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증시 및 환율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날 코스닥지수는 전장보다 13.56포인트(1.69%) 내린 789.31로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 800선이 무너진 건 일주일 만이었다. 사진 연합뉴스
11월 10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증시 및 환율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날 코스닥지수는 전장보다 13.56포인트(1.69%) 내린 789.31로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 800선이 무너진 건 일주일 만이었다. 사진 연합뉴스

“파생상품은 위험 헤지(분산) 수단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지현준 한국투자증권 투자금융본부 본부장은 최근 서울 영등포구 한국투자증권 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파생상품은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 위험을 분산하는 데 활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총괄하는 투자금융본부는 주가연계증권(ELS), 파생결합증권(DLS) 등 파생상품을 다루는 곳이다. 지 본부장은 1998년부터 증권 업계에 몸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에선 2010년부터 파생상품 개발을 맡았다. 연세대에서 파생상품 분야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을 정도로 전문가로 통한다.

파생상품은 주식, 채권, 원자재, 환율 등 기초 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라 수익이 정해지는 금융 투자 상품이다. 기초 자산 가격 상승 또는 하락, 양방향 투자가 가능해 투자 위험을 헤지할 수 있다. 또 기초 자산을 직접 사고파는 현물 투자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 투자 규모를 키우는 레버리지도 가능하다. 그러나 파생상품은 구조가 복잡하다. 원금 손실 위험도 크기 때문에 개인투자가가 섣불리 진입하기 어렵다.

지현준 한국투자증권 투자금융본부장
연세대 경영학 박사 사진 한국투자증권
지현준 한국투자증권 투자금융본부장
연세대 경영학 박사 사진 한국투자증권

ELW 구매해 단기 리스크 분산하려는 수요 늘어

지 본부장은 “파생상품은 일반 주식 종목이나 상장지수펀드(ETF)처럼 ‘어느 시점에 무슨 상품을 사라’고 추천하기 어렵다”면서 “다만 주식 투자에 관심이 많고, 특히 큰 변동성을 감내할 수 있는 투자자에게는 위험 헤지 수단으로 파생상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고 했다. 지 본부장은 이제 막 파생상품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투자자에게는 주식워런트증권(ELW)을 추천했다. 선물·옵션보다는 더 적은 금액으로 투자할 수 있고, 일반 주식 투자보다는 더 큰 레버리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지난해부터 ELW 거래 대금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면서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지다 보니, 포트폴리오 관리 차원에서 ELW를 사 단기적으로 위험을 분산하려는 수요가 커진 것 같다”고 했다. 최근엔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풋 ELW 거래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ELW는 옵션을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든 상품이다. 미리 정해진 행사 가격으로 기초 자산을 매수(콜)하거나 매도(풋)할 수 있는 권리를 매매하는 것이다. 기초 자산 가격이 내리면 풋 옵션 가격은 오르고, 콜 옵션 가격은 하락한다. 지 본부장은 “보통 ELW는 대부분 주가 상승을 염두에 둔 콜 ELW 거래가 많았는데, 최근엔 풋 ELW 투자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ELW는 크게 지수형 ELW와 주식형 ELW로 나뉜다. 코스피지수 하락에 베팅하는 지수형 풋 ELW에 투자하면 코스피 인버스 ETF에 투자하는 것과 같은 셈이다. 개별 주식의 경우 가격 하락 시 수익을 보려면 선물·옵션·공매도 등을 활용할 수 있는데, 주식형 풋 ELW로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지 본부장은 “개별 종목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주식형 ELW의 경우 양도소득세(10%) 제외 대상”이라고 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국내 ELW 시장의 일평균 거래 대금은 1200억원 수준이다. 이 중 한국투자증권의 점유율이 90.9%에 달한다. 상장 종목 수도 한국투자증권이 2097개로, 미래에셋증권(1104개), KB증권(544개)을 크게 앞선다. ELW 투자를 하고 싶으면 금융투자협회에서 2시간 사전 교육을 받아야 한다. 500만~1500만원의 기본 예탁금도 필요하다. 그 후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등을 통해 거래할 수 있다.

ELS 기대 수익률 주식보다 채권에 가까워

개인투자자가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파생상품으로 ELS(주가연계증권)도 있다. 지 본부장은 “ELS는 기대 수익률이 채권과 주식 중 채권에 더 가까워, 장기 투자에 적합한 상품”이라고 했다. ELS는 만기일 안에 기초 자산 가격이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정해진 이자율을 지급하는 파생상품이다. 기초 자산은 주로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유럽 유로스톡스50지수, 일본 닛케이255지수, 한국 코스피200지수 등 주가지수다. 일정 조건은 대부분 기초 자산 가격이 정해진 수준(녹인 배리어) 이상일 때로 정해진다. 예를 들어 3년 내 코스피지수가 현재 수준의 80% 이상이면 약속된 수익을 가져가는 식이다. 만기 전에도 3~6개월마다 정기 평가가 진행되고, 평가일에 조건을 만족하면 수익과 함께 원금을 조기 상환한다.

다만 지 본부장은 최근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 약세로 H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한 ELS의 손실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약 3년 전 모집한 ELS 상품의 만기가 다가오는 내년 3~5월, 홍콩H지수 추종 ELS의 대규모 손실은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한 달간 홍콩H지수는 5800~6000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2021년 초 1만1000대까지 올랐던 데 비하면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지 본부장은 “현재 홍콩H지수가 많이 하락한 상태이기 때문에 내년 상반기 이후에는 홍콩H지수 추종 ELS에 진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한때 세계 1위 韓 파생상품 시장 위축…개인 이탈 막으려면

2000년대 초반 한국 파생상품 시장은 글로벌 1위 규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2010년 이른바 ‘11·11 옵션 쇼크’ 등을 거치며 규제가 까다로워졌고, 개인투자가 이탈도 가속화하며 순위도 크게 밀렸다. 

11·11 옵션 쇼크란 외국계 기관투자가가 장 마감 직전 옵션을 대규모 거래하면서 코스피지수가 순식간에 급락한 사건이다. 

지 본부장은 “금융 당국이 파생상품 시장의 투기적 수요가 사회적 문제로 번질 것을 우려해 규제를 강화했지만, 투기적 수요가 전혀 없다면 거래 비용도 높아지고 시장에 유동성이 공급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면서 “개인 전문 투자가 등에 대해서 기본 예탁금을 낮추는 등 규제가 완화된다면, 시장이 좀 더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