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풍광을 묘사한 시로는 만당(晩唐) 때 두목(杜牧)이 지은 ‘산행(山行)’이 유명하다. “멀리 비스듬한 돌길 돌아 차가운 산 오르는데, 흰 구름 생긴 곳에 사람들 집이 보인다. 수레 멈추고 앉으니 늦가을 단풍 숲 사랑스러워, 서리 맞은 잎이 이월의 꽃보다 붉어라(遠上寒山石徑斜, 白雲生處有人家. 停車坐愛楓林晚, 霜葉紅於二月花).” 서늘한 가을날이지만 현란한 단풍 숲이 있어 오히려 아늑함과 따뜻함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늦가을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아무래도 사람의 마음을 쓸쓸하게 만든다. 이백(李白)의 ‘추사(秋思)’가 그러한 정경을 표현하고 있다. “어제 같았던 봄볕 따뜻한 날, 푸른 나무에 꾀꼬리가 울었다. 무성하던 풀들도 빛을 잃어, 스산하게 서늘한 바람 불어온다. 가을날 나뭇잎 떨어지는데, 찬 달빛에 귀뚜라미 소리 슬프다. 앉아서 꽃다운 풀들 시듦을 근심하자니, 흰 이슬이 무성한 꽃잎 떨어뜨린다(春陽如昨日, 碧樹鳴黃鸝. 蕪然蕙草暮, 颯爾涼風吹. 天秋木葉下, 月冷莎鷄悲. 坐愁群芳歇, 白露凋華滋).”
그래서 늦가을에 대한 일반적인 감상은 슬픔이거나 외로움이다. 전국시대 말기 초(楚)의 송옥(宋玉)이 장편의 ‘구변(九辯)’ 첫머리에서 이렇게 읊었다. “구슬퍼라, 가을날의 기운이여. 쓸쓸하여라, 풀잎과 나뭇잎은 시들어 떨어지네. 처량하여라, 먼 나그네 길에 있는 듯하니. 산에 오르고 물가로 가 떠날 사람 보내는 것 같구나(悲哉, 秋之爲氣也. 蕭瑟兮, 草木搖落而變衰. 憭栗兮, 若在遠行. 登山臨水兮, 送將歸).” 당 중기 유우석(劉禹錫)의 ‘추풍인(秋風引)’은 가을과 외로움을 다음과 같이 연결 짓고 있다. “어디서 가을바람 이르렀는지, 쓸쓸히 기러기 떼 보낸다. 아침 되자 뜰 안 나무에 온 것을, 외로운 나그네 가장 먼저 듣는다(何處秋風至, 蕭蕭送雁群. 朝來入庭樹, 孤客最先聞).”
가을날에 느끼는 슬픔과 외로움을 가장 잘 나타낸 시로는 흔히 두보(杜甫)의 ‘등고(登高)’가 첫손에 꼽힌다. “바람 급하고 하늘 높을 때 원숭이 울음 애달프다. 여울 가는 맑고 모래도 흰데 새 날아 돌아간다. 끝도 없이 나뭇잎 쓸쓸히 떨어지고, 쉬지 않는 장강은 넘실넘실 몰려온다. 만 리 길 슬픈 가을에 늘 나그네 돼, 백 년 세월 병 많은 몸 홀로 높은 곳 오르다. 어렵고 괴로운 나날 귀밑머리에 서리 무성해짐을 한하나니, 힘에 겨워 새삼스레 막걸리 잔을 멈춘다 (風急天高猿嘯哀, 渚淸沙白
鳥飛回. 無邊落木蕭蕭下, 不盡長江滾滾來. 萬里悲秋常作客, 百年多病獨登臺. 艱難苦恨繁霜鬢, 潦倒新停濁酒杯).” 명(明)의 평론가 호응린(胡應麟)과 청(淸)의 주석가 양륜(楊倫)은 각각 ‘시수(詩藪)’와 ‘두시경전(杜詩鏡銓)’에서 이 시를 두보의 칠언율시 중 최고의 작품으로 높이 받들었다.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기도 하다. ‘시경’의 ‘겸가(蒹葭)’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갈대 푸릇푸릇하더니 흰 이슬이 서리가 됐네. 그리운 그 사람은 물 저 한쪽에 있구나(蒹葭蒼蒼, 白露爲霜. 所謂伊人, 在水一方).” 여기에서 ‘소위(所謂)’는 ‘이른바’로 번역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 3000년 가까이나 된 옛날의 말을 후대의 용법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그리고 ‘흰 이슬이 서리가 되다’라는 구절은 후대 시가들에서 가을 정경을 묘사할 때 하나의 관용어처럼 상투적으로 쓰인다.
그리움의 대상은 다양하겠지만, 한나라 이래로 변방 이민족과의 전쟁이 잦아지면서 전쟁터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거나 그리워하는 정경을 시인들이 즐겨 묘사했다. 이백(李白)이 민가의 형식을 빌려서 지은 연작시 ‘자야오가(子夜吳歌)’의 ‘가을 노래(秋歌)’가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예의 하나다. “장안 하늘에 한 조각 달 뜰 때, 온 성안 집집마다 들리는 다듬이질 소리. 가을바람 끝없이 불어오니, 온통 변방 옥관을 향한 정이라네. 어느 날에나 오랑캐 무찌르고, 내 님의 먼 나그넷길 그치게 하려나(長安一片月, 萬戶擣衣聲. 秋風吹不盡, 總是玉關情. 何日平胡虜, 良人罷遠征).”
장적(張籍)은 ‘추사(秋思)’라는 작품에서 가을이 되어 가족이 그리워지는 절절한 마음을 이렇게 드러냈다. “낙양성 안에서 가을바람 보고, 집안에 보내는 편지 쓰려니 뜻이 만 겹이나 쌓인다. 급히 서둘러 못다 한 말 있을까 거듭 걱정돼, 길 갈 사람 떠날 때 봉함 다시 열어보네(洛陽城裡見秋風, 欲作家書意萬重. 復恐匆匆說不盡, 行人臨發又開封).”
역대의 시가들에서 가을날의 쓸쓸함이나 그리움이 극도에 이르면 간혹 ‘단장(斷腸)’으로 표현된다. 백거이(白居易)는 ‘모립(暮立·해 질 녘에 서서)’이란 절구의 후반에서 다음과 같이 그러한 마음을 드러냈다. “네 계절 가림 없이 마음은 언제나 괴롭지만, 그중에서도 애가 끊어지는 것은 가을이로다(大抵四時心總苦, 就中腸斷是秋天).”
‘단장’이란 글자 그대로 창자가 끊어지는 듯이 슬프다는 의미다. 이백도 ‘청평조(淸平調)’에서 “무산의 꿈속 사랑에 하염없이 애가 끊어진다(雲雨巫山枉斷腸)”고 읊은 적이 있다. 남송 초의 저명한 여류 문인 주숙진(朱淑眞)의 시와 사는 각각 ‘단장시집(斷腸詩集)’과 ‘단장사(斷腸詞)’로 전해진다. 불우한 환경에서 처절한 감정을 나타낸 작품이 많아서 그 작품의 편집자가 그러한 이름을 붙였다.
이 단어에는 특별한 고사가 있다. 동진의 간보(干寶)가 지은 ‘수신기(搜神記)’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산에서 어린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서 내려오자 어미가 집까지 쫓아왔다. 새끼를 마당의 나무 위에 묶어 놓으니 어미가 사람에게 애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사람이 새끼를 때려죽였다. 이를 본 어미는 슬프게 울부짖으며 나무에 머리를 처박고 죽었다. 어미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 반년이 지나지 않아 그 집 사람들이 모두 역병에 걸려 다 죽었다. 그 뒤 유의경(劉義慶)은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다음과 같은 일화를 실었다. 동진의 환온(桓溫)이 배로 싼샤(三峽)를 지날 때 한 부하가 어린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 왔다. 어미가 슬피 울며 백여 리나 쫓아오다가 배에 뛰어올라 죽었다. 배가 꿈틀거려 갈라 보니 창자가 모두 끊어져 있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이런 고사에서 ‘단장’이란 말이 쓰이게 됐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후한(後漢) 말의 여류 문인 채염(蔡琰)이 지은 장편 시 ‘호가십팔박(胡笳十八拍)’에 “기러기 높이 날아 아득하여 찾기 어렵고, 헛되이 애가 끊어지니 마음만 쓸쓸하다(雁飛高兮邈難尋, 空斷腸兮思愔愔)”는 구절이 보인다. 또 동시대의 조비(曹丕)가 쓴 ‘연가행(燕歌行)’ 2수의 제1수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스산한 가을바람에 날은 찬데, 풀잎 나뭇잎 흔들려 떨어지자 이슬이 서리 됐다. 제비 떼 돌아가고 기러기 남으로 날 때, 나그넷길 떠도는 그대 생각에 애가 끊어진다(秋風蕭瑟天氣涼, 草木搖落露爲霜. 群燕辭歸鵠南翔, 念君客遊思斷腸).”
만추(晩秋)에 느끼는 단장의 그리움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는 단연 원(元)의 마치원(馬致遠)이 지은 산곡(散曲) ‘천정사(天淨沙)’가 꼽힌다. 여기에는 ‘추사(秋思)’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마른 덩굴, 늙은 나무, 해 질 녘 까마귀. 작은 다리, 흐르는 물, 사람의 집. 옛길, 서쪽 바람, 야윈 말. 지는 해 서쪽으로 떨어지니, 애가 끊어지누나! 내 님은 하늘 저 끝에 있으니(枯藤老樹昏鴉. 小橋流水人家. 古道西風瘦馬. 夕陽西下, 斷腸人在天涯).”
‘산곡’은 원대에 유행하던 시가의 한 형식이다. 사와 마찬가지로 악곡에 붙이는 가사다. 악곡 명은 ‘곡패(曲牌)’라 한다. 이 ‘천정사’의 특징은 모든 구절이 두 자씩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구절도 ‘단장/인재/천애’로 읽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의 거의 모든 자료에 ‘단장인/재천애’로 풀이돼 있다. 따라서 “애끓는 이, 하늘 끝에 있네”라는 식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잘못된 것이다. 마치원보다 선배인 백박(白樸)의 ‘천정사’ 여러 편에도 마지막 구절이 모두 ‘소교/유수/비홍(小橋/流水/飛紅)’이나 ‘백초/홍엽/황화(白草/紅葉/黃花)’ 등과 같이 돼 있다. 후배인 장가구(張可久)의 ‘어가/창입/노화(漁歌/唱入/蘆花)’도 같다.
늦가을이 왔나 싶었는데 어느새 초겨울 날씨로 변해 버렸다. 11월 중순도 채 안 된 때라 적이 당혹스럽다. 만추의 정취를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한 사이에 계절이 바뀌어 아쉬운 마음에 가을 시 몇 편을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