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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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倡議)의 사전적 의미는 ‘광범위하게 논의하다’라는 말이니 ‘제안하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initiative(이니셔티브)’에 해당한다. 창의는 중국의 정책 방향의 큰 그림을 그리는 청사진으로 가끔 전면에 등장한다. 대표적으로는 ‘일대일로 창의(一帶一路倡議·One Belt One Road Initiative)’가 있다. 일대일로 창의는 2014년 11월 중국에서 개최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제창한 실크로드 경제 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를 연결하는 경제권 건설의 구상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일대일로 창의는 중국을 대표하는 대외 협력 모델로 부상했다.

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창의라는 용어는 법률에도 등장한다. 중국은 각국과의 외교·경제·문화 등의 영역에서의 교류와 합작, 유엔(UN) 등의 국제조직과의 관계 발전에 적용하기 위하여 대외관계법(對外關系法)을 제정해서 2023년 7월 1일부터 시행 중인데, 법 제18조는 “중국은 글로벌 발전창의·안전창의·문명창의를 추진 및 실천하고 전방위적이고, 다양한 수준과 폭넓은 영역에서의 입체화된 대외 업무를 추진한다”라고 규정했다. 한편 중국의 인터넷 정보 사무처는 2023년 10월 18일 ‘글로벌 인공지능 거버넌스 창의(Global AI Governance Initiative)’를 공포했다. 본 창의의 주요 내용은 인류 문명의 진보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중심이 되고, 기후변화 및 생물 다양성의 보호 같은 전 지구적인 도전에 대처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하며, 선(善)을 지향하는, 윤리가 우선시되는 AI의 발전을 통해 국제법을 준수하며, 평화·발전·공평·정의·민주·자유라는 전 인류 공통 가치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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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국이 AI 창의를 공포하기 하루 전날인 10월 17일 미국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통제의 최종 규칙을 반포했다. 최종 규칙은 이전의 수출 통제 조치 때 규정했던 것보다 낮은 사양의 AI 칩도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시켜 중국 국내로의 유입을 막을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공포한 창의는 중국을 향한 이런 압박에 항의를 하는 성격도 있어 보이는데 본 창의에는 우월한 AI 기술을 앞세워 여론을 조작하고 가짜뉴스를 유포하거나 다른 나라의 내정, 사회제도 및 질서에 간섭하거나 주권을 위협하는 행위에 반대한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번 창의의 주요 내용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중국의 AI는 일정한 가치를 지향한다. 이미 반포되어 시행 중인 생성 AI(Generative AI)에 관한 규정에도 생성 AI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용하는 자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견지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즉, AI도 공산당 영도라는 중국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 국토의 완전성 같은 중국의 핵심 이익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창의는 중국의 AI 산업이 나아갈 일정한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보이나 조항의 내용이 원론적인 것이어서 창의의 구체적인 시행 방법은 향후 추가적인 입법을 통해 새로 제정 내지 보충할 것으로 예상된다. AI를 비롯해서 반도체, 이차전지 등의 첨단 산업 영역에서 중국과 경쟁 내지는 협력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러한 중국적 특색의 가치 지향적인 AI 기술 발전에 관한 이해의 바탕 위에 향후 각종 관련 법규들의 입법 동향과 실무상의 운용 상황을 잘 살피고 이에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