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기 월리스(Dougie Wallace)의 
‘웰 힐드(Well Heeled)’ 표지. 사진 김진영
더기 월리스(Dougie Wallace)의 ‘웰 힐드(Well Heeled)’ 표지. 사진 김진영

영국의 거리 사진가 더기 월리스(Dougie Wallace)는 거리에서 눈에 띄는 사회의 변화를 포착하는 작가다. 부유층의 소비문화, 도시에서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부동산 가치 상승으로 기존 거주자 또는 임차인이 내몰리는 현상), 대중문화 행사나 관광 축제 등에서 사람들의 행동과 상호작용을 사진에 담아낸다. 사회 변화의 추세를 기록하면서 여기에서 엿볼 수 있는 인간의 부조리한 모습을 때로는 비판적으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월리스의 대표적인 작업 가운데 하나는 ‘해로즈버그(Harrodsburg·Dewi Lewis Publishing·2017)’다. 월리스는 영국 런던 나이츠브리지 지역의 백화점과 명품숍이 즐비한 일대에서 거리 사진을 촬영했다. 이 지역은 1970년대 중반부터 중동의 백만장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해, 이후에는 러시아 부호와 금융 자산가들이 합류하게 되면서, 현재는 글로벌 슈퍼 부자들이 앞다퉈 부동산을 자산으로 사들이는 지역으로 변모했다. 월리스는 이러한 거리에서 인물들에게 대담하게 접근해, 현란한 명품, 쇼핑백, 귀금속으로 치장한 인간 군상의 부조리함을 강조해 보여준다. 과도한 부와 탐욕, 과잉된 소비 지상주의의 상징이 되는 강력하고 직접적인 디테일을 선명하게 포착한다.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그의 촬영 방식은 그야말로 거침이 없다. 플래시가 달린 큰 카메라를 사전 동의 없이 행인에게 들이대 촬영한다. 원하지 않는 사진을 찍힌 것에 분노한 사람들은 그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그를 쫓아와 사진을 지우라고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 작업을 하던 중 월리스는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들이 자신 못지않게 애지중지하며 데리고 다니는 개에게 주목하게 됐다. 이들은 자기 애완견을 자식처럼 여기고 유모차나 차에 태우고 다니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화려하게 치장시키곤 했다. “나는 주인보다 개에게 점점 더 끌리게 되었다. 개들은 인간적인 표정과 강한 성격,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 매력에 푹 빠졌다.” 게다가 개들은 촬영을 당해도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개 주인들도 ‘자식’이 사진 찍히는 것을 즐겁게 지켜보곤 했다.

책에는 월리스가 런던, 밀라노, 뉴욕, 도쿄 등 대도시에서 찍은 개 사진이 담겨 있다. 월리스는 개의 시선으로 사진을 근접 촬영해 개의 눈빛과 표정, 개성, 감정, 생동감 등을 포착했다. 사진 김진영
책에는 월리스가 런던, 밀라노, 뉴욕, 도쿄 등 대도시에서 찍은 개 사진이 담겨 있다. 월리스는 개의 시선으로 사진을 근접 촬영해 개의 눈빛과 표정, 개성, 감정, 생동감 등을 포착했다. 사진 김진영

‘웰 힐드(Well Heeled·Dewi Lewis Publishing·2018)’는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인 개에게 초점을 맞춘 작업을 보여준다. 월리스는 런던, 밀라노, 뉴욕, 도쿄 등 대도시에서 개를 꾸미고 손질하는 데 많은 돈을 쓰는 주인의 손에 이끌려 거리를 누비는 개를 포착했다.

이들은 명품 목줄을 하거나 크리스털 장식 목걸이를 한 모습부터, 가죽 시트의 차를 탄 장면, 주인의 명품 가방 안에 들어 있는 모습 등 다채롭게 등장한다. 이 사진들은 개가 애완동물을 넘어서 거리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다. 사진의 주인공은 주인이 아닌 개이기 때문에, 개의 주인은 사진에 등장하지 않거나 혹은 사진에 신체의 일부만 등장한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해 우리는 특정 인상을 받게 되는데, 화려한 의상, 성형수술을 한 입술, 명품 액세서리와 가방 등 해석 가능한 사회·문화적 기호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월리스는 부유한 사람들이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그 가치관을 개에게까지 옮기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월리스가 단순히 부와 패션의 상징으로서만 개를 등장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는 몇 가지 사진적 기법을 활용해 개의 눈빛과 표정, 각각의 개성과 감정, 나아가 생동감을 포착한다.

우선 카메라를 가까이에 두고 근접 촬영하면 왜곡이 발생해 렌즈 앞의 피사체가 실제 모습과 크기보다 과장돼 연출된다. 캐리커처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얼굴이 크게 담긴 개는 사람의 표정처럼 눈동자를 굴리기도 하고, 아는 척이라도 하는 듯 카메라를 향해 장난을 치는 듯 보이기도 하고, 거침없이 이빨을 드러내며 성을 내기도 한다.

또한 월리스는 두 발로 걷는 인간이 자신 본연의 눈높이에서는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개의 낮은 시선에서 디테일을 포착한다. 이를 위해 눈으로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촬영하는 대신, 카메라를 든 손을 개가 있는 높이까지 낮춰 촬영했다.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새의 시선으로 촬영한 사진을 ‘버즈 아이 뷰(bird’s-eye view)’라 부른다. 사람의 발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개의 시선으로 촬영한 이 사진들은 ‘도그스 아이 뷰(dog’s-eye view)’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 덕분에 이 사진들은 카메라가 아니라면 우리가 경험하기 어려운, 개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을 가늠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플래시를 사용해 고속으로 촬영한 덕분에 예상할 수 없이 천방지축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개의 움직임이 순간 포착돼 있다. 흘러내리는 침은 고드름처럼 고정돼 있고, 정신없이 바람에 날리는 털은 특정 형태로 멈춘 채 재미있는 형상으로 찍혀 있다. 한껏 으르릉거리며 내놓은 이빨이나 코를 할짝대는 혀의 모습도 현실에서와 달리 찰나의 순간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이 책은 한껏 손질되고 명품 목줄로 화려하게 치장돼 있지만, 이 개들이 결국은 공을 쫓거나 뼈를 씹는 것을 더 좋아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침으로 흠뻑 젖은 털과 코, 거침없이 드러낸 이빨,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촬영되는지)에 신경 쓰지 않는 다채롭고 솔직한 모습을 통해서 말이다. 이 책은 개의 시선을 빌려 반려동물의 세계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