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문’ 속 장면들. 사진 IMDB
영화 ‘더 문’ 속 장면들. 사진 IMDB

‘당신은 무엇입니까?’ 누군가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까.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물음엔 이름, 나이, 직업, 성격, 취미를 간단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부딪히면 천 길 낭떠러지 끝에 내몰린 기분이 된다. 뭐냐니, 사람에게 할 질문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창날처럼 물음표가 가슴을 찔러댄다면 어떻게 할까. ‘뭡니까, 당신은?’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샘은 성실한 직장인이다.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 샘도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운동하고 샤워를 마친 뒤 커피를 마시고 하루를 시작한다. 현장에 이상이 없는지 감독하고 고장 난 기기가 있으면 달려가 수리한다. 채굴된 원료를 본사로 발송하고 업무 보고서를 쓴다. 일과가 끝나면 텔레비전 앞에서 저녁을 먹고 아내가 보낸 영상 편지를 보며 그리움을 안고 잠든다.

에너지 고갈과 환경문제까지 해결한 가까운 미래, 샘의 근무지는 지구에서 약 38만5000㎞ 떨어진 달이다. 샘에겐 함께 일하는 동료가 없다. 샘 말고는 다른 생명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작업을 돕고 샘과 대화하는 건 인공지능(AI) 로봇, 거티뿐이다.

인생에서 3년은 긴 시간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통신위성 고장으로 지구와 실시간 연락마저 불가능한 상태로 1000일 넘게 혼자 살아내는 건 쉽지 않았다. 여러 번 수리를 요청했지만, 본사는 장비 복구팀을 보내주지 않았다. 샘은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2주 뒤면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의 자리를 대신할 후임자는 또 얼마나 외로울까.

“당신을 사랑해, 당신이 자랑스러워” 말하는 아내, 태어날 때 함께해 주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자라 서툰 발음으로 “아빠는 우주비행사야” 말하는 어린 딸의 영상을 샘은 보고 또 본다. 화면을 아무리 쓰다듬어도 아내의 손을 잡을 수 없고 딸아이를 안을 수 없다. 아내는 변함없이 날 사랑할까. 아이는 내가 아빠인 줄 알고 반겨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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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날짜가 다가올수록 설렘과 불안이 커진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건강도 예전 같지 않다. 눈에 헛것이 보이고 어이없는 실수로 상처도 입는다. 꿈은 혼란스럽고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는다. 곧 가족을 만날 수 있으리란 희망으로 버티던 어느 날, 채굴기를 수리하러 나간 샘은 또다시 환영을 보다 사고를 낸다. 아내와 딸을 만나지도 못하고 머나먼 달에서 혼자 죽는 것인가, 샘은 정신을 잃는다. 샘은 의료실에서 눈을 뜬다. 사고로 약간의 뇌 손상을 입은 것 같다고 거티가 진단한다. 그래서인지 사고 난 기억도 없고 기운도 없다. 두 발로 걷는 것마저 아이처럼 서툴다. 어디선가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본사와 실시간 통화 중인 것 같았는데 거티는 그럴 리 있겠느냐며 영상을 보고 답변을 녹화한 것이라고 변명한다.

건강을 회복한 샘은 업무에 복귀하려 하지만 거티는 복구팀이 와서 사고 현장을 수습할 때까지 쉬라고 한다. 석연치 않은 무언가를 느끼고 달려 나간 샘은 현장에 그대로 처박혀 있는 로버(탐사차)를 발견한다. 운전석에 누군가 있다. 달에 샘 말고 다른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부상자의 헬멧을 벗긴다. 샘은 경악한다.

의료실에서 샘이 눈을 뜬다. 거울에서 걸어 나온 듯 또 한 명의 샘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직도 환영이 보이는 걸까. 어떻게 다른 사람이, 그것도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을 수 있나. 샘은 혼란스럽다. ‘저 녀석은 건강해 보이는군. 이곳에 처음 왔을 땐 나도 그랬지. 그런데 저 녀석, 뭐가 저렇게 못마땅한 거야?’ 샘은 비틀비틀 몸을 일으킨다.

건강한 샘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로버에서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내를 발견하고 기지로 안고 왔을 때 “너도 샘, 그도 샘”이라고 거티가 말했다. 파견 나온 지 1주일 된 샘과 3년간 근무한 샘이 마주 본다. “넌 나의 클론이군.” 이것저것 따지던 선배 샘이 성급하게 우쭐댄다. 그가 본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새내기 샘은 우울해진다.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난다. ‘나는 누군가의 복제품에 불과한가?’

“난 클론이야?” 후배 샘의 이야기를 듣고 뒤늦게 의문이 생긴 샘이 묻는다. 거티는 담담히 사실을 말해준다. 건강한 샘도, 건강을 잃은 샘도 기억을 이식받은 클론, 복제인간이다. 그들의 수명은 3년, 즉 계약 기간이 끝나면 지구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통신위성이 고장 났다는 것도,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도 모두 거짓이다. 재활용 불가능한 쓰레기는 소각 처분될 뿐이다.

그동안 쌓인 외로움보다 더 깊고 묵직한 고독이 엄습한다. 이미 여러 명의 샘이 있었고 앞으로도 많은 샘이 존재할 터였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이용 가치가 사라진 샘은 주저앉는다. ‘나는 무엇인가?’ 새로 태어난 샘도 정체성에 치명상을 입은 사춘기 소년처럼 절박하게 답을 찾는다. 그들은 비밀의 방을 발견한다. 유효기간 3년짜리 소모품, 수백 년 동안 달에서 일하게 될 수많은 샘이 거기 누워있었다.

본사가 보낸 복구팀이 두 명의 샘을 발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명이 다한 샘, 비밀을 알아버린 샘을 ‘처리’하면서 연민이나 죄책감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 고작 3년짜리 인간 복제품이 사랑과 희망, 외로움과 절망, 고통과 죽음을 알 리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 느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샘을 달에 혼자 버려둘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 중요한 건 채굴기 고장으로 줄어든 수확량을 회복하는 것뿐이다.

샘은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그리운 가족을 만나길 소원한다. 또 다른 샘은 3년이든 3일이든, 복제품이 아닌 사람으로 살겠다고 결심한다. 샘과 샘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를 추억하며 함께 웃는다. 내일 죽는다 해도 후회는 없다. 비록 다른 사람의 것이라 해도 그 기억을 뿌리 삼아 태어났다면, 사랑하고 경험하고 배우며 성장했다면, 샘과 샘은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당신은 무엇인가? 당신은 정말 당신인가? 당신은 당신의 본체라고 확신할 수 있나? 그러나 본체가 아니라 한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며 살고 있다면 당신의 가치가 조금이라도 손상될 이유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