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취임한 대런 우즈(가운데) 엑손모빌 CEO가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2017년 1월 취임한 대런 우즈(가운데) 엑손모빌 CEO가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빅 오일(Big Oil·거대 석유기업)을 악으로 만들고 화석 연료 공급을 제한하는 것은 탄소 제로로 가는 길을 늦추고 개발도상국의 수백만 명을 빈곤에 빠뜨릴 것이다.”

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의 대런 우즈 최고경영자(CEO)가 11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서 한 주장이다. 그는 이어 “기후변화 해결책은 공급을 줄이는 데에만 너무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정부가 탄소 배출량 감축 기술에 대한 세금 혜택 제공 등을 통해 업계의 변화 역량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즈 CEO가 화석연료인 셰일가스 시추업체에 거액을 베팅하면서 에너지 분야 인수합병(M&A)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배경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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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이후 첫 엑손모빌 메가 딜 주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0월 11일(이하 현지시각) 엑손모빌은 미국 셰일오일 시추 업체인 파이어니어 내추럴 리소시스(이하 파이어니어)를 주당 253달러, 총 595억달러(약 78조3912억원)에 사들이는 데 합의했다. 파이어니어는 퇴적암층에 섞여 있는 원유·가스를 채굴하는 셰일오일 시추 업체로, 텍사스주 퍼미안 분지에서 시추량의 약 9%를 담당하는 업계 3위 업체다. 

두 기업이 결합하면 엑손모빌은 퍼미안 분지 일대에서 독보적인 셰일오일 시추 업체로 올라선다. 엑손모빌은 이곳에서 셰일오일 생산량이 두 배 늘어난 하루 130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무엇보다 지표면을 뚫고 광물을 채굴하는 노하우를 석유 외에도 다른 광물에 활용 가능하다는 강점이 생기게 된다. 

파이어니어 인수는 엑손모빌 역사상 손꼽히는 ‘빅딜’이다. 1999년 엑손과 모빌이 합병해 지금의 회사명으로 재탄생했는데, 이후 2009년 410억달러(약 54조180억원)를 들인 천연가스 기업 XTO에너지 인수를 마지막으로 빅딜 소식은 없었다. 우즈 CEO는 이날 성명에서 “두 회사를 결합하면 각각의 회사가 단독으로 셰일가스를 개발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해 낼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일각에서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는 전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우즈 CEO는 “이번 거래를 통해 파이어니어가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을 것이며, 주주 가치를 높이고 환경을 개선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어니어는 애초 순 이산화탄소 배출량 ‘제로(0)’ 목표 달성 시기를 2050년으로 잡았으나 엑손모빌은 이를 2035년으로 15년 앞당길 예정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수치상으로 보면 탈탄소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엑손모빌은 2027년까지 이산화탄소 포집 등 탄소 배출을 줄이고 저탄소 기술을 개발하는 데 연간 170억달러(약 22조3980억원)를 지출할 계획이지만, 같은 기간 화석연료 사업에 투입되는 연간 지출 규모는 80억달러(약 10조5400억원)를 웃도는 250억달러(약 32조938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脫석유 트렌드 속 ‘집념의 오일맨’

2021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기후변화와 관련해 미국의 최고 악당(Villain·빌런) 12인’에 우즈 CEO를 선정했다. 전 세계가 탄소 중립을 위해 태양광·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 전환에 나서면서 석유 시대가 머지않아 막을 내릴 것이라는 ‘피크 오일(peak oil)’ 전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와 반대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엑손모빌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가가 치솟으면서 횡재를 누린 에너지 기업 중 하나다. 지난해 557억달러(약 74조6937억원)의 영업이익을 남겨 역대 최대 기록이었던 2008년 기록(452억2000만달러)을 깼다. 

“모두가 뒤로 물러설 때 우리는 뛰어들었다. 코로나19 직후 우리가 한 투자는 (엔데믹 이후)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고 (원유) 공급이 빠듯할 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제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지난 10월 초 우즈 CEO가 회사 주요 주주를 회의실에 모아놓고 “석유 시장에 관한 인사이트는 내가 옳았다”며 한 말이다. 그는 지난 1992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2017년 CEO에 오를 때까지 약 25년 가까이 회사에서 원유 총생산량을 늘리는 부서에서 일했다. 모두가 탈탄소를 외치는 글로벌 흐름 속에서도 ‘석유 사업은 엑손모빌의 본질’이라는 신념을 굽힐 수 없었던 배경이다. 물론 그가 친환경 에너지 투자를 아예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화석연료에서 서둘러 벗어나는 것보다 친환경 기술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즈 CEO는 최근 컨설팅 업체 맥킨지와 인터뷰에서 “화석연료를 친환경적으로 태우는 방안을 추진하기 위해 탄소포집저장(CCS), 수소·바이오연료 생산 등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며 “물론 엑손모빌은 석유라는 ‘고갈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탈석유의 미래에 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엑손모빌은 실제 탈석유에 대비 지난 5월 미국 아칸소(Arkansas) 지역의 리튬 매장지를 인수 완료했다. ‘하얀 석유’라는 별명이 있는 리튬은 인근 시설에서 배터리 소재로 가공한 뒤 다른 제조 업체에 공급될 예정이다. 목표 생산량은 2030년까지 연간 10만t으로, 단숨에 세계 10대 리튬 업체로 도약할 수 있는 규모다.

Plus Point

글로벌 협력 의제 ‘넷제로’ 제동 걸리나
美·유럽 에너지 기업, 친환경 행보 속도 조절 중

“엑손모빌과 셰브론의 유전 쟁탈전이 시작됐다.” 미국 대형 석유 업체인 셰브론이 10월 23일 헤스 코퍼레이션을 인수하겠다고 밝히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보도된 내용이다. 엑손모빌에 이어 셰브론까지 경쟁사 인수합병(M&A)에 뛰어들며 10월에만 미국 석유 업계에선 1100억달러(약 148조원) 이상의 빅딜이 발생했다. 미국 대형 석유 기업들이 화석연료 수요가 견고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유럽 에너지 대기업에선 저탄소·수소 사업 부문을 축소하는 등 ‘넷제로(탄소 중립)’ 의제 실현에 대한 속도를 늦추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WSJ에 따르면, 셰브론은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이유로 미국 에너지 기업 헤스를 530억달러(약 71조150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셰브론은 이번 인수로 매장량 110억 배럴 이상으로 추정되는 가이아나 해저 광구의 지분 30%를 확보하게 됐다. WSJ는 “미국 주요 유전의 생산량이 제한적이고, 양질의 셰일 재고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미국 에너지 기업들은 M&A를 통해 몸집 불리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의 에너지 기업에서는 탈탄소 부문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셸의 경우 저탄소 솔루션 부문(LCS) 인력의 15%를 감원하고, 수소 사업 규모를 축소할 예정이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확산하는 흐름을 거스르는 결정이지만, 수익성 악화를 극복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각국이 청정에너지 공급을 장려하고 있음에도 화석연료 미래를 믿는 에너지 대기업의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전효진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