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 시상식이다. 지난 몇 년간 방탄소년단(BTS)이 수상 후보에 오르느냐 마느냐, 수상 하느냐 마느냐로 언론을 달궜던 이벤트다. 한국 시상식들은 행사가 개최될 즈음 후보 발표, 시상식 소개를 하는 역할에 그치지만, 그래미는 미디어 기능도 한다. 자체 홈페이지에서 여러 음악계 소식과 관련된 읽을거리를 서비스한다. 

최근 그래미 홈페이지에 올라온 흥미로운 칼럼이 있다. ‘당신이 들어야 할 한국 록 아티스트 10: 크라잉넛, 실리카겔, 잔나비 등등’, 말 그대로 한국의 록 뮤지션 10팀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 칼럼은 “한국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풍부한 록의 역사를 가졌다. 무시해선 안 되는 깊고 다양한 록 신이다. 한국 록이 낯설다면, 탄탄한 기성 밴드와 떠오르는 팀 10개에 대한 글을 읽고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라”는 서문으로 시작한다. 한국 록의 역사와 현황에 대한 간단한 소개 후, 언급되는 10팀의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크라잉넛, 자우림, 잔나비, 터치드, 설, 나상현밴드, 유다빈밴드, 실리카겔, 루시, 너드커넥션.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 한국 대중
음악상 선정위원, MBC ‘나는 
가수다’, EBS ‘스페이스 공감’기획 및 자문위원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 한국 대중 음악상 선정위원, MBC ‘나는 가수다’, EBS ‘스페이스 공감’기획 및 자문위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공통점이 눈에 띄지 않는다. 록 순수주의자라면 이게 왜 록으로 분류되는지 분개할 만한 팀도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라이브를 통해 인지도를 쌓아온 팀도 있고, 큰 활동 없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팀도 있다. 자체 히트곡이 있는 팀이 있는 반면, 리메이크곡이 더 유명한 팀도 있다. 록의 본고장 미국에서 뽑은 리스트라고 하기엔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보통 이런 리스트는 여러 명의 전문 필자가 투표 및 논의를 거쳐 선정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전체 리스트가 납득되지는 않더라도 대략의 흐름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래미의 10팀은 한 명의 필자가 작성하고 집필했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프리랜서 칼럼니스트다. ‘그래미’ ‘보그’ ‘빌보드’ 등에 한국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여러 칼럼을 기고하는 이다. 한국식으로 따지면 ‘대중음악평론가’보다는 ‘대중문화평론가’라는 직함으로 활동한다고 볼 수 있다. 아무래도 그가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고, 현장보다는 미국에서도 접할 수 있는 미디어로 한국 음악을 접하는 상황이니 칼럼에 대한 반응이 현지 온도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칼럼, 아니 이 기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진 건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왜 다른 장르가 아니라 록일까’라는 질문, 또 하나는 ‘이 칼럼의 의미’다. 

10월 23일 그래미에 소개된 한국 록 밴드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실리카겔, 루시, 유다빈밴드, 잔나비, 크라잉넛, 나상현밴드. 가운데는 터치드. 사진 그래미
10월 23일 그래미에 소개된 한국 록 밴드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실리카겔, 루시, 유다빈밴드, 잔나비, 크라잉넛, 나상현밴드. 가운데는 터치드. 사진 그래미

우선 왜 록일까. 한국에서 록은 비주류 장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2023 음악산업백서’를 보면 구체적인 실태를 알 수 있다. 성별, 지역별, 연령별로 ‘즐겨 듣는 음악 장르’를 조사한 통계(복수 응답)에 따르면, 발라드를 가장 즐겨 듣는다는 응답이 53.3%, 댄스·아이돌을 즐겨 듣는다는 응답이 40.8%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 뒤를 OST, 트로트가 잇는 가운데 록·메탈을 좋아한다고 응답한 비중은 7%였다. 록과 많은 부분에서 교집합을 이루는 인디 음악을 좋아한다고 응답한 비중은 7.3%였다. 랩, 클래식, R&B 등을 택한 비중이 모두 10%가 넘었으니 한국 음악 시장에서 록이 차지하는 비중을 알 수 있다. 

연령별 선호도 조사를 살펴보면 더욱 뚜렷한 하락세를 알 수 있다. 한국에서 록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인 시기는 1980년대와 1990년대였다. 그때 10대나 20대를 보냈던 세대는 지금 40·50대가 됐다. 역시나 이 설문에서 록을 선호한다는 답변은 40대와 50대가 많았다. 각각 8.9%, 8.6%다. 반면, 10대와 20대에서는 랩·힙합이 각각 18.8%, 19.6%를 차지한 반면, 록을 선택한 비중은 4.3%, 7.8%에 머물렀다. 물론 이런 경향이 한국만의 사정은 아니다. 미국 시장에서도 ‘록스타’라 불릴 수 있는 뮤지션이 좀처럼 없다. 빌보드 차트에서도 상위를 차지하는 장르는 주로 힙합이며, 록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도 대부분 20세기 스타다. 그마저도 해체했다가 재결성하는 팀이 주를 이룬다. 이쯤 되면 록은 1차 베이비붐(1955~64년생) 세대에 태어나 2차 베이비붐 세대에 절정을 이뤘던 장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미의 주된 구성원이 딱 그 세대다. 오랫동안 그래미에 붙어온 딱지인 ‘보수성’의 근원이다. 중년 백인 남성이 구성원의 다수를 이루니 언젠가부터 한 해의 음악적 경향보다는 ‘받는 놈이 계속 받는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힙합이 시장의 대세가 된 지 십여 년이 됐건만 에미넴, 칸예 웨스트, 켄드릭 라마 같은 이들은 본상(general field)이라 불리는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올해의 신인을 수상한 적이 없다. 장르 부문에서만 여러 차례 수상 경력이 있을 뿐이다. 1980년대 말 헤비메탈 부문이 신설됐을 당시, 이 상의 첫 수상자는 메탈리카가 아니라 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제스로 툴이었다. 이쯤 되면 전통이다. 최근 이 딱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성에 초점을 두고 선정단의 폭을 대폭 늘렸지만, 흐름은 단숨에 바뀌지 않는 법. 그러니 그래미가 사랑하는 장르인 록을 소개한 건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칼럼의 의미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의 한국 음악에 대한 시선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포인트다. 그래미의 이 기획에 앞서 ‘롤링 스톤’은 ‘한국 대중음악사 명곡 100(The 100 Greatest Songs in the History of Korean Pop Music)’을 지난 7월에 발표했다. 2000년대 이후 노래가 주를 이뤘지만, 신중현부터 산울림, 조용필에 이르는 ‘한국 팝 개론’에 들어갈 만한 이름들은 대부분 들어갔다. 그 전으로 거슬러 오르자면, 2019년 ‘빌보드’ 매거진의 ‘2010년대 최고의 K팝 100(The 100 Greatest K-POP Songs of the 2010’s)’도 있다. 성향은 달라도 권위 있는 미디어들이 K팝, 한국 대중음악 전체, 록순으로 우리 음악을 훑어온 것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입문한 영화 키드가 마틴 스콜세이지를 거쳐 앤디 워홀류의 예술영화로 흘러가듯, K팝으로 한국 음악의 세계에 들어온 이들에게 전하는 넥스트 스텝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씩 조금씩,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해외에서 한국 대중음악은 이렇게 퍼져나가고 있다. K팝 너머의 세계가 그 파동을 타고 더 많은 이에게 스며드는 날도 헛된 꿈은 아니리라.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2위에 올랐던 2012년 이전까지, 싸이조차 그런 센세이션을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