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소매금융 업계는 자본조달 비용 상승, 디지털 은행들과 경쟁, 맞춤형 서비스에 대한 수요 급증 등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 소매금융 고객들은 복수의 선택지를 제시하는 금융 환경에 익숙해져 있는 데다 다양한 플랫폼을 오가며 계좌를 이동하고 예금을 분산하기가 더욱 간편해지고 있어,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게다가 임베디드 금융과 오픈뱅킹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고객들이 알고 있는 소매금융의 면모가 완전히 변하고 있다.
2023년 초 미국 지역 은행들의 연이은 파산으로 글로벌 은행권이 한바탕 소요를 겪은 후 예금 유출 양상은 안정화됐지만, 당시 은행권을 뒤흔든 위험 요인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금리가 상승하면서 신규 대출과 재융자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고, 오토론, 신용카드, 소비자 대출 등의 연체율도 상승하고 있다. 이에 캐나다 5대 은행이 올해 1분기 대손충당금을 전년 대비 13배나 늘리는 등 전 세계 은행은 채무 불이행 증가에 대비해 완충장치를 강화하고 있다. 또 전 세계 은행이 2024년까지 대출 기준을 강화하고, 나아가 서브프라임 오토론과 위험도 높은 홈에쿼티론을 매각 정리하는 등 대차대조표 강화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
글로벌 소매금융 업계는 2024년 이처럼 다양한 도전 과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고객에게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하려면 사업 모델을 어떻게 재편해야 하는가. 고객 충성도를 끌어올리고 거래 시점 이후에도 고객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가.
예금 유치 경쟁은 지속된다
은행이 예금 유치에 드는 비용은 갈수록 증가할 것이다. 실제 미국 은행들의 이자부 예금의 비용 부담은 2023년 상반기 말 기준 2.1%로, 1년 전 0.2%에 비해 무려 1.9%포인트 상승했다. 이러한 상승세는 미국 지역 은행 줄파산 이후 예금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가속화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소매금융 업계는 정책금리가 하락하더라도 예금 비용을 낮추기 위해 고전해야 할 것이다.
소매금융 고객들은 더 높은 예금이자를 요구하고 있으며, 상당수는 이미 금리가 더 높은 정기예금으로 갈아탔다. 일부 미국 증권사는 고객의 자산 포트폴리오에 나타나지 않는 유보 현금을 유인하기 위해 은행 예금보다 금리가 높은 신규 서비스를 제시하고 있다. 디지털 뱅킹도 예금 유치 경쟁을 과열하는 요인이다.
한편 최근 은행 파산 사태로 규모와 안정성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금융 산업 내 인수합병(M&A)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다. 향후 M&A 열풍 속에서 예금 고착도는 높지만 대출 플랫폼이 약한 은행들이 매력적인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출 둔화 속 미상환 증가 위험
금리 상승,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가계 재정 악화 등으로 은행의 대출 사업이 압박받고 있다. 미상환 건수가 증가할 조짐을 보이고 대손충당금 부담이 수익성에 미치는 악영향이 커지고 있다.
미국 은행들은 대출 증가세가 둔화함과 동시에 소비자 대출 채무 불이행이 증가하는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지난 1분기 신규 주택담보대출 건수가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일부 은행은 주택 담보대출에 대한 익스포저를 줄이기 시작했다. 유럽도 주택 담보대출 및 소비자 대출 수요가 약화할 것으로 보이는 한편 신용 여건이 경색되며 소비지출과 경제성장이 제약받을 수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또한 대출 수요가 위축돼 상당수 은행이 새로운 수익원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 본토 은행들은 고령층 고객이 대출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자녀가 대출을 상속받는 릴레이 대출이나 결혼하지 않은 커플에게 공동 대출을 시행하는 등 방식으로 주택 담보대출 수요를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각국 정부와 규제 당국들도 은행 대출 관행 감시를 강화하고, 은행들의 소비자 지원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주택 담보대출 승인 마감 단계에서 대출자에게 불합리하게 부과되는 ‘쓰레기 수수료’ 단속에 초점을 맞추고, 주택 담보대출 및 오토론 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은행은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부채 관리를 도울 수 있는 금융 자문 기반 모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신용 위험 모델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임대료 지급 이력, 긱 경제 소득, 공과금 납부 이력 등 대체 데이터를 활용하면, 신용 이력이 없어 신용 사각지대에 놓인 소비자를 수용할 수 있다.
고객 자문 서비스가 생존 열쇠
글로벌 은행들은 이제 브랜드 인지도에만 의존해서는 고객 기반을 확대할 수 없다. 고객 충성도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고객이 누릴 수 있는 지원과 선택지를 강화해 고객 관계를 고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은행들은 소비자가 금융 니즈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찾는 허브’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은행 자문 서비스의 도움을 받은 고객은 그에 상응하는 충성도를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조사 결과 은행 재무 자문을 받은 응답자 중 약 절반이 해당 은행에서 신규 계좌를 개설했다.
은행들은 또한 고객 경험 맞춤화 및 고객 생애주기 가치 심화를 위해 고객 데이터를 어디에 활용해야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고객 맞춤화 서비스는 글로벌 은행 리더들의 우선순위가 된 지 꽤 오래다. 하지만 레거시 시스템, 개인 정보 보호 침해 우려, 데이터 부족, 데이터 수집 능력 부족 등으로 인해 큰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은행들은 거래 데이터를 분석해 다각도의 고객 접점에서 예측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는 첨단 모델링 도구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또한 첨단 인공지능(AI) 역량을 활용해 더욱 풍부한 맞춤형 자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결국 은행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는 고객 개개인을 하나의 세그먼트로 보는 단계까지 초맞춤화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은행들은 또한 상품 중심 사업 모델을 고객 중심 모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금융 산업 내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데다, 다른 영역에서 경험한 서비스를 소매금융에서도 기대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 은행 리더들은 비금융기관들의 고객 소통 방식을 배워, 보다 차별화 또는 총체적 방식으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일례로 미국 노스웨스턴 뮤추얼은 데이팅 앱을 벤치마킹해 고객 개개인의 니즈를 가장 잘 충족시켜줄 수 있는 금융 컨설턴트를 연결해 주는 ‘매치메이킹 알고리즘’을 설계했다.
기술 발전과 혁신 십분 활용하라
은행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위험을 축소하고, 운영을 간소화하고, 새로운 사기 방지 안전장치를 제공함으로써 고객과 신뢰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세계 각지에서 금융 정보에 대한 개인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오픈뱅킹 이니셔티브가 동력을 얻고 있다. 미국, 유럽,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등 규제 당국과 중앙은행들이 데이터 공유를 가로막는 장벽을 허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은행들은 디지털 신원 발행 및 인증을 위한 새로운 방법도 개발해야 한다. 또 디지털 지갑의 도입이 확대되면서 안전장치의 필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북유럽과 캐나다에서는 상당수 금융기관이 ‘뱅크ID’와 ‘인터랙 베리파이드’ 시스템을 개발해, 디지털 경제의 신뢰 기관으로 거듭난 바 있다. 사용자 개인의 터치스크린, 모바일 앱, 자판 사용 습관 등을 분석하는 생체 인식 기술도 금융 사기와 싸움에서 갈수록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단기적으로는 생성 AI(Generative AI)가 위험 대응, 컴플라이언스, 운영 효율화 등 많은 이점을 가져다줄 것이다. 반면 AI는 새로운 윤리 및 보안 리스크도 수반하기 때문에, 상당수 금융기관이 여전히 고객 애플리케이션에 AI를 내재화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이 생성 AI를 안전하게 활용하는 법을 터득하면, 챗봇이 고객과 더욱 디테일하고 이해하기 쉬운 대화를 할 수 있고, 사용자 개인의 콘텐츠 소비 습관에 맞춘 맞춤형 마케팅 캠페인을 펼칠 수도 있으며, 주택 담보대출 시행 절차를 간소화해 대기시간을 줄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