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한 고렐리(왼쪽) MW와 마랄리 반피 대표이사. 
배경은 카스텔로 반피 와이너리. 사진 반피·김상미
한국을 방문한 고렐리(왼쪽) MW와 마랄리 반피 대표이사. 배경은 카스텔로 반피 와이너리. 사진 반피·김상미
반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탈리아 와인 브랜드다. 최근 반피의 대표이사 로돌포 마랄리(Rodolfo Marali)와 이탈리아의 마스터 오브 와인(MW) 가브리엘레 고렐리(Gabriele Gorelli)가 와인 홍보차 한국을 방문했다. 그들에 따르면 반피 수출국 중 한국이 매출 면에서 아시아 1위, 전 세계 5위라고 한다. 한국인의 반피 사랑이 대단하다. 도대체 반피가 어떤 와이너리이길래 이토록 우리 입맛을 사로잡은 것일까.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이탈리아 우수 와인 대표 주자, 반피

반피는 1919년 존 마리아니가 뉴욕에 와인 수입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존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함께 이탈리아로 돌아와 밀라노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때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이모 테오돌리나 반피였다. 교황 비오 11세와 어린 시절부터 남매처럼 자란 테오돌리나는 평신도로서는 최초로 교황의 식사와 와인을 책임질 정도로 뛰어난 미각의 소유자였다. 이모로부터 배운 이탈리아 와인과 음식에 대한 지식은 성인이 된 존이 와인 수입상으로 크게 성공하는 데 밑바탕이 됐고 존은 이를 기려 회사 이름을 ‘반피’라고 지었다.

반피가 와인 판매를 넘어 생산에도 뛰어든 것은 1978년 존 마리아니의 아들 존과 해리 형제가 회사를 이어받으면서부터였다. 그들이 주목한 곳은 토스카나주의 몬탈치노 마을. 지금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 와인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당시 몬탈치노는 와이너리가 30곳에 불과할 정도로 미개발된 곳이었다. 존과 해리의 의도는 단순히 이곳에서 와인을 값싸게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목표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세계적인 와인으로 성장시켜 이탈리아 와인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바리크(보르도에서 사용하는 작은 크기의 배럴) 등 최첨단 양조 기술을 도입했고, 토스카나의 토착 적포도인 산지오베제(Sangiovese)와 몬탈치노의 토양 연구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몬탈치노의 모든 와이너리와 공유했다. 자사의 이익만 추구한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발전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가 고른 품질로 전 세계 와인 애호가의 사랑을 받는 데는 반피의 공헌이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피의 와인 숙성실. 사진 반피
반피의 와인 숙성실. 사진 반피
반피는 이탈리아 북서부에 있는 피에몬테주에서도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피에몬테는 토스카나와 함께 이탈리아 와인의 양대 산맥이라 불릴 정도로 프리미엄 산지다. 반피는 토스카나에서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외에도 키안티(Chianti)와 슈퍼 투스칸(프랑스와 토스카나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피에몬테에서는 그 지역의 토착 품종으로 스파클링, 레드, 화이트, 스위트 등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국내에 수입되는 반피 와인의 수만 헤아려도 20여 종이 넘는다.
1 포지오 알레 무라. 2 스무스. 3 프린시페사 가비아. 4 로사 리갈. 사진 김상미
1 포지오 알레 무라. 2 스무스. 3 프린시페사 가비아. 4 로사 리갈. 사진 김상미

최상급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

포지오 알레 무라(Poggio alle Mura)는 반피가 최고의 밭에서 가장 우수한 산지오베제 클론을 재배해 만든 최상급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이다. 탄력 있고 매끈한 질감과 블랙베리, 검은 자두, 초콜릿, 바닐라, 후추 등 집중도 높은 풍미가 매력적이다. 이 와인의 숙성 잠재력은 어떨까. 마침 마랄리 대표이사가 처음 출시한 빈티지인 1997년산을 가져와 마셔보았다. 26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과일 향이 여전히 달콤하고 담배, 가죽, 버섯, 낙엽 등 복합 미가 탁월했다. 우아한 아로마에 취해 나도 모르게 눈이 스르르 감길 정도였다. 나이 들수록 완벽한 맛을 내는 레드 와인의 진수였다. 특별한 날 마시기 위해 셀러에 장기 보관할 와인을 찾는다면 포지오 알레 무라를 적극 추천한다.

묵직하고 부드러운 풍미의 레드와인, 스무스

스무스(Summus)는 산지오베제에 카베르네 소비뇽과 시라를 블렌드해 만든 슈퍼 투스칸 와인이다. 산지오베제의 상큼한 과일 향, 카베르네 소비뇽의 향신료 풍미, 시라의 탄탄한 보디감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이 와인은 검은 체리와 블랙커런트 등 과일 향이 농밀하고 훈연, 삼나무, 정향, 커피 같은 풍미가 와인에 세련미를 더한다. 묵직하고 풍부하며 부드러운 레드 와인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스타일이다. 육류는 물론 피자, 파스타, 치즈 등 다양한 음식과 즐기기 좋고 매콤한 제육볶음이나 갈비찜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경쾌한 화이트와인, 프린시페사 가비아

프린시페사 가비아(Principessa Gavia)는 피에몬테주 가비 지역에서 토착 청포도인 코르테세(Cortese)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다. 사과, 레몬, 라임 등 과일 향이 신선하고 신맛이 경쾌해 모든 음식과 두루 잘 어울린다. 샐러드나 샌드위치처럼 가벼운 음식과 즐겨도 좋고 해산물에 곁들이면 음식에 레몬즙을 뿌린 듯 비린 맛을 줄여준다. 피자, 치킨, 중국요리를 먹을 때 마시면 피클이나 단무지에 손이 안 간다. 물김치처럼 와인의 상큼함이 음식의 느끼함을 말끔히 씻어 주기 때문이다.

달콤한 스파클링 레드와인, 로사 리갈

로사 리갈(Rosa Regale)은 피에몬테주 아퀴 지방에서 생산되는 달콤한 스파클링 레드 와인이다. 아퀴에서 브라케토라는 품종으로 만들기 때문에 브라케토 다퀴(Brachetto d’Acqui)라고도 부르는 이 와인은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을 나눌 때 함께 마신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진홍빛 와인을 잔에 따르면 장미 향을 머금은 핑크빛 거품이 꽃처럼 피어오르고 감미로운 단맛 속에는 딸기와 라즈베리 등 잘 익은 과일 향이 가득하다. 과일샐러드나 케이크와 함께 디저트로 즐겨도 좋고 차게 식혀서 떡볶이처럼 매콤한 음식에 곁들여도 별미다. 알코올 도수도 7.5%로 낮아 술을 잘 못해도 부담없이 마실 수 있다. 반피 와인이 꾸준한 사랑을 받는 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와인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뛰어난 품질에 비해 가격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믿고 마시는 반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