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 우주비행사 토머스 페스케가 미국 제약사 머크의 단백질 결정 실험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NASA
나사 우주비행사 토머스 페스케가 미국 제약사 머크의 단백질 결정 실험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NASA

세계 최초로 우주로 나간 제약(製藥) 공장이 지구로 돌아올 날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정부의 안전 규제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지만, 관료주의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런데도 전 세계에서 우주에서 약품을 만들려는 제약사들이 잇따르고 있어 우주 의학, 우주 제약 시대가 머지않아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우주 제약이 장차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의 일란 로젠코프(Ilan Rozenkopf) 파트너는 지난 8월 미국의 경제 뉴스 채널인 CNBC 인터뷰에서 “우주 제조는 제약, 반도체, 미용, 건강 제품, 식품 등에서 2030년 100억달러(약 13조1200억원) 이상의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미국 우주 기업 바르다의 우주 의약품 실험 위성인 위네바고 1호의 지상 준비 모습. 사진 바르다
미국 우주 기업 바르다의 우주 의약품 실험 위성인 위네바고 1호의 지상 준비 모습. 사진 바르다

약품 실험 위성, 9월 귀환 일정 넘겨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가 발간하는 ‘스펙트럼’은 최근 “지구 상공 500㎞에 있는 작은 우주선이 지구 귀환 허가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우주선은 미국 우주 스타트업인 바르다 스페이스 인더스트리(Varda Space Industries·이하 바르다)가 지난 6월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에 실어 발사한 위네바고(Winnebago) 1호다. 현재 시속 3만㎞에 가까운 속도로 지구를 돌고 있다.

대부분 인공위성이나 무인(無人) 우주선은 임무를 마치면 동력을 끄고 지구 중력에 끌려가 대기권과 마찰해 불탄다. 지구 궤도를 돌다가 다른 위성이나 우주선과 충돌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바르다는 이와 달리 위네바고 1호를 지구로 재진입시킬 계획이다. 그 안에 우주에서 합성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과 C형 간염 바이러스 치료제인 리토나비르(ritonavir)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바르다는 원래 9월 7일(이하 현지시각) 미국의 유타주 사막에 있는 군사기지에 위네바고 1호의 화물 캡슐을 낙하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지구 재진입 허가를 받지 못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9월 6일 안전 문제로 위네바고 1호의 지구 귀환을 불허했다. 지구 재진입 과정이 잘못됐을 때 다른 항공기나 지상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 확실하게 보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펙트럼은 같은 제원을 가진 위네바고 2호의 안전 분석 문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지상 피해는 무시할 수준이라고 밝혔다. 위네바고 2호는 내년 발사 예정이다. 스펙트럼에 따르면 모든 오작동 가능성을 다 고려해도 화물 캡슐의 지구 재진입 과정에서 예상되는 인명 피해 가능성은 1만4600분의 1로 계산됐다. 이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요구하는 1만분의 1보다 낮은 수치라고 스펙트럼은 전했다.

바르다는 위네바고 1호가 내년 1월 지구로 귀환할 수 있을 것로 기대한다. 착륙장인 유타 시험 및 훈련장(UTTR) 측이 내년 1월을 재진입 시점으로 제안했다. 바르다는 또 이번과 같은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호주 남부에 다른 착륙장도 준비하고 있다. 이곳은 미국보다 항공기 운항이나 인구 밀집 지역이 적어 안전 문제가 적다. 기업들은 민간 우주로켓 발사 증가에 맞춰 정부의 지원 인력도 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우주 기업 바르다가 지난 6월 발사한 의약품 실험 위성인 위네바고 1호 상상도. 애초 9월 지구로 귀환할 계획이었으나 정부 승인을 받지 못해 내년으로 연기됐다. 사진 바르다
미국 우주 기업 바르다가 지난 6월 발사한 의약품 실험 위성인 위네바고 1호 상상도. 애초 9월 지구로 귀환할 계획이었으나 정부 승인을 받지 못해 내년으로 연기됐다. 사진 바르다

환자 편의성 높이고, 저개발국에 도움

바르다가 지구 재진입을 시도하는 것은 우주에서 만든 약품을 지구에서 분석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서 바이러스 치료제를 합성하는 새로운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치료제 성분인 단백질은 중력이 없으면 더 균일하게 합성한다. 바르다는 우주에서 합성한 약품을 분석해 지구에서 리토나비르 제조 공정을 개선할 계획이다. 성공하면 더 좋은 약품을 훨씬 쉽고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다.

우주에서 단백질 의약품을 만드는 실험은 이미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나사에 따르면 2021년 현재 ISS에서 500건 이상 단백질 결정 성장 실험을 수행했다. 이는 우주정거장에서 수행된 실험 중 가장 큰 규모다.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제약사 머크는 2019년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미세 중력’에 “우주정거장에서 면역 항암제인 키트루다(Keytruda)의 약효 단백질을 지구보다 더 균일하고 점도가 낮게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최기혁 한국마이크로중력학회장(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미세 중력에서는 침전이나 대류가 크게 줄어 화학반응이 지상보다 완벽하게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만약 우주에서처럼 단백질 결정을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지금처럼 병원에서 몇 시간에 걸쳐 정맥으로 주입하지 않고 간단하게 피하 주사도 가능하다. 약품 정제는 물론 보관도 쉬워져 제조, 유통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단백질 입자가 균일하게 용액 속에 퍼진다면 냉장 보관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주정거장서 만든 신약도 나와

우주 제약은 성공 가능성이 크다. 최기혁 회장은 “전 세계 제약 산업은 연구에 2800억달러(약 368조9000억원), 임상시험에 800억달러(약 105조4000억원)를 쓴다”며 “우주 제약을 통해 개발 중인 화합물의 성공률이 높아지고 제품 개발 일정이 단축되면 큰 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우주 제약 생산은 잠재적으로 28억~42억달러(약 3조6890억~5조5335억원)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우주 제약은 신약까지 탄생시켰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와 쓰쿠바대는 듀센 근이영양증 치료 단백질을 우주정거장에서 합성했다. 이 병에 걸리면 근육세포를 구성하는 핵심 단백질이 합성되지 않는다. 전 세계 환자 수는 30만 명 정도인데 대부분 20대에 심장 근육 기능이 멈춰 사망한다. 일본은 우주에서 가장 효능이 좋은 단백질 결정 구조와 합성법을 확인했다. 2020년 12월부터 이 신약에 대한 마지막 임상 3상 시험이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제약사인 보령(옛 보령제약)이 우주 제약에 도전하고 있다. 미국 액시엄 스페이스(Axiom Space)는 오는 2027년까지 국제 우주정거장을 대체할 민간 우주정거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보령은 액시엄에 투자해 민간 우주정거장의 실험 공간을 확보했다. 

한림대춘천성심병원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함께 암세포 배양과 항암제 반응을 관찰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2027년 위성에 실어 우주로 보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