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받은 인상은 ‘변화에 둔감하다’는 것이었다. 철강 시장은 성숙기를 지나 성장률이 떨어지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능력 있는 인재를 유치하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이 시급했다.”
철강 가공·유통 중견기업 ‘기보스틸’ 창업주 최승옥 회장의 장남으로 현재 기보스틸 부사장을 겸임하고 있는 박정무(46) ATU파트너스 대표가 최근 인터뷰에서 내뱉은 4년 전 상황에 대한 회고다. 기보스틸의 2022년 매출은 약 6700억원이다. 서울대 화학과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슬론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그는 SBS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고,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의 전략 컨설턴트와 CJ ENM 글로벌사업팀장 등을 거치며 콘텐츠·커머스 투자 전문가로 입지를 다졌다.
박 대표는 기보스틸이 창립 20주년을 맞은 2019년 3월, 회사를 도약시킬 새로운 사업 전략을 만들어 보라는 최 회장의 부름을 받고 입사했다. 입사 후 한 달간 100명이 넘는 직원과 일대일 면담을 하면서 회사의 현안을 파악했고,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것이 기보스틸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해 ATU파트너스를 차렸다. 다음은 박 대표와 일문일답.
ATU파트너스 설립 계기는.
“기보스틸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뭘까 고민하다가 사모펀드(PEF)를 만들어 고부가가치 산업에 투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보스틸에 입사하기 전 맥킨지에서는 글로벌 전략을, CJ ENM에서는 투자 전략·네트워킹을 담당했다. 이걸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것이 PEF 운용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모기업에 많은 현금을 가져다줄 수 있고, 인수합병(M&A)이나 투자에 대한 안테나 역할도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현재 ATU파트너스는 어떤 분야에 주로 투자하고 있나.
“문화·콘텐츠·소비자·헬스케어 등 네 개 분야다. 앞으로 이 분야는 반도체나 조선, 이차전지에 이어 한국의 ‘넥스트 빅싱(차세대 대형 제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도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나. 그런데 국내에서는 다른 제조업에 비해 아직은 인력·자본 고도화가 안 됐다. 그런 철학에 동의하는 사람 네 명을 모아 투자를 시작했다.”
e스포츠 전용 펀드를 만든 배경은.
“과거 CJ ENM에서 글로벌본부장을 하면서 e스포츠가 잘 성장하는 것을 봤다. 요새 20·30대는 예전처럼 축구나 야구, 농구를 보지 않고 게임으로 진행되는 e스포츠를 본다. 북미에서도 e스포츠 구단이 생겼고, 팀의 가치는 수천억원에 달한다. 한국에서도 뉴욕 양키스나 레알 마드리드처럼 명문 e스포츠 구단이 탄생할 수 있겠다고 봤다. 그래서 2019년 11월 아시아 최초로 e스포츠 전용 펀드를 만들었다.”
1호 펀드로 어떤 e스포츠 구단을 인수했나.
“DRX였다. 이 구단은 지난해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e스포츠 구단 ‘T1’을 꺾고 ‘롤드컵(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라는 유행어도 여기서 생겨났다. 롤드컵 우승 후 각계각층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 인수 당시 60억원이었던 DRX의 가치가 많이 올랐다. 아시안게임에서도 e스포츠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가 됐다.”
원소주 제작에 참여한 이유는.
“2021년 초 우연히 ‘원소주’ 사업을 구상하고 있던 박재범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소주를 고급화해서 미국의 럭셔리 바 또는 클럽에서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고,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ATU파트너스의 자회사인 ‘컬쳐앤커머스’를 통해 박재범과 함께 ‘원스피리츠’라는 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이후 원소주의 생산·유통·마케팅에 직접 참여했다. 전통주 장인과 협업해 원소주를 제작하고, 편의점과 온라인으로 제품을 유통하면서 20·30대가 즐길 수 있는 소주로 만들어 상품을 차별화했다. 이런 방식이 잘돼서 매출과 영업이익도 1년 만에 아주 많이 늘었다.”
현재까지 ATU파트너스에서 진행한 투자는.
“현재까지 30여 개 회사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했다. 문화·콘텐츠·소비자·헬스케어 등 라이프스타일 분야 기업이 주요 투자처다. 인기 애니메이션 ‘캐치! 티니핑’을 만든 ‘SAMG엔터’와 푸드테크 기업 ‘인테이크’, e스포츠 데이터 서비스 기업 ‘op.gg’도 포함돼 있다. 설립 4년 만에 운용 자산(AUM)은 1800억원을 돌파했고, 올해 말 2200억원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지난 6월 말 기준 내부 수익률(IRR)은 46%에 달한다. 투자 성과를 인정받아 모태펀드(여러 개의 펀드를 모아 만든 펀드)의 운용사로 두 차례 선정되기도 했다. 2020년 7월 처음 운영사로 선정돼 51억원 규모의 펀드를 운용했고, 올해 4월에는 K컬처테크 M&A 분야 모태펀드 운영사로 선정됐다. K컬처테크 M&A 펀드는 올해 10월 말 410억원으로 1차 마무리했고, 추가로 펀드를 조성해 최대 1000억원 이상으로 설정될 예정이다. 이 펀드로 제2의 하이브·크래프톤을 발굴할 계획이다.”
부사장으로 있는 기보스틸에서는 어떤 사업을 했나.
“기보스틸이 운영하는 ‘스틸 서비스센터(SSC·철강 유통·서비스센터)’에 아마존 클라우드 기반 스마트 팩토리 시스템을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기존에는 운영 지시를 수기로 남기거나 엑셀로 작성해 생산 이력을 찾아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데이터로 기록이 돼 생산 이력이나 과정이 전산화됐다.”
모친인 최승옥 회장이나 임직원의 반대는 없었는지.
“모친과 임원들은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평소 모친이 일군 성과를 존경해 왔는데, 이제는 사모펀드 운용이나 글로벌 네트워킹 측면에서 부족한 점을 내가 채워주고 있어 좋은 시너지를 내고 있다. 임원들도 ATU파트너스를 설립할 때 주주로 참여하는 등 많은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고 있다.”
한국에서 중견기업 2·3세 경영인이 더 많이 나오려면.
“규제가 걱정이다. 현재는 가업을 상속받으려는 중견기업 2·3세에 대한 지원보다 규제가 더 많다.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중견기업이 영속해야 중소기업과 동반 성장도 가능하다. 최소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사한 수준으로 정부가 세금 등 규제를 완화해야 2·3세들도 기업을 탄탄하게 운영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의 목표는.
“철강과 금융을 두 축으로 삼아 기보스틸을 키울 계획이다. 포스코도 포스코기술투자를 통해 성장하고 있듯이, 기보스틸도 ATU파트너스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10년 뒤에는 기보스틸이 매출 5조원에, 영업이익 1조원을 내는 회사로 거듭날 것이다.”
회사명 ATU파트너스
본사 서울시 강남구
사업 PEF 운용
설립 연도 2019년
누적 운용 자산 1800억원(2023년 9월 기준)
내부 수익률 46%(2023년 6월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