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주체가 아니므로 저작권을 소유할 수 없다. 그렇다면 AI를 만든 테크 기업, AI 사용자, 개발자 중 과연 누구에게 저작권을 부여해야 할까. 결국엔 아무도 저작권을 갖지 않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대니얼 저베이스(Daniel Gervais) 미국 밴더빌트대 로스쿨 교수는 최근 화상 인터뷰에서 ‘AI 창작물의 저작권’에 대해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생성 AI(Generative AI) 기업들을 상대로 한 최근 소송들이 AI와 법의 접점을 결정하는 데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메타(옛 페이스북)와 챗GPT 개발사인 오픈AI 등에 대한 소송이 연이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챗GPT가 출시 2개월 만에 사용자 1억 명을 돌파하며 테크 업계를 뒤흔든 이후, 작가들이 AI 학습에 본인들의 작품이 무분별하게 사용됐다고 반발하면서다. 지난 6월엔 소설 ‘세상 끝의 오두막’의 저자인 폴 트람블레이와 소설 ‘버니’의 저자 모나 어와드가, 7월엔 미국 코미디언이자 작가인 세라 실버먼 등이 메타와 오픈AI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저베이스 교수는 “AI 기업이라고 해서 저작권법 적용의 예외가 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AI 학습 과정에서 더 많은 투명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베이스 교수는 밴더빌트대 로스쿨에서 지식재산권과 AI 관련 법 강의를 맡고 있으며, 지난 8월 AI와 법의 접점을 다룬 삼부작 소설 ‘공생(Coexistence)’ 중 첫 번째인 ‘영원히(Forever)’를 출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많은 작가가 생성 AI 기업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내고 있다. 어떤 의미가 있나.
“이 소송들은 꼭 필요했다고 본다. 주요 법적 쟁점은 AI의 타 저작물 이용이 미국법에서의 공정 이용(fair use·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을 제한적으로 이용)에 해당하는지다. 그 밖에 AI가 의도적으로 저작권관리정보(CMI)를 삭제했다는 주장과 AI 기업들의 불공정거래행위도 소송의 근거로 제기됐다. 작가들이 AI로 인한 부당함을 느낀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기 때문에 AI가 모든 과거의 데이터를 학습하는 순간 (다시 되돌리거나) 통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판결이 나오면 큰 파장이 있을 것 같다.
“현재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인 많은 건이 있는데, 모두 5~7년이 지나야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나온다 해도 주 법원마다 다른 판결을 할 가능성도 있다. 단일한 답을 얻기 위해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까지 가려면 9~1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분명 그 전에 국제적으로 AI 사용 관련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바람직한 합의 방향은.
“AI라고 해서 다를 것 없이, 저작권법이 정한 기준을 최대한 적용하는 것이다. 현재 많은 로스쿨 교수와 테크 기업이 AI의 데이터 학습 과정에서 저작권 법률 적용을 면제받게 하기 위해 활발하게 로비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 일본, 싱가포르는 이미 AI가 저작권 관련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규정을 명문화했다. 하지만 이렇게 AI에만 예외를 인정해주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근 미국작가조합(WGA)이 장기간 파업 끝에 영화·TV 제작자 연합(AMPTP)과 소설이나 연극에 AI 생성 콘텐츠를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업계에 미칠 영향은.
“업계에서의 AI 사용과 관련해 투명성을 제고해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이번 WGA 파업은 역설적으로 제작자들에게도 도움이 됐다. AI가 스스로 콘텐츠를 학습해서 대본을 쓰고 작품을 만들게 되면 인간 제작자의 역할이 필요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예 AI 회사들이 영화 제작에 직접 뛰어들거나 영화 스튜디오를 인수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합의 내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 훌륭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선 제작 과정에서 인간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AI는 학습한 데이터로부터 약간의 변주를 할 뿐, 기존에 없는 새로운 시도는 할 수 없다. 일례로 AI가 한국의 ‘오징어 게임’ 같은 혁신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순 없지 않겠는가. 생성 AI가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영화 및 텔레비전 업계에서 AI의 영향력 확대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분명 이번 합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한 단계 나아갔다.”
AI가 생성한 저작물의 저작권은 누가 소유해야 하며, 이를 결정하는 기준은.
“답은 간단하다. 아무도 소유할 수 없다. 저작권법에서는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주체에게만 저작권을 부여하는데, AI는 스스로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안은 AI 관련자에게 저작권을 부여하는 것인데, 그 주체가 AI를 소유한 테크 기업이 될지, AI 이용자가 될지, 개발자가 될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러므로 가장 합리적인 답은 기계가 만든 저작물에 대해선 아무도 권리를 가지지 않는 것이다. 다만 매우 소수의 경우, AI 프롬프트(prompt·응답을 생성하기 위한 입력값)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해 작성자의 창의성이 인정된다면 그 결과물(output)에 대한 작성자의 권리를 인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AI가 만들어낸 혐오 발언 등 부적절한 결과물을 어떻게 다뤄야 하나.
“이 부분에 있어 각국 정부가 더욱 예방적인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현재는 테크 기업들에 자기 조절(self-regulation), 즉 재량으로 혐오 발언을 필터링하도록 맡기고 있는데,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X(옛 트위터)에는 현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 수많은 가짜 뉴스와 양국에 대한 혐오 표현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를 보면 AI의 부적절한 결과물을 대하는 방식은 분명 바뀌어야 한다.”
생성 AI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법은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두 가지 방면으로 법제화가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다. 우선 AI 사용에 있어 더 많은 투명성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선 이미 관련 변화가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현재 유럽에선 테크 기업들이 AI를 학습하는 데 활용한 저작물의 출처를 밝히도록 하는 AI법(EU AI Act)이 시행될 가능성이 크다. 또 비교적 새로운 개념인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에 대한 규제가 확립될 것이다. 퍼블리시티권은 다른 사람의 얼굴 및 유사한 이미지를 허락 없이 사용할 권리를 말한다. 실제로도 현재 매릴린 먼로 등 사망한 배우를 작품에 출연시키려는 기술적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앞으로 이런 행위가 적절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법제화가 이뤄질 것이다.”
이번 인터뷰와 관련해 최근 출간한 책 ‘영원히’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면.
“‘영원히’는 AI가 법 제도에 줄 수 있는 영향에 대해 다룬 SF 장르의 삼부작 소설 중 첫 번째다. 내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고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현업 변호사들을 비롯해 많은 독자에게서 반응이 오고 있다. 내년 초쯤 원고 작성을 마무리할 2편의 일부는 서울을 배경으로 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바란다.”
AI 시대 배우·작가 권리 보장 요구
저작권 도용 우려 美 콘텐츠 창작자들
처우 개선과 AI(인공지능) 대책을 요구하며 5개월 연속 파업 중이던 할리우드 미국작가조합(WGA)이 9월 24일(이하 현지시각) 영화·TV 제작자 연합(AMPTP)과 파업을 끝내기 위한 합의에 이르렀다. 합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양측은 AI 사용과 관련한 WGA의 요구가 일부 수용됐다고 밝혔다. 반면 7월 14일 시작된 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의 파업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들은 앞으로 AI가 만들어낸 배우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무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주장하며 관련 대책 등을 촉구하고 있다. 이같은 작가·배우 조합의 동시 파업은 1960년 이후 63년 만으로, 할리우드 산업에 큰 타격을 준 만큼 AI 사용 문제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