다. ‘TWG(The Wellbeing Group)’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브랜드다. 다양한 종류의 차를 고급스러운 매장에서 팔고 있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은 TWG를 차 문화가 발달한 영국의 브랜드라고 짐작들 한다. 로고를 보면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로고에 적힌 ‘1837’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누가 봐도 창립 연도로 생각하지 않나. 하지만 TWG는 2008년에 설립된 싱가포르 브랜드다. 왜 1837년이냐고? “싱가포르에서 차가 처음 교역된 해이기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숫자 1837을 로고에 넣었다”고 TWG는 설명한다. 이건 마케팅적 허용의 범위를 넘은 것이다.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에 가깝다. 180년이 넘은 브랜드를 이제야 알게 됐다고 아쉬워했던 소비자들은 속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만약 ‘1837, 2008’을 넣고 ‘싱가포르가 차를 처음 거래한 해, 그리고 TWG가 그런 전통을 바탕으로 더욱 새롭게 차를 만들어 낸 해’ 정도로만 했어도 속았다는 느낌은 안 들었을 것 같다. 2019년 TWG는 한 잔에 1만원이 넘는 ‘바샤커피’를 론칭했다. 로고에는 ‘1910’이 박혀 있다. 똑같은 수법이다. 1910은 바샤커피의 탄생 연도가 아니다. 모로코의 ‘다르 엘 바샤(Dar el Bacha)’ 궁전의 설립 연도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이 궁전에 2019년 한 커피 전문점이 입점했다. 바로 바샤커피다. 소비자는 벌써 두 번 속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