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버드대 경제학 학·석·박사, 현 유엔 산하 지속 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대표, 현 유엔 SDG 홍보대사, 전 유엔 사무총장 특별보좌관, 전 볼리비아 대통령 자문역, 전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이사 사진 제프리 색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미국 경제의 경쟁력을 약화할 것이다.”
제프리 색스(Jeffrey Sachs)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최근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미국의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생산 기지 우방국 이전)’ 정책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색스 교수는 전 세계가 경제적으로 공존할 방법을 연구해 온 세계적 석학이다. 그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3대 스타 경제학자’로 꼽힌다. 색스 교수는 미국의 대중 정책 모두가 이득을 보는 포지티브섬(positive-sum)이 아닌 한 명이 이득을 보면 다른 사람은 손해를 보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라는 전제에 근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정책은 결국 미국 패권을 보호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런 정책으로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다른 경제 동맹을 강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묻자, 색스 교수는 “한국은 미국의 무역 게임에 휘말려서는 안 되며 중국과 정상적인 무역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면서 “중국, 한국, 일본은 서로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중 패권 경쟁에 따른 미국의 무역 질서 재편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나.
“미국은 중국에 관세, 쿼터, 세제 혜택에 대한 원산지 규정 기준 강화, 기술수출 및 금융거래 장벽 등 여러 장애물을 부과하고 있다. 이런 조치의 목표는 중국 경제를 약화하고 중국의 기술 발전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여러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가장 극적인 것은 중국의 대미 상품 수출 감소다. 2023년 6~8월 수출을 전년 동기와 비교했을 때 약 26% 감소했다.”
미국은 원자재와 부품 공급망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유가 뭔가.
“기본적으로 미국의 대중국 경제 전쟁의 일환이다. 앞서 말했듯, 미국의 경제 전쟁은 중국을 ‘억제(containing)’하고 중국의 군사력과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실 이는 미국의 익숙한 정책 결정 매뉴얼이다. 이런 매뉴얼이 가장 노골적으로 적용된 첫 사례는 냉전 시대에 미국이 적으로 규정했던 소련에 유입되는 첨단 기술을 차단한 것이었다.”
실제로 미 행정부는 2022년 2월 조 바이든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핵심 부품에 대한 공급망 재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중국에 대한 높은 수입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많았는데.
“바이든은 반(反)중 강경파다. 해당 조치는 부분적으로는 미국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외교정책 때문이지만, 내년 11월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보호무역주의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도 보인다.”
최근 중국 경제성장이 한계를 맞았다는 피크 차이나론이 불거지고 있다. 이는 미국에 어떤 의미인가.
“미국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방해하려고 한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의 금융 위기를 환영할 것이다. 실제 최근 중국 경제가 둔화하고 있고, 서구 언론은 중국 부동산 시장발(發) 금융 위기와 과도한 부채 등을 지적한다. 그러나 중국 경제 둔화 상당 부분은 중국의 빠른 성장을 늦추려는 미국의 조치에 의한 결과다. 1990년대 초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일본의 금융 위기를 촉발한 것처럼 말이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미국은 의도적으로 일본 경제성장을 늦추려고 했다.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이었고, 지금도 그렇기에 의외의 행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제조업 부문(특히 자동차, 전자제품, 반도체)에서 미국 기업들을 앞질러 미국 경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됐다. 미국 정치인은 일본과 합의한 소위 ‘자발적’ 제한을 통해 일본의 대미 수출을 제한하고 일본이 자국 통화를 과대평가하도록 압박했고, 1990년대 초 결국 일본은 금융 위기에 빠졌다. 미국은 2015년쯤부터 중국을 무역 파트너가 아닌 위협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의 급속한 성장을 늦추기 위해 오래된, 그러나 익숙한 (정책 결정) 매뉴얼을 다시 꺼내 들었다.”
미국 정부는 글로벌 공급망을 정치 리스크가 적은 나라들 중심으로 재편하는 프렌드쇼어링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행보가 자유무역주의 이상에서 벗어난다는 비판도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은 가전제품, 반도체 칩, 전기 자동차와 관련 부품, 친환경 에너지 기술, 핵심 광물, 디지털 기술 등을 우방국과만 교역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행보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며, 본질적으로 WTO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경제 번영에 위협이 된다.”
미국이 프렌드쇼어링 정책을 통해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나.
“이런 정책으로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려는 것은 원칙적으로 잘못됐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고 있어 미국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던 1990년대 일본과 달리 중국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맞서는 움직임을 강화할 가능성이 더 크다. 중국은 세계경제 곳곳에서 지속적인 무역 확대와 기술 발전을 지원할 파트너를 찾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정책 확대 등을 통해 다른 아시아 국가나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와 교역을 크게 늘릴 수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미국 경제의 경쟁력을 약화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았던 독일은 최근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미국의 대중 무역정책은 세계경제가 ‘포지티브섬’이 아닌 ‘제로섬’ 게임이라는 생각에 근거해 매우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유럽과 한국이 미국의 무역 게임에 휘말려서는 안 되며 중국과 정상적인 무역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 미국의 정책은 결국 미국 패권을 보호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미·중 패권 경쟁이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나.
“다른 국가가 미국 및 유럽과 기술 격차를 좁히면서 미국의 상대적 쇠퇴는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제나 군사적 갈등이 아닌 글로벌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 일본, 중국은 서로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이러한 협력은 세 나라에 매우 좋을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에도 매우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