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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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안전 통화로 꼽히던 일본 엔화의 가치가 올 들어 주요국 가운데 달러 대비 가장 많이 떨어졌다. 근로자 임금 수준도 경쟁 선진국에 비해 낮다. 20세기 후반 사회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로 불렸던 일본 사회의 빈부 격차도 커졌다. 반면,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구인난을 겪을 정도로 고용 시장은 좋은 편이다. 물가 급등으로 고령자 생활이 팍팍해졌지만, 공적 연금제도는 비교적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사상 최대 이익을 기록한 상장사도 많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중심의 기초 제조업도 여전히 탄탄하다. 20~30여 년 전에 비해 일본이 크게 달라진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저성장의 장기화와 초고령화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올해 일본에서 일어난 10대 이슈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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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금 격차 광고 회사 덴츠에서 40~5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노후 관련 가장 궁금한 정보를 물었더니, 연금 구조와 노후 자금이 1, 2위였다. 65세 이상이 인구의 30%에 육박하는 일본에서 고령자는 물론 중년층도 연금이 최대 관심사였다. 노후 격차(老後格差)나 연금 격차(年金格差) 용어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다. 2022년 기준 전 세대 연평균 소득은 545만7000엔(약 4700만원)인 반면 ‘고령자 세대’는 318만3000엔(약 2730만원)에 그쳤다. 고령자가 노후에 받는 월평균 연금액은 국민연금 5만6479엔(약 49만원), 후생연금 14만5665엔(약 125만원) 정도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며 개인 자산을 축적한 일본인이 많지 않아 고령 빈곤층이 늘고 있다.

20여 년 이어진 장기 저성장과 초고령화로 일본 사회와 일본인이 크게 바뀌고 있다. 사진은 2023년 11월 하순 도쿄 시내. 사진 정구형 여행 작가
20여 년 이어진 장기 저성장과 초고령화로 일본 사회와 일본인이 크게 바뀌고 있다. 사진은 2023년 11월 하순 도쿄 시내. 사진 정구형 여행 작가

2│다사 사회 도쿄 등 수도권에서 화장장 부족으로 사망 후 열흘이 지나도 고인을 보내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한다. ‘고령화 사회’의 다음 단계인 ‘다사 사회(多死社會)’에 접어들며 나타난 현상이다. 인구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고령자가 한꺼번에 사망 연령에 달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급증하는 사회를 지칭한다. 지난해 일본 국내에서 사망한 일본인은 전년보다 9% 늘어난 157만 명을 기록, 20년 전보다 50% 증가했다. 사망자는 2040년께 약 167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전통적인 장례 방식도 바뀌고 있다. 가족이 적거나 경제적 여유가 없는 유족 사이에서 장례식을 하지 않고, 고인의 시신을 곧바로 화장한 뒤 이별하는 직장(直葬)이 늘어났다.

3│소자화 일본에서는 ‘저출산’ 대신 ‘소자화(少子化)’를 쓴다.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2년으로, 어린이 수 감소 추세를 소자화로 정의했다. 소자화 기점은 1974년으로, 출산율이 2.1명 밑으로 떨어진 연도다. 경제 저성장이 소자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립사회보장연구소가 2022년 발표한 출생 동향 조사에 따르면, 이상적인 수의 자녀를 낳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자녀 양육과 교육에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52.6%에 달했다. 미혼(未婚)도 저소득과 연관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4│파워 커플 지난해 도쿄 중고 아파트 가격이 평균 9800만엔(약 8억4200만원)을 기록, 2004년에 비해 2.2배 뛰었다. 장기 저금리로 대출 부담이 떨어진 데다 ‘파워 커플(power couple)’이 대거 구매에 나서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정치인, 사업가, 유명 배우, 스포츠 스타 부부를 파워 커플로 지칭하지만, 일본에선 ‘고소득 전문직 맞벌이 부부’를 뜻한다. 부부 모두 연 수입 700만엔(약 6000만원) 이상 가구로 정의된다. 이들은 구매력이 크고, 정보 수집과 확산에 뛰어나다. 공무원, 대기업 직원, 의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 전문직 부부가 많다. 지난해 파워 커플은 이 중 31만 가구에 달해 5년 전보다 5만 가구나 증가했다. 3인 다자녀를 가진 가구도 드물지 않고, 정년퇴직 이후 부부 둘 다 연금을 받는 덕분에 평생 소비 활동도 왕성하다. 
5│난관 대학 일본에도 사회 통념적으로 인정하는 ‘명문대’가 있지만, 공개적으로 대학 순위를 매기지는 않는다. 대입 학원가에서는 ‘명문(名門) 대학’ 대신 ‘난관(難關) 대학’으로 표시한다. 대학 수는 2022년 기준 총 790개이며, 수험생이 입학하기 어려운 난관 대학은 국공립 20여 개, 사립대 15개 정도다. 국립대에선 제국(帝國)대학에 뿌리를 둔 도쿄대, 교토대, 도호쿠대, 규슈대, 홋카이도대, 오사카대, 나고야대 등 7개가 선호된다. 히토쓰바시대, 도쿄공업대, 도쿄예술대, 도쿄외국어대, 고베대도 인기가 높다. 머리글자를 따서 ‘소케이조리’로 불리는 와세다대, 게이오대, 조치대, 도쿄이과대가 4대 사립대로 꼽힌다. 명문 대학이 도쿄에 몰려 있지 않고, 우수한 지역 국립대가 많아 수험생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덜하다. 인재들이 대학 졸업 후에도 그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는 경향이 높다.
6│춘투 ‘춘계 투쟁(春季鬪争)’을 줄인 말로, 일본 경제가 고도 성장기에 진입한 1950년대 중반 이후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노사 협상은 반세기 이상 극한 투쟁 없이 평화롭게 진행되는 게 큰 특징이다. 아베 정권 말기부터 ‘관제 춘투(官製春鬪)’ 용어도 등장했다. 2000년대 들어 매년 1~2% 정도로 임금 인상이 억제되자 정부가 앞장서서 기업 측에 임금을 올리라고 압박하는 모양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올 초 3% 이상의 임금 인상을 기업 측에 요구했다. 올해 춘투에서 임금 인상률은 1990년대 초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최고 기록을 세웠다. 제조 대기업들은 작년 평균 2%의 두 배를 넘는 임금 인상을 단행했다.
7│취활 ‘취직 활동(就職活動)’의 줄임말로, 대학 졸업 예정자의 구직 활동이다. 대졸 신입사원 채용은 지난 3월 시작돼 10월 말에 마무리됐다. 취준생이 가장 선호하는 회사는 문과에서 니토리, 도쿄해상일동화재보험, JTB그룹, 패스트리테일링, 이토추상사, 이과생의 경우 소니그룹, 아지노모토, 미쓰비시중공업, Sky, NTT데이터순이다. 올해 신입사원 채용 규모가 지난해보다 늘어났고, 대졸 초임은 큰 폭으로 뛰었다. 2024년 봄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한 구인 배율은 1.71을 기록, 지난해 1.58보다 올라갔다. 구인 배율은 대학생 1인당 공급되는 민간 기업의 일자리 수를 뜻한다.
8│야미 바이트 ‘야미(闇) 바이트’의 충격적인 실상이 최근 공개됐다. ‘어둠의 아르바이트’ 또는 ‘불법 아르바이트’로 번역되는 야미 바이트는 범죄 행위를 대행하는 아르바이트를 지칭한다. 일본 경찰청은 2022년 한 해 동안 특수 사기에 연루됐다가 검거된 2458명 중 473명(약 19%)이 20세 미만이라고 밝혔다. 법죄 집단은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나 구인 사이트 등에 ‘고액 아르바이트’ ‘쉬운 일’ 등을 내걸고 청소년을 모집한다. 청소년들은 부족한 ‘용돈 벌이’를 위해 범죄자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빈곤층이 많아지고, 1인 가구 증가와 디지털화에 따른 전통적인 가족 해체에도 원인이 있다.

9│오사카·간사이 세계 박람회 세계 박람회가 2025년 4월 13일부터 6개월 동안 열린다. 이번 세계 박람회의 테마는 ‘생명이 빛나는 미래 사회의 디자인’이다. 인류의 SDGs(지속 가능 개발 목표) 달성에 공헌하고, 일본의 국가 전략인 ‘5.0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다. 

5.0 사회는 경제 발전과 사회적 과제를 조화시킨 ‘인간 중심 사회’를 뜻한다. 일본은 고도 경제성장기에 진입한 시기에 도쿄올림픽(1964년)에 이어 오사카 세계 박람회(1970년)를 개최했다. 일본이 55년 만에 여는 세계 박람회를 계기로 본격적인 경제 회복에 들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10│2024년 문제 오사카·간사이 세계 박람회가 ‘2024년 몬다이(問題·문제)’로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4년 몬다이는 내년 일본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각종 문제를 말한다. 

지난 2019년 노동기준법 개정 이후 건설, 운수, 의료 분야에 대해 예외적으로 인정됐던 시간외 노동 상한 규제의 유예 기간이 내년 3월 말 종료된다. 건설 업계의 경우 ‘4주 8폐소(건설 현장의 주휴 2일제)’가 새해 4월부터 적용된다. 잔업 예외 규정이 없어져 건설 인력 부족 현상이 더 심해지고, 인건비가 대폭 오를 전망이다. 버스, 택시 등 운수 업계와 의료 업계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의료 시장은 고령화에 따른 환자 증가와 맞물려 의사와 간호사 부족이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