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토레이(왼쪽)와 KFC. 사진 셔터스톡
게토레이(왼쪽)와 KFC. 사진 셔터스톡

‘ade’는 ‘달콤한 음료’라는 뜻이다. 레몬을 주원료로 설탕 넣고 물 넣으면 ‘lemon+ade’, 그래서 레모네이드가 된다. 게토레이(Gatorade)라는 스포츠 음료가 있다. 이 음료를 한국에 들여온 제일제당이 상표로 게토레이를 등록했다. 덕분에 스토리는 잘 드러나지 않게 됐다. 게토레이는 ‘Gator+ade’의 의미다. ‘Gator’는 ‘alligator’, 즉 악어의 약칭이다. 악어를 재료로 하거나 악어가 마시는 음료라는 뜻이다. 미국의 한 대학 연구팀이 학교 미식 축구팀을 위해 1965년에 개발한 음료다. 이 스포츠 음료는 물보다 10배 이상 빠른 흡수 와 에너지 공급으로 선수들을 덜 지치게 만드는 효과를 보였다. 1967년에 이 음료수를 마신 그 대학의 미식축구팀은 역전승의 신화를 만들어 냈다. 플로리다대 미식축구팀의 이야기다. 그 미식축구팀의 이름은 ‘플로리다 앨리게이터스(Florida Alligators)’였다. 보통 약자를 써서 ‘플로리다 게이터스’로 불렸다. 그래서 악어가 마시는 음료 ‘Gatorade’가 이름이 됐다.

몇 단어로 구성된 용어의 주요 단어 첫 글자만 따서 만든 용어를 두문자어(頭文字語) 혹은 두문어라고 한다. 바로 애크로님(acronym)이다. FBI는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연방수사국)’의 약자다. NASA는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국립항공우주국)’의 약자다. FBI나 TGIF처럼 철자를 하나 하나 그대로 읽는 것은 이니셜리즘(initialism), NASA나 AIDS처럼 한 단어처럼 발음하는 것만을 애크로님이라고 한다.

원래 한 단어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발음되기에 줄임말인지 모르는 말도 꽤 있다. ‘레이저(LASER)’가 거기에 해당한다. 레이저는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로 ‘복사의 유도 방출 과정에 의한 빛의 증폭’의 줄임말이다. 스쿠버 다이빙, 스킨 스쿠버 등으로 쓰이는 ‘스쿠버(SCUBA)’란 말도 사실 두문자어다. ‘Self-Contained Underwater Breathing Apparatus’로 ‘자급식 수중 호흡 장치’를 줄인 말이다.

이니셜리즘 브랜드 KFC가 탄생한 사연

한화는 ‘한국화약’의 줄임말이다. 1952년 부산에서 한국화약주식회사로 창립한 게 그룹의 뿌리다. 화약을 통해 성장했지만, 주력 사업이 화약에서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면서 화약이라는 제한적 인식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은 충분했을 것이다. 1990년대 초반 한국화약그룹을 ‘Korea Explosive Group’이라 했더니 중국에서 그걸 번역해서 ‘남조선 폭파 집단’이라고 소개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92년에 한화로 이름을 바꿨다.

KFC는 ‘Kentucky Fried Chicken’의 약자다. 1930년대에 미국 켄터키주에 사는 샌더스 대령(Colonel Sanders)이 창업했다. 1991년, 약칭인 KFC로 기업명을 변경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1984년에는 당연히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이었고 당시 젊은이들은 이걸 줄여서 ‘켄치’라고 불렀다. Kentucky Fried Chicken에서 KFC로 바꾼 이유는 ‘Fried’가 주는 건강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에서 케이·에프·시로 바뀐다고 ‘프라이드’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느낌은 완전히 달라진다.

KTX는 ‘Korea Train eXpress’의 약자 브랜드다. 1990년대 중·후반 필자도 참여한 고속철도 브랜딩 프로젝트 결과로 만들어진 브랜드 네임이다. 당시 고속철도건설공단에서 내부적으로 정한 이름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KTX로 정해졌다. 처음에는 ‘K.E.T(Korea Express Train)’도 제안됐다. ‘케이·이·티’로 읽히지 않고 ‘캣’으로 읽힐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express에서 X를 따 왔다. 문법적으로는 KXT가 돼야 하지만, 브랜드 네임은 청음도 중요하다. KXT라고 발음할 때와 KTX라고 발음할 때 어느 쪽이 속도감과 무게감이 더 있는지로 판단한 결과, 최종적으로 결정된 안이 KTX였다. 이후 KTX는 GTX, ITX처럼 철도 브랜드의 한 포맷이 됐다.

일본에는 일본어 발음을 영어 머리글자로 표기하기도 한다. NHK는 일본의 공영방송으로, ‘일본방송협회’를 뜻한다. 영어로 하면 ‘Japan Broadcasting Corporation’이니까 영어 약자는 ‘JBC’가 돼야 하는데 왜 NHK일까? ‘일본방송협회(日本放送協会)’를 일본어 발음으로 읽으면, ‘니혼 호소 쿄카이(Nippon Hoso Kyokai)’가 된다. 이 머리글자를 따서 NHK라고 한 것이다. DHC도 비슷한 경우다. DHC는 화장품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이 기업은 화장품업이 아니라 대학 등 교육기관 연구소에 번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로 시작했다. 그래서 DHC는 ‘대학번역센터(大学翻訳センター)’를 일본어 발음으로 읽은 ‘다이가쿠 혼야쿠 센타’의 앞 글자를 딴 줄임말이다.

아디다스(왼쪽)와 푸마. 사진 셔터스톡
아디다스(왼쪽)와 푸마. 사진 셔터스톡

애크로님 브랜드…푸마와 갈라선 아디다스

아식스(ASICS)는 1949년 일본 고베에서 오니츠카 쇼카이로 시작했다. 이후 사명을 오니츠카 타이거로 변경했고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오니츠카 제품을 수입, 미국에서 유통했던 회사가 블루 리본 스포츠였다. 바로 나이키의 전신이다. 1977년 다른 스포츠용품 브랜드와 합병하면서 현재의 아식스가 태어났다. ASICS는 라틴어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Anima Sana In Corpore Sano)’라는 말의 머리글자를 따온 것이다. 영어 표현인 ‘Sound Mind Sound Body’를 슬로건으로 쓰고 있다. 오니츠카 타이거는 2002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다시 론칭했다.

코오롱(KOLON)도 애크로님 브랜드다. 코오롱은 섬유·원단·소재·패션 분야에서 국내 최고 기업이다. 그룹명 코오롱은 (주)코오롱의 전신인 ‘한국나이론’의 영어 표기인 ‘Korea nylon’을 줄인 것이다. LG는 ‘Lucky Goldstar’의 약자다. 그룹의 모태가 된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와 금성사(골드스타)가 결합한 영어 표기다. 우리나라 사람에게야 럭키와 골드스타가 의미 있겠지만, 외국인에겐 큰 감흥을 주진 못한다. 그래서 기업 슬로건을 ‘Life’s Good’으로 쓰기 시작했고 그것의 약자가 LG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들고 있다. 슬기로운 커뮤니케이션이다.

아디다스(ADIDAS)도 애크로님 브랜드다. 1924년 7월 ‘다슬러 형제 운동화 공장’으로 창립했고, 1949년 8월 아디다스로 기업명이 바뀌게 된다. 다슬러 집안의 아돌프와 루돌프 두 형제가 시작했다. 1925년, 아돌프는 스파이크를 박은 러닝화와 가죽 징을 박은 축구화를 개발해 특허권을 확보한다. 이후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과 1932년 LA 올림픽에서 다슬러의 러닝화를 신은 선수들이 메달을 따면서 유명해졌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독일 국가대표 선수 대부분이 다슬러가 만든 운동화를 신었다. 당시 최고의 육상 스타인 미국의 제시 오언스가 다슬러 러닝화를 신고 남자 100m, 200m, 400m 계주와 멀리뛰기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1939년까지 다슬러 형제는 매년 20만 켤레 이상의 운동화를 판매했다.

승승장구하던 형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비를 맞게 된다. 종전 후 형제는 남보다 더 사납게 결별한다. 형제간의 고발 소동 끝에 형 루돌프 다슬러는 독립했다. 그때 루돌프 다슬러가 만든 브랜드가 ‘푸마(Puma)’다. 동생 아돌프 다슬러는 자신의 이름, 아돌프의 애칭인 아디(Adi)에 성 다슬러(Dassler)의 앞부분을 따서 ‘아디다스’를 론칭한다. 1949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