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명품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수장 베르나르 아르노 총괄회장이 3월 20일 서울 성동구에 있는 ‘디올 성수’를 방문하고 있다. 사진 뉴스1
세계 최대 명품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수장 베르나르 아르노 총괄회장이 3월 20일 서울 성동구에 있는 ‘디올 성수’를 방문하고 있다. 사진 뉴스1

코로나19 시기 급속한 온라인 시장의 성장과 사회적 거리 두기 등으로 오프라인 상권은 심각한 침체를 겪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4월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전히 해제되면서 민간 소비가 증가하며 공실이 감소하고 상당 부분 매출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고금리·고물가로 인한 경기침체 및 실질소득 하락이 현실화하면서 코로나19 이전 시기로의 상권 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소비계층인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의 트렌드에 부합하는 오프라인 상권에는 사람이 몰리고, ‘돈맥’이 흐를 것이며, 잘되는 상권은 더욱 부흥하면서 상권 간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다. 향후 상권에 영향을 줄 소비 및 라이프 트렌드를 점검해 보고, 서울 소재 ‘톱(top)3 상권’을 예상해 본다.

이선호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차장
감정평가사, 전 DL이앤씨· 
이화자산운용 근무
이선호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차장
감정평가사, 전 DL이앤씨· 이화자산운용 근무

상권에 영향을 줄 소비 및 라이프 트렌드

온라인과 차별화할 수 있는 오프라인의 장점은 무엇일까. 바로 ‘공간감’과 ‘체험’이다. 집에 있는 엄지족을 밖으로 유인하려면, 그들에게 ‘경험적 소비‘를 제공해야 한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매장을 찾아오게 하려면 그들의 소비에 재미와 문화를 입혀야 한다.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풍성하면 소비자는 체류 시간을 늘리고 기꺼이 지갑을 열 것이다. 그러려면 상권 내 ‘푸드 앤드 비버리지(F&B)’ ‘패션(Fashion)’ ‘컬처(Culture)’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등의 다양한 업종이 어우러진 복합 상권이어야 할 것이다.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 소장은 그의 저서 ‘라이프 트렌드 2024’에서 내년도 가장 중요한 트렌드로 ‘올드 머니(OLD MONEY·대대로 부를 쌓아온 부자)’를 주목했다. 김 소장은 경기침체와 부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에서 막연히 부자 되기를 꿈꾸기보다 올드 머니 흉내 내기로 욕망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했다. 결국 MZ 세대의 올드 머니에 대한 동경과 그들을 닮고 싶은 욕구는 그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 가서 소비로 표출될 것이다. 대기업 재벌, 셀럽(celeb·유명 인사) 등이 많이 사는 부촌(富村) 근처의 조용한 럭셔리를 추구하는 상권에 대기업,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 팝업스토어 등의 핫플레이스가 계속 생길 가능성이 크다.

엔데믹(endemic·감염병 주기적 유행) 이후, 외국인 관광객 수가 본격적으로 늘고 있지만, 국내 면세점 매출은 오히려 줄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 패턴이 변경되면서 면세점 객단가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쇼핑을 위한 관광이 아닌, 본연의 관광 목적인 보고 먹고 즐기는 것에 돈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한국적인 음식, 패션, 팝 등을 아우르는 K컬처(K-culture)를 느끼기 좋은 상권에 관광객이 늘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상권 근처에 자연환경(산·강·숲 등)이 어우러져 있다면 관광 코스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부촌 근처의 복합 상권이면서 K컬처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서울 소재 상권은 어디일까.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우측 핵심 상권에 위치한 ‘압구정 커머스빌딩’ 전경.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업체 카사가 투자 자금을 공모로 조달한 이 빌딩에는 공모 기간(9월 6~8일)에 167억원이 모여 완판을 기록했다. 첫날부터 공모 전체 금액의 절반이 넘는 96억원 이상이 모여 압구정 상권에 대한 뜨거운 투자 열기를 확인했다. 사진 카사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우측 핵심 상권에 위치한 ‘압구정 커머스빌딩’ 전경.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업체 카사가 투자 자금을 공모로 조달한 이 빌딩에는 공모 기간(9월 6~8일)에 167억원이 모여 완판을 기록했다. 첫날부터 공모 전체 금액의 절반이 넘는 96억원 이상이 모여 압구정 상권에 대한 뜨거운 투자 열기를 확인했다. 사진 카사

톱3 상권은 압구정, 한남, 성수

‘원픽’을 뽑자면, 단연코 압구정 상권이다. 강남 부촌의 핵심인 압구정동과 청담동을 배후 지역으로 삼고 있고, 올드 머니가 압구정 아파트와 청담 지역 하이엔드 주택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압구정 아파트를 지나면 한강이 근처고, 최근 핫플레이스가 가장 많은 도산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1990년대 ‘압구정 오렌지족’으로 대변되는 올드 머니의 놀이터이자 패션 특구로 지정될 만큼 국내외 명품 패션숍 및 플래그십 스토어가 즐비한 곳으로,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핫(hot)하고 힙(hip)한 파인 다이닝(fine dining·만족할 만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좋은 식당)’도 많이 생겼다.

압구정 상권에서 한강을 건너면 한남동과 성수동 상권이 위치한다. 먼저 한남동은 나인원 한남, 한남 더힐을 위시하여 한남뉴타운을 배후 지역으로 삼는 원조 부촌이다. 남산자락과 한강 사이에 위치한 한남동 상권은 올드 머니가 향유하는 예술의 중심지답게 문화 체험이 가능한 갤러리(미술관·전시장 등) 공간이 많고,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블루스퀘어, 리움 미술관, 디뮤지엄 및 세계 유수의 갤러리들이 문화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문화·예술 시설 등을 경험하고자 하는 MZ 세대와 외국인 관광객들이 증가세에 있고, 이들을 겨냥한 다수의 트렌디한 F&B가 집결해 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압구정동과 마주 보고 있는 한국의 브루클린, 성수동은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부상한 신흥 상권이다. 서울숲 주변으로 갤러리아포레, 트리마제, 아크로 서울포레스트 등 초고가 아파트가 자리를 잡으면서 신흥 부촌이 형성되었고, 향후 성수전략정비구역이 개발되면 올드 머니들의 신흥 주거지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MZ 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대기업, 플랫폼,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대거 사옥을 이전했거나 계획 중이고, 팝업스토어의 성지답게 성수역 및 연무장길을 중심으로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신사업을 테스트하거나 브랜드를 홍보하고 있다. 타 상권 대비 K팝과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적 ‘힙함’과 붉은 벽돌 및 팩토리 공간의 도시 재생적, 예술적 감성이 융화되어 풍부한 콘텐츠를 연출함으로써 관광자원으로 매력도 높다.

상권 확장 및 쇠퇴, 경쟁에도 관심을

상권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인접 상권끼리 대체·경쟁 관계를 거치면서 확장과 쇠퇴를 반복한다. 압구정 상권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2000년대 들어 가로수길에 상권을 뺏겼고,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왔다. 한남동 상권은 최초 이태원으로부터 발전한 파생 상권으로, 코로나19 및 핼러윈 참사로 이태원 상권이 주춤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성수동 상권은 서울 오피스 4대 권역으로의 편입 및 송정동 상권과의 연결로 상권 확대가 기대된다. 상권이 확장되면서 상권 벨트가 형성되기도 하지만, 상권 벨트 내에서 대체 및 경쟁 관계를 형성하며 장기간에 걸쳐 번성과 쇠락을 반복하기도 한다.

향후 트렌드로 예상해 본 톱3 상권(압구정·한남·성수)도 상호 직선거리 3㎞밖에 안 될 정도로 한강을 중심에 두고 트라이앵글 권역을 만들고 있다. 상당 기간 세 상권이 메가 상권 벨트를 형성하면서 같이 번영할 것으로 예상되나 장기간에 걸쳐 트렌드가 바뀌고, 인근에 신흥 상권이 생기면 상권 간 새로운 역학 관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10년 전 성수동 상권이 강남을 위협할 만큼 커질 것으로 누가 예상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