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
미술 칼럼니스트, 
고려대 대학원 문화 
콘텐츠 박사 수료, 소장전 ‘리틀 사치전’ 개최
정철훈 미술 칼럼니스트, 고려대 대학원 문화 콘텐츠 박사 수료, 소장전 ‘리틀 사치전’ 개최

최근 우리나라 한류가 세계 무대에 자리매김하고 있는 사실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일이다. 몇 해 전 한국 드라마로 시작한 한류(韓流)는 BTS에서부터 ‘오징어게임’까지 종횡무진 지구촌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감히 넘보지 못할 것 같은 아카데미상을 우리 배우들이 수상하는 시대가 되었다. 바야흐로 세계의 문화 중심지 대열에 한국이 우뚝 섰다.

이런 흐름은 한국 미술계도 예외가 아니다.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해외의 상업 갤러리 전시가 아닌 해외 미술관 전시는 한국 미술의 예술적 가치를 재평가받고 담론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16년 미국 시카고미술관은 한국 단색화 소장품 상설전을 통해 한국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그리고 한국 단색화의 대표적인 작가 이우환은 카셀 도큐멘타, 베르사유궁전, 구겐하임미술관, 퐁피두센터 메츠 분관 전시에 이어 프랑스 남부 아를에 이우환 전용 전시장을 개관했다. 근래 10년 사이에 한국 미술의 위상도 한류 물결을 타고, 세계 속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림 A.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 ‘The Islands’ 1961년. 사진 위키갤러리
그림 A.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 ‘The Islands’ 1961년. 사진 위키갤러리

다양한 미술적 요소들로 탄생한 ‘한국 단색화’

한국의 단색화는 1970년대 정부 주도의 국전을 거부하고, ‘아방가르드’를 표방한 일련의 전위부대 작가들에 의해 시작됐다. 이들은 당시에는 어떤 동일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미술 운동 차원의 단체를 형성하는 식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다. 각자가 자신만의 형식으로 각자 작품 활동을 했다. 이런 까닭으로 단색화 작가로 분류되는 대표적 단색화 작가조차도 자기 작품이 단색화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한국 단색화는 그동안 단색조 회화, 한국의 모노크롬 회화, 한국적 미니멀리즘, 단색주의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 단색화의 예술적 가치와 담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단색화’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단색화’라는 용어는 단순히 영어의 ‘모노크롬(monochrome)’을 한국어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모노크롬 회화는 다색화(polychrome)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단일한 색조를 바탕으로 명도와 채도에만 변화를 준다. 그리고 다양한 색채뿐만 아니라 내용, 주제, 형태를 거부한다. 기존의 형식과 질서를 추구하는 전통적 미술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것이다.

단색화, 단색조 회화, 한국의 모노크롬 회화, 한국적 미니멀리즘, 단색주의 등 한국 단색화는 그동안 왜 이렇게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어 왔을까. 바로 이 점이 한국 단색화의 정체성을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 단색화가 모노크롬에서 비롯된 용어라는 것은 이해되는데 왜 ‘한국적 미니멀리즘’ 이란 용어가 나왔을까. 한국 단색화와 미니멀리즘의 연관성은 아래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두 작품은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형태나 색채가 유사하다.

그림 B. 박서보 ‘묘법(描法) No.6-67’ 1967년. 
사진 위키갤러리
그림 B. 박서보 ‘묘법(描法) No.6-67’ 1967년. 사진 위키갤러리

그림 A는 캐나다 출신의 미국 작가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이다.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100억원을 호가하는 인기 작가다. 모노크롬과 격자무늬, 격자 속의 무수한 점은 작가의 의도대로 ‘숭고함’을 자아낸다. 마치 한국 단색화를 보는 느낌이다. 격자 속의 무수한 점은 김환기의 ‘점화’를 연상시킨다. 아그네스 마틴은 미니멀리스트로 인식되지만, 작가 본인은 스스로 ‘추상표현주의 작가’라고 말하며 동양의 선(禪) 사상을 작품에 반영한 작가다.

그림 B는 얼마 전 타계한 한국의 대표적인 단색화 작가 박서보의 1960년대 초기 묘법이다. 캔버스 위에 반복되는 격자와 모노크롬 그리고 명상적 분위기는 한국 단색화가 미국의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과 많이 닮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색화 작가들이 서구의 미니멀리즘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한국 단색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이우환이다. 그는 일본 모노하의 이론적 토대와 작품 활동을 해 온 작가다. ‘모노’는 ‘사물’을 뜻한다. 모노하는 ‘물파(物派)’이다. 모노하 운동은 미셸 푸코의 ‘인간은 죽었다’라는 명제에서 탄생한 운동이다. 인간의 이성보다 물질이나 사물을 강조한다.

이우환의 설치작품은 대개 돌, 유리, 철판과 같은 모노(사물)로부터 형성된다. 그의 작품은 하나의 모노만으로 성립하는 것은 거의 없다. 반드시 두 개 이상의 모노로 형성된다. 그리고 모노와 모노의 관계가 중요하다. 그가 작품에 즐겨 사용하는 모노인 철판은 인공적인 모노(사물)다. 그리고 돌은 자연적인 모노(사물)다. 이처럼 그는 이질적인 두 모노의 관계를 통해서 소통과 공감을 작품 속에서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 모노하의 대표적인 작가 이우환은 어떻게 한국의 단색화와 연관성을 가지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한국 단색화를 이끌어 왔다고 평가받는 박서보와 이우환의 개인적인 친분도 있지만, 1972년 한국에서 열린 제1회 ‘앙데팡당(Independant)’의 심사를 이우환이 맡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975년 한일 문화 교류 차원에서 진행된 일본 동경화랑의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Hinsek)전’을 통해서 이우환은 한국 단색화와 일본 모노하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물성을 탐구하는 점에서는 한국 단색화는 일본의 모노하와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 단색화는 집단의 미술 운동이 아닌 여러 이름만큼 개성 있는 작가 각자가 자신의 방식으로 다양한 미술 사조를 작품에 반영하여 독창성을 추구하였다. 이런 결과로 반세기의 ‘한국 단색화’는 모노크롬의 색채와 모노하의 물성, 미니멀리즘의 기법 그리고 동양의 선 사상이 가미된 추상표현주의 같은 여러 요소가 결합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프랑스 베르사유궁전(Chateau de Versailles)에 전시된 이우환 ‘관계항’. 사진 위키갤러리
프랑스 베르사유궁전(Chateau de Versailles)에 전시된 이우환 ‘관계항’. 사진 위키갤러리

모노크롬의 단순 번역인 단색화가 아니라 ‘한국 단색화’라고 해야

한국 단색화는 한류를 타고 세계 속으로 우리 미술의 예술적 가치를 알리는 첨병이 되고 있다. 이는 우리 미술의 자긍심이자, 자랑이다. 그러나 한국 단색화가 현재 우리나라 미술의 전부로 인식되거나 혹은 오롯이 우리의 독창적인 미술로 탄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한국 단색화에 대해 혹자는 서양 모더니즘의 ‘평면성’을 재해석한 시도는 좋지만, 왜 그런 시도가 필요했는지에 대한 답은 찾기 힘들다고 비판한다. 서양 모더니즘의 ‘평면성’은 그들의 미술사 흐름 속에서 역사성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의 단색화는 이런 개념을 분석 없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서구의 미술사상을 무분별하게 자기화하는 과정 없이 받아들인 것이므로 모방이고 껍데기라는 이야기이다.

한국 단색화의 탄생은 중국 도자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의 독창적인 상감기법의 고려청자나 순백의 조선백자가 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1970년대 서구 미술의 도입기에 모노크롬과 미니멀리즘 추상표현주의 그리고 일본의 모노하가 우리 미술가들에 의해 반세기 동안 다듬어져서 우리나라 고유의 ‘한국 단색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것은 서구의 모노크롬과 닮은 듯 다른 것이고, 메마른 미니멀리즘과 다른 것이고, 물성을 탐구하는 모노하와도 다른 것이다. 한국 단색화는 다양한 미술적 요소가 한국의 미술 토양에서 우리 미술가들의 손길을 통해 ‘한국의 것’으로 재탄생한 우리의 유산이다.

이런 점에서 명칭도 이제는 모노크롬의 단순 번역어인 ‘단색화’가 아니라, 중국 도자기가 우리나라에 건너와 고려청자, 조선백자가 되었듯이 ‘한국 단색화’로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