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안나이이타시마스(안내해 드리겠습니다)!”
10월 11일 일본 지바현 지바시 마쿠하리 멧세(幕張メッセ) 전시장. 일본 최대 규모 농업 박람회인 ‘어그리 위크(AGRI WEEK)’가 열리는 이곳에는 첫날 오전부터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3만3000여㎡(약 1만 평)의 광활한 행사장에 빼곡히 정렬된 부스에선 각 회사 직원이 홍보 책자를 나눠주며 목이 터져라 자신의 기업을 홍보하고 있었다. 일본어 사이에 간간이 한국어나 중국어도 들렸다. 터번을 쓴 중동·인도인과 서양인도 보였다. 이 박람회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날아온 농업 관계자들이다.
어그리 위크는 일본 국내외 주요 농업·축산 기술 관련 업체들이 저마다 스마트 농업 기술이나 스마트 농기계들을 펼쳐놓고 전 세계 바이어와 소통하는 장이다. 어그리 위크에 따르면, 사흘간 열린 올해 행사에는 전 세계에서 총 850개 업체가 참여했고 4만 명이 참관했다. 올해로 13번째 열린 이 행사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통신만 할 생각 없다”는 NTT, 일차산업 손 뻗쳐
이 행사에 참여한 수많은 업체 중 가장 눈에 띈 곳은 NTT그룹이었다. NTT도코모는 우리나라의 SKT 같은 일본 최대 이동통신사다. NTT도코모를 주축으로 수많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을 거느린 NTT그룹이 요즘 주력하는 분야는 역설적이게도 일차산업인 ‘농업(農業)’이다. 사명에 붙은 ‘도코모(どこも·어디에든)’의 뜻처럼, 시골 구석구석까지 깔려 있는 NTT도코모의 네트워크(망)가 농업을 진화시키기에 매우 탁월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NTT는 일본 현지 스마트 농업 발전 현황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전시회장 입구에 있는 NTT그룹의 부스 한 벽면에는 지역별 일차산업과 ICT 접목 사례들이 그려진 일본의 전국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NTT그룹과 기업·지자체가 협업한 32개 사업이다. NTT그룹은 취업 인구의 급감과 고령화, 경작 포기 증가 등 일본 농업의 다양한 과제를 이미지센싱·빅데이터·자율주행·드론·인공지능(AI) 등 ICT 기술을 활용해 해결하려고 한다.
대표적으로 NTT는 오사카 지역에서 ‘농산물 유통’과 관련한 가상 시장 실증 실험을 하고 있다. 일본의 농작물은 80%가 오프라인 도매시장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주로 수도권 도매시장을 먼저 들르다 보니 이곳에서 팔리지 않은 것을 다른 지방으로 운송해 되팔면, 신선도가 떨어지고 운송비가 증가한다는 비효율 문제가 발생한다. NTT는 과거 축적한 판매 데이터나 날씨 정보 등을 조합해 향후 어디서, 얼마나 거래가 이뤄질지를 예측하고, 가상 시장을 통해 매매가 가능하도록 구현 중이다. 농부는 미리 수요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생산 계획을 세울 수 있어 낭비를 줄일 수 있다.
현재 NTT가 전국에 가동 중인 애플리케이션(앱) 중에는 ‘레이미(レイミ)’란 서비스가 있다. 농작물의 병해충·잡초를 사진 한 장으로 진단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문제의 농작물 상태를 카메라로 찍으면 AI가 분석해 원인과 방제 방법을 제시하고, 여기에 걸맞은 농약을 추천해준다. 현재 진단 가능한 작물은 벼·토마토·오이·딸기·가지 등 19종인데, 올해 중 27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타카시마 히로토 NTT그룹 연구개발마케팅본부 부장은 “우리는 통신사이지만, 통신만 할 생각은 없다”면서 “전국에 인프라와 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을 십분 활용해 일차산업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농작물 따주는 로봇, 영농 기록 돕는 앱…가지각색 농업 아이템
NTT 외에도 농업의 ‘불편한 지점’을 바꾸고자 ICT를 접목한 시도는 많았다. ‘워터셀(Water-Cell)’이란 기업은 ‘어그리 노트(アグリノート·Agri Note)’란 앱을 개발해, 농부들의 ‘영농 기록’을 돕고 있다. 그동안 수기나 엑셀로 해오던 일이다. 항공 사진을 이용해 각 농장의 작업 내용이나 작물의 생육 상황, 수확·출하 내용을 보기 쉽게 기록하도록 지원한다. 워터셀 관계자는 “1년간 어느 정도의 비용을 투입했고 어느 정도 수입이 있었는지, 이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어떻게 더 잘 생산할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 분야에서 기록은 중요한 작업”이라며 “일본의 농업을 전부 데이터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농업용 로봇 기업 ‘애그리스트(AGRIST)’는 사람 대신 농산물을 수확해 주는 로봇을 전시했다. 로봇은 오이를 카메라로 인식하고 자신의 팔을 가져다 정확히 집은 뒤 흔들었다. 약 150만엔(약 1350만원)의 초기 설치 비용과 수확 농산물 판매액의 10%를 부담하면, 일손 부족 문제를 영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셈이다.
농번기 농가에 필요한 일손 수요와 단기 아르바이트 구직자를 연결하는 앱 ‘타이미(タイミー·Timee)’도 자리했다. 타이미 관계자는 “일본 농가는 고령화 때문에 일손이 너무나도 부족한 현실”이라며 “일본 스마트 농업계엔 이런 고민을 고려한 결과물이 많다”고 했다.
일본은 정부·지자체 등 관(官) 주도보다는 민간 기계·통신 등 분야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이 산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시장을 이끌고 있다. 흔히 ‘스마트팜’ 하면 떠오르는 거대한 스마트 농업 기계뿐 아니라, ‘농업 생활’과 관련해 사소하지만 불편한 고민을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도 인상적이었다.
스마트한 꿀 따기, 젖짜기…일본서 선뵌 韓 기술들
해외 전시관도 따로 마련됐다. 여기엔 국내 주요 스마트 농업 기술 업체가 모였다. 한국농업기술진흥원·농기계협동조합·경상북도경제진흥원 등의 주도로 국내 기업 30여 곳이 참여했다. 역대 이 행사에 참여한 국내 기업 수로는 최다다.
‘쉘파스페이스(Sherpa Space)’도 이곳 한국관에서 기업 소개에 한창이었다. 이 업체는 농작물과 식물의 생육 주기별로 필요한 빛의 파장·강도를 자유롭게 변경 가능한 조명을 개발했다. 빛의 불필요한 파장을 줄여 ‘맞춤형’으로 쬐어줌으로써, 시설 원예의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고 농작물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기술이다. 윤좌문 쉘파스페이스 대표는 “일본에서의 전시는 처음인데, 일본식물공장협회(JPFA)·지바대학(千葉大學) 등에서 관심을 보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스마트 양봉 기자재 ‘스마트하이브’를 만드는 ‘대성(DAESUNG)’도 자리했다. 꿀벌을 죽이는 말벌을 퇴치하고, 벌집이 완성되면 벌을 털어 자동으로 들어 올린 뒤 채밀(꿀을 뜨는 것)하는 것까지 자동으로 이뤄지는 기계다. 꿀벌 애벌레가 잘 자라는 환경인지 점검할 수 있는 앱도 연동된다. 김이정 대성 해외사업부 팀장은 “일본은 아직도 옛날 방식으로, 소규모로만 양봉하는 농가가 많아 관심을 많이 보인다”고 했다.
축산 업계 스마트팜 업체인 ‘다운(Dawoon)’은 로봇 착유기를 선보였다. 사람 손 대신 로봇이 젖소의 젖을 세척하고 우유를 짜내는 장비다. 미국산 착유기가 있기는 하지만 값이 비싸고 너무 무거워 동양인 근력에는 버겁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한국농업기술진흥원 관계자는 “우리 스마트 농업 기술은 내수뿐 아니라 세계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지금은 수출 실적이 거의 없는 기업이 대부분 자리하고 있지만, 스마트 농업 분야 선진국인 일본 박람회를 통해 세계 무대에서의 우리나라 스마트팜 경쟁력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제작 지원: 2023년 FTA이행 지원 교육홍보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