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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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약 2년 동안이나 지속되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시작됐다. 또 아프가니스탄의 지진, 리비아 홍수로 수천 명이 사망했다. 지구 곳곳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요즘은 그야말로 ‘전쟁의 연속’이다. 지진 같은 큰 재해나 국가 간 전쟁뿐 아니다. 지난해 이태원 사고, 올해 여름의 지하차도 물난리까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재난 속에서 우리는 큰 ‘트라우마(trauma)’를 받는다.

윤우상 
밝은마음병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엄마 심리 수업’ 저자
윤우상 밝은마음병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엄마 심리 수업’ 저자

트라우마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다. 하나는 외상(外傷), 즉 신체적 손상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재난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후유증을 뜻한다. 이중적인 의미가 있기에 단어 사용에 구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는 현재 국가에서 지정한 ‘권역 외상센터’도 있고 ‘권역 트라우마센터’도 있다. ‘권역 외상센터’는 교통사고, 추락, 재난 등으로 생명이 위독한 중증외상환자를 위한 응급치료센터다. 반면 ‘권역 트라우마센터’는 재난으로 인한 정신적 후유증의 회복을 돕는 정신치료센터다. 트라우마 후에 불안, 분노, 사회적 회피 등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는 병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라고 한다. 트라우마센터는 엄밀히 표현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센터’라고 해야 한다.

트라우마와 관련된 연구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군대 심리학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후 베트남 참전 용사들의 정신적 후유증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트라우마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수많은 연구 결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명이 만들어진 것이다.

원래 이 진단은 큰 재난 뒤의 정신적인 후유증에만 사용됐으나 지금은 일상적인 사고, 또는 대인관계의 갈등이나 사건까지 확장돼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작은 사건에 쉽게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붙인다. 심리적인 외상을 인지하고 조기에 대응책을 세우는 것은 필요하지만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조금 심하게 지적받은 것을 트라우마를 받았다고 문제 삼는다. 자녀가 학교에서 교사한테 야단맞은 것을 아이가 트라우마를 받았다고 민원을 낸다.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나 해프닝에 트라우마라는 심각한 단어를 사용하면 스스로 트라우마라는 프레임에 걸려서 그 안에 갇힐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일을 오히려 큰 상처로 만들게 된다.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과 심리적 상처를 트라우마로 단정 짓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은 것만은 아니다.

트라우마는 생명이 위협을 받는 큰 재난 상황에서 시작된 단어다. 전쟁과 재난으로 인해 죽을 뻔하고, 바로 눈앞에서 옆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이 있다. 전쟁과 재난 후에 세상은 다시 평온을 찾겠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트라우마 극복이라는 생존을 건 싸움을 해야 한다. 그들이 다시 몸과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