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 서방 당국이 제2의 ①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를 막기 위해 은행 자본 규제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금융 당국이 자산 1000억달러(약 131조1000억원) 이상인 은행을 대상으로 ② 자기자본비율(총자본에 대한 자기자본 구성비를 나타내는 비율)을 16%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은행이 겪는 ‘예금 인출→자산 매각→은행 수익성 악화→예금 인출’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유동자산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끊겠다는 의도다. 월스트리트저널(WSJ), CNBC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미국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예금보험공사(FDIC), 통화감독청(OCC)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은행 자본 규제 강화안을 발표했다. 새로운 규제안은 11월 30일(이하 현지시각)까지 여론 수렴 기간을 거친다. 그 후 규제안이 승인되면 일부 규정은 이르면 2025년 7월부터 적용되며, 은행은 늦어도 2028년 7월까지 새로운 기준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자기자본비율을 올리면 은행의 자본 건전성과 유동성이 향상되겠지만, 반대로 은행은 이 기준을 충족시키고자 다른 영업 활동을 축소해야 하는 탓에 수익성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규제가) 많은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규제의 합리성 여부는 어떠한 도구가 어떤 상황에서 효과를 잃고 비생산적이 되는지를 아는 데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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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규제 당국은 올해 3월 발생한 은행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자산이) 1000억달러가 넘는 은행을 대상으로 더 높은 최소 자기자본 규정을 부과하는 것을 고려했다. 그러나 이는 최근 위험 감수 행위가 소규모 은행에서 나타났다는 점을 고려할 때 상당히 의아한 조치일 수밖에 없다. 

은행이 특정 유가증권의 미실현 손익을 자기자본비율에 포함해야 하는 요건처럼 제안된 변경 사항 중 일부는 이미 오랫동안 필요했다. 대체로 많은 대형 은행의 최고경영자(CEO)는 이를 반가워하지 않는다.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더욱 엄격한 자본 규제를 제안할 경우 대출 기관이 시장에서 철수해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단순히 이기적인 은행가들의 반란이라고 치부하기 전에 우리는 은행 자본의 역할과 규제 당국이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
전 인도 중앙은행 총재,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
전 인도 중앙은행 총재,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주식처럼 인내심이 필요한 장기 자금은 은행 자본으로 간주된다. 요구불예금(demand deposits·예치 금액, 예치 기간, 입출금 횟수 등에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예금)과 달리, 단기간에 돈이 빠져나갈 일이 없다. 은행에서 (예금 보호)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예금자들이 서둘러 돈을 인출해 은행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면 자본이 많아질 경우, 뱅크런 가능성이 줄어들어 은행 시스템은 안정화될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문제는 이보다 더욱 복잡하다. 명백하게 볼 수 있는 부분은 자본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늘어나게 되면 무분별한 차입(레버리지)은 줄어든다는 점이다. 또한 은행의 손실이 예금자에게 전달되기도 전에 작은 사고에도 견딜 수 있는 손실 흡수 기능을 할 수 있다. 더욱이 금융 당국은 은행 자본이 약화되는 것을 발견했을 때 대응할 시간을 갖도록 만든다. 금융 당국도 은행이 활동 위험에 비례해서 자본을 보유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에 자본은 오히려 위험 감수를 위한 일종의 큰 예산 역할을 하기도 한다. 

더욱이 최소 자본 규정은 일종의 ‘입장권(entry ticket)’ 역할을 한다. 이런 의미에서 투자자에게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 은행만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 또한 은행은 일반적으로 신규 주식 발행이 아닌 이익 잉여금을 통해 자본을 창출한다. 때문에 자본 규제는 수익성 있는 은행이 성장하고, 손실 은행이 억제되도록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은행의 장부 자본 수준은 대중이 은행의 성과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이는 규제론자의 입장에선 은행의 높은 최소 자본 규정을 주장하기 위한 좋은 명분이 될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에는 자산의 2%에 불과한 낮은 자기자본비율로 은행이 운영됐기 때문에 언제라도 사고가 발생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반면 2023년의 은행 위기에서 다른 대형 은행이 다치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최소 자본 규정의 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 생긴다. 최소 자본 규정을 높이는 것이 과연 오늘날의 상황에 적합한지 여부다. 우리는 일단 옹호론자가 주장하는 근거 중 첫 번째를 제거할 수 있다. 자본이 은행 이사회(혹은 이사회를 대표하는 주주들)로 하여금 더 많은 책임을 지우게 하고 위험 감수를 제한할 유인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 있다. 대형 은행 이사회에서 일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사회 구성원이 경영진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카우보이처럼 날뛰는 임원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몽상에 불과하다. 

미국 연준이 낸 SVB 붕괴 관련 보고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때로는 감독자조차도 은행이 감수하고 있는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위험을 발견해도 이를 막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또한 자본 규제는 은행이 호황기에 이익을 얻기 위해 ③ ‘꼬리 위험(tail risk·일회성 사건이 자산 가치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는 리스크)’을 추구하는 행위를 제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불황기가 올 때까지는 수익이 은행으로 하여금 더 큰 위험을 감수할 여력을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더 많은 자본이 은행 경영진에게 더 많은 여유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높은 최소 자본 규정에는 상당한 상쇄 비용이 따를 수 있다. 경영진의 방치가 길어질수록, 결국 은행이 문을 닫기 전까지 투자자의 손실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예금자가 돈을 요구하며 그들의 ‘불명예로 얼룩진 통치’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면 SVB 경영진이 이사회와 감독관의 묵인하에 얼마나 더 많은 가치를 파괴했을지 생각해 보라. 사고의 조짐을 느낀 순간 파티는 끝나 버렸다. 

사실 뱅크런 사태는 은행 경영진이 과도한 위험 및 이와 관련한 극심한 불이익을 알고 신중하게 관리한다면, 유익한 효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가끔 발생하는 예금자 인출 사태는 은행의 최소 자본을 높여서 제거해야 할 ‘버그’가 아니라 시스템의 일부였을 뿐이다. 지난 3월 은행 위기 이후 미국의 연준과 재무부는 모든 무보험 예금을 효과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은행 업계에 더욱 큰 패닉이 닥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예금자를 수동적인 구경꾼 취급하며 무능한 은행 관리자의 자리를 지켜준 꼴이 됐다.

은행의 자본이 너무 적어 작은 손실과 사고에도 패닉과 훨씬 더 큰 손실을 초래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특정 수준을 넘어서면 더 많은 자본이 잘못된 관리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결국, 다이먼이 경고한 대로 최소 자본 규정이 높아지면 자기자본비율이 높아져 은행 성장에 필요한 자금 조달 능력이 저해될 수 있다. 

이 같은 위험은 단순히 가설에만 그치지 않는다. 현재 미국 규제 당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대형 은행이 높은 최소 자본 규정 때문에 기피하려 했던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소규모 은행이 떠안고 있다는 점이다. 소규모 기관이 앞으로 발생할 대출 손실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규제의 합리성 여부는 어떠한 도구가 어떤 상황에서 효과를 잃고 비생산적이 되는지를 아는 데 달려있다. (규제가) 많은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3월 10일 미국에서 자산 규모 16위(2118억달러)인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한 사건. SVB는 최근 IT 기술 산업의 호황으로 기술 기업으로부터 예금이 크게 증가했지만 이에 비례해서 대출이 늘어나지 않자 장기국채 투자를 늘렸다. 하지만 연준이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하자 미국 국채와 정부보증채 등에 투자한 SVB의 보유 자산 가격이 급락했다. 주가 하락과 뱅크런이 이어져 급기야 은행업 허가가 취소되고, 파산관재인으로 연방예금보험공사가 지정됐다. 

총자산 대비 자기자본의 비율이며, 국제결제은행(BIS)이 권고한다. 통상적으로 은행은 자기자본비율이 8%, 상호저축은행 및 할부 금융사는 4%가 넘었을 때, 일반 기업의 경우 50% 이상일 때 건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드물고 극단적인 이벤트를 말한다. 확률 분포 곡선의 ‘꼬리’에 해당하며 발생 가능성은 작지만 만약 일어날 경우 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