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법민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 단장
고려대 기계공학, 미 텍사스 A&M대 바이오엔지니어링 석·박사, 현 고려대 바이오의공학부 교수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김법민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 단장 고려대 기계공학, 미 텍사스 A&M대 바이오엔지니어링 석·박사, 현 고려대 바이오의공학부 교수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세계적인 의료 기기 산업 규제 강화 추세 속에서, ‘개발된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김법민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이하 사업단) 단장은 11월 20일 인터뷰에서 “사업단은 국내 기업이 효율적으로 규제에 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사업단은 국내 의료 기기 산업에서 ‘일관성 있는 연구개발(R&D) 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2020년에 출범한 단체다. 그전까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서 각각 의료 기기 R&D를 지원한 탓에, 지원 체계가 통일되지 않았다.

현재 사업단은 3여 년 동안 497개 과제를 통해 국내 기업들을 지원해 왔다. R&D 단계부터 시장 진입에 이르기까지 전 주기를 지원한 덕분에, 지난해에만 사업단을 거친 120개 의료 기기 품목이 정부의 인허가를 받았다. 김 단장은 “(사업단 출범 전에는)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기술 개발이 사업화로 이어진 경우가 적었다”라며 “사업단의 지원으로 앞으로 인허가 건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년도 한국 전체 R&D 예산은 25조9000억원으로 올해 대비 16.6% 삭감된 상태다. 김 단장은 “R&D 자금 확보가 전보다 더 어려워진 데다, 글로벌 의료 기기 공급망이 망가지면서 한국의 보건 안보가 악화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R&D 지원 체계를 이어가기 위해 사업단의 후속 사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사업단은 2025년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세계시장에 통하는 국산 의료 기기가 적다. 이유는.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제조 강국이다. 의료 기기를 제조할 역량이 풍부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의료 기기는 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고, 실제 임상에 사용돼야 한다. 글로벌 진출을 위해 안전하게 쓸 수 있다는 증거가 쌓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한국에서 얼마나 사용됐고, 얼마만큼 수가를 보전받고 있느냐 등의 데이터가 중요하다. 문제는 한국에서 국산 의료 기기를 많이 안 쓴다는 것이다. 특히 파급 효과가 큰 상급종합병원의 국산 의료 기기 활용률은 약 11.3%에 불과하다. 여기에 복잡한 규제를 모두 통과해야 하니, 데이터가 쌓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해외 의료 기기 기업 중에선 100년 역사를 가진 기업이 많다. 의료 기기는 소량 다품종이라는 특징이 있어, 다국적 기업은 세계에서 활용되는 의료 기기를 인수합병(M&A)하며 품목을 늘린다. 품목이 쌓이면 해당 기업의 제품은 더 신뢰받고, 임상 현장에서 전 세계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의료 기기 산업에서 한국은 후발 주자로, 아직 이 단계를 거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 기기 산업 규제는 강화되는 추세다.
“환자의 생명에 직접 영향을 주는 품목이기 때문에 규제가 강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의료 기기 관련 규제가 좀 느슨했던 몇몇 나라에서 나쁜 사례가 발생한 탓에 규제는 점점 강화되고 있다. 규제 측면에서 한국은 선진국에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다만 규제가 지나치게 강화되면 신기술이 임상 현장에서 사용되기 어렵다. 그래서 강화되는 규제 속에서 개발된 기술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빠르게 활용할 수 있게 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많다.”

규제 효율화를 위해 사업단은 무엇을 하고 있나.
“기본적으로 기술 개발 기업이 규제에 대비하게 하는 것이 효율화의 한 방법이다. 또 사업단은 식약처,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등으로 구성한 ‘전담 데스크 활성화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 사업단을 중심으로 매년 다섯 번 이상 협의체를 만들어서 어떤 이슈가 발생하면 공동으로 논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의료 기기를 만들었는데 기존 식약처의 품목 분류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품목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 기간이 6개월 소요된다. 사업단은 이처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기준을 미리 만들게 한다. 시장에 진출하는 소요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인 지원 방안은.
“9개의 ‘K&P(KMDF&Platforms) 플랫폼’을 통해 전 주기를 지원하고 있다. 기술을 개발하면 시험 검사를 해야 하고,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후 시장 진출을 위해 목표 시장에 대한 정확한 분석, 비즈니스 모델 구성 등을 미리 준비하게 돕는 것이 핵심이다. 지원 대상 기업을 국내 (의료 기기 산업) 인프라에 연결해주기도 한다. 시장 진출까지 발생하는 많은 문제를 플랫폼 내 네트워킹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 

기존 R&D 지원 체계와 다른 것은 PM(프로젝트 매니저) 제도다. 사업단의 PM들이 기업에 자문을 하고, 기업을 국내 인프라에 연결해 준다. PM 제도를 통해 올해만 80개 과제에 대한 자문을 제공했다. 올해 11월 1일에는 47개의 의료 기기 기업과 28개 투자자 간 맞춤형 기업 설명(IR)을 추진했는데, 당일 1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또한 27개 기업의 투자 목적 미팅 일정이 정해지는 등 긍정적인 성과를 냈다.”

사업단의 10대 과제로 선정된 국내 인슐린 펌프 개발 기업 ‘이오플로우’는 최근 미국에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휘말렸는데.
“안타까운 상황이다. 최근 1년 반 동안 1000억원 이상 규모의 M&A가 7~8건 정도로 많았다. 그중 이오플로우는 대표적으로 영업이익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기술력을 인정받아 1조원 규모의 딜이 생긴 굉장히 유니크한 사례였다. 이오플로우는 본안 소송에 자신 있다는 입장이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매출이 얼마나 발생하느냐에 따라 M&A가 지속될지 여부가 결정될 것 같다. 빨리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국내 의료 기기 산업이 선진국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한국 의료 서비스 수준은 세계적이다. 한국 병원에서 받는 피드백만으로도 의료 기기는 대폭 개선될 수 있다. 국산 제품이 피드백을 받아 개선하는 선순환이 생겨나 국산 제품이 신뢰를 얻어야 한다. 또 메드트로닉 같은 기업처럼 M&A를 통해 품목군을 다양하게 만들고, 그들만의 브랜드 가치로 신뢰를 얻는 기업도 나타나야 한다고 본다. 의료 기기 산업에서 국가 R&D 정책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국내 의료 기기 제조 기업은 4000개가 넘는다. 사업단이 구축해 놓은 플랫폼과 네트워크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Plus Point

Interview 이진우 연세대 국제캠퍼스 부총장
“범부처의료기기사업단, 임상 현장·기업 연결해 산업 발전 기여”

이진우 
연세대 국제캠퍼스 부총장
연세대 의과대 학·석·박사, 
현 대한의학회 부회장, 
전 대한정형외과 연구학회 회장 사진 이진우
이진우 연세대 국제캠퍼스 부총장 연세대 의과대 학·석·박사, 현 대한의학회 부회장, 전 대한정형외과 연구학회 회장 사진 이진우

사업단에 대한 의료 현장의 시각은 어떨까. 후속 사업의 기획 총괄위원회 공동 위원장을 맡을 예정인 이진우 연세대 국제캠퍼스 부총장(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임상의)의 평가를 들어봤다.

한국 의료 기기 산업이 최우선으로 개선해야 할 점은.
“국산 제품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전문가가 사용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내시경만 봐도 일본 제품이 국내 시장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 병원, 산업의 전반적인 협력 네트워킹이 중요하다.”

임상의로서 사업단을 평가한다면.
“사업단은 분절돼 있던 지원 체계를 하나로 묶었다. 또 출범 초기부터 대한의학회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면서 2021년 4월부터 임상 현장에 함께 컨설팅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갖추고 있다. 제품 개발 기업과 학회를 연결하는 장을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사업단이 학회와 어떻게 협력했나.
“연례학술대회가 있을 때 산업 관계자가 와서 학회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했다. 한 기업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굉장히 문턱이 높다. 기업 입장에서 임상 학회를 통해 인지도를 높이면서 임상 현장에 제품이 사용될 기회를 확보해 줬다. 또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 현장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가치 탐색 포럼’을 개최하기도 했다.”

후속 사업의 기획 총괄위원회 공동 위원장을 맡게 됐는데.
“최근 디지털 헬스와 관련해 여러 의료 기기가 이슈가 됐다. 공동 위원장으로서 이런 의료 기기를 어떻게 현장에 잘 적용할지, 국가 지원을 어떻게 끌어낼지 등을 고민하고 있다. 안정적인 한국 의료 기기 산업이 차세대 먹거리가 될 수 있도록 후속 사업을 잘 기획하겠다.”

이주형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