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6년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스포츠 에이전트인 제리 맥과이어는 할리우드 최고 명대사인 “쇼 미 더 머니(Show me the money)”를 외쳤다. 그러나 이보다 더 대단한 대사는 제리 맥과이어를 믿어주는 유일한 스포츠 선수, 로드 티드웰의 부인이 한 말이다. 영화 속에서 로드 티드웰의 부인은 제리 맥과이어를 찾아가 왜 자신의 남편이 물침대 광고밖에 계약하지 못 했냐고 따지며 “그(티드웰)는 신발, 자동차, 의류, 탄산음료 등 유명인이 찍는 광고 빅 4를 찍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하버드대 로스쿨,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석사, 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전 백악관 경제정책 보좌관,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저자
최근 미국 대표 소비 상품인 이 네 가지 중 두 가지에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이는 미국 경제를 재편할 것이다. 유럽인에게 미국인을 설명해달라고 하면 아마 ‘큰 사람과 큰 자동차’라고 답할 것이다. 물론 고정관념이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미국인은 다른 대서양 연안 국가들보다 몸무게가 20% 더 나가고 32% 더 큰 차를 운전한다. 이는 단순히 파운드와 인치의 문제가 아니다. 식품(탄산음료를 포함)과 자동차는 각각 1600만 명과 440만 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미국 경제의 핵심 동력이다. 그러나 조만간 이 규모는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트윙키’와 ‘V8 엔진’에 길든 미국 소비자의 입맛이 변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답은 아이들과 화학자에게서 찾을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자동차에 별로 관심이 없다. 1980년대 미국 고등학생의 80%가 운전면허를 땄지만, 그 수치는 이후 40%로 떨어졌다. 오케스트라 청중처럼 미국 운전자의 평균연령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20세보다 70세가 운전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
1960년대 당시 자동차는 전투기를 모티브로 한 꼬리지느러미(테일 핀)와 투톤 도색으로 더 스타일리시했다. 자동차 제조 업체들은 디트로이트 뒷골목에서 시제품을 쫓아다니는 자동차 잡지 파파라치들로부터 새로운 디자인을 숨겨야 했고, CEO들은 TV를 통해 자동차 신모델 공개 행사를 열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 빌 포드 포드자동차 회장은 탄성을 듣지 못하는 반면, 애플의 팀 쿡은 듣는다. 스마트폰을 몇 번 터치하면 우버나 리프트, 집카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에 대한 미국인의 관심이 줄어든 것은 자율주행차가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율주행차가 보행자를 들이받는 경미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자율주행차는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 머지않아 자동차 보험 회사들은 인간 운전자를 보장하는 보험에서 손을 떼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여기에 더해 가솔린 자동차보다 부품 수는 90% 더 적고 자동차 제조에 필요한 작업자 수는 30% 덜 필요한 전기자동차(EV)도 있다. 탄산음료 소비가 감소하는 이유는 아이들의 취향이 변해서가 아니라 과체중인 사람들의 입맛이 변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1억3500만 명이 넘는 미국 성인의 절반이 당뇨병 또는 당뇨병 전 단계에 해당한다. 그러나 지난 6개월 동안 허쉬(Hush), 몬델레즈(Mondelez) 같은 스낵 회사 주가는 약 30% 하락했다. 식품업 투자자들과 경영자들은 ① ‘오젬픽(Ozempic)’이나 ‘위고비(Wegovy)’ 같은 식욕 억제 약물 사용이 증가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2021년 한 연구 결과 이런 약을 1년 동안 복용한 사람들은 칼로리 섭취량을 줄이고 체중의 약 15%를 감량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비만 치료제를 복용하는 환자의 65%가 설탕이 든 탄산음료를 덜 마셨다. 실제로 월마트의 미국 부문 CEO 존 퍼너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비만 치료제 때문에) 장바구니 수요가 약간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며 “(구매) 단위가 작고 (구매 식품당) 칼로리도 낮다”고 밝혔다. 식욕이 억제되면서 스낵, 탄산음료 등 고칼로리 식품 구매가 둔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신약들도 장애물은 있다. 장기간 복용하면 부작용이 나타나거나 식욕 억제 효과가 사라질 수도 있다. 또 이 약들을 먹으면서 크리스피 크림 도넛이나 마운틴듀를 먹지 못하게 되면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 한편, 어떤 약을 누구를 위해 보장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보험사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만약 (보험사) 고객의 살이 빠진다면, 심장마비에 걸릴 가능성이 작아지고, 값비싼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거나 전기 스쿠터에 의존해야 할 가능성도 작아진다.
미국인이 자동차와 음식에 대한 지출을 줄인다면 그 돈은 어디로 갈까. 이런 추세는 스트리밍 구독, 콘서트 투어, 비디오 게임, 가족 휴가 등 엔터테인먼트 경험에 더 많은 돈을 쓰게 할 것이다.
디즈니 테마파크에는 더 많은 팬이 방문하지만 미니의 빵집에서 지출하는 금액은 줄어들 수 있다. 마크 저커버그의 메타(옛 페이스북)나 구글의 스타라인은 잠재적 이용자에게 더 저렴해 보일 수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콘서트 가격을 더 높이거나 전 세계 스타디움에서 동시에 그녀의 노래를 공연할 도플갱어 아바타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크루즈선에서는 선상 뷔페의 음식을 줄여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제리 맥과이어’가 개봉할 당시에는 아이폰도, 스트리밍 플랫폼도, 전기차도 없었다. 5세대(5G)라는 단어는 주차장의 한 자리처럼 들렸고, ‘클라우드(cloud)’는 하늘에만 존재했다. 자동차와 설탕이 든 음료는 미국인 삶의 영원한 필수품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곧 잊힌 과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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