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실시된 네덜란드 조기 총선에서 반이슬람 포퓰리즘 성향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가 이끄는 자유당(PVV)이 제1당을 차지했다. 사진 AFP연합
11월 22일 실시된 네덜란드 조기 총선에서 반이슬람 포퓰리즘 성향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가 이끄는 자유당(PVV)이 제1당을 차지했다. 사진 AFP연합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권력을 특정 정치 세력에 위임하는 도구이자 국민이 무엇을 희망하고, 어느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을 선호하는지를 보여주는 수단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의 국가는 우파와 좌파로 구분되는 정당들이 집권해 왔으며 이들은 더 많은 유권자를 확보하기 위해 중도 성향을 강화해 오면서 유사한 모습이 되어갔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오면서 기존 정당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증가하면서 포퓰리즘(populism·대중주의)을 추구하는 대안 정당들이 세계 곳곳에서 등장해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처음에는 특정 이슈에 반응하는 일회성 흐름으로 여겨졌지만, 20년이 지나면서 이들은 점차 세력을 넓히면서 각국에서 집권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공학
박사, 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공학 박사, 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유럽서 반이민 내세운 극우 정당 약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에서는 반이민, 반세계주의, 반유로주의에 기반한 포퓰리즘 정당이 본격적으로 득세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중동 지역으로부터의 대규모 난민 유입은 반이민 정서를 강화시켰고 포퓰리즘 정당에 힘을 실어줬다. 폴란드, 헝가리 같은 동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난민 반대를 이슈로해 확산되던 우파 포퓰리즘 정서는 점차 서유럽으로 확대돼 영국독립당(UKIP)은 유럽연합(EU) 탈퇴를 이끌어내면서 세계를 뒤흔들었다.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 정당들은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에서 집권 연정에 참가하면서 현실 정치 세력으로 지위를 확실히 했고 작년에는 이탈리아에서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던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집권하기도 했다. 최근 독일에서도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헤세, 바이에른에서 실시된 선거에서 제2당의 지위를 차지하면서 역대 최고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실시된 네덜란드의 선거 결과는 유럽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11월 22일(이하 현지시각) 시행된 총선거에서 반이슬람 포퓰리스트 성향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가 이끄는 자유당(PVV)이 37석을 얻어 제1당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퇴임을 앞둔 마크 뤼테 총리가 이끄는 보수 성향의 인민당(24석)과 좌파 성향의 노동당-녹색당 연합(25석)을 앞지른 것이다. 빌더르스는 이슬람에 대하여 종교가 아닌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하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그는 이슬람 사원과 코란은 금지돼야 하고, 이슬람 여성의 히잡 착용을 범칙금 부과 대상이라고 역설해 왔다. 이민 봉쇄를 통한 탈이슬람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빌더르스는 2016년 네덜란드에서 모로코인을 줄여야 한다는 연설로 인해 증오 선동 협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이런 인물이 이끄는 자유당의 약진은 자유분방함과 개인주의의 본산으로 꼽히던 네덜란드가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네덜란드는 전통적으로 이민과 난민에게 개방적인 사회였다. 국가 차원에서 소수민족집단의 해방이라는 기치 아래 이민자들이 자신의 문화와 관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다문화주의 사회의 이상적 모델로 간주됐다. 네덜란드는 1960년대 이전까지 종교와 신념에 따른 각각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삶을 영위했는데 이것이 확대되면서 다문화주의를 현실에서 구현하게 된 것이다. 네덜란드는 1994년 차별금지법을 통해 차별철폐위원회를 설치했으며, 이슬람 방송국 설립 및 475개에 이르는 모스크 건립을 지원했다. 하지만 이민자 커뮤니티의 급성장이 계속되면서 갈등은 본격화됐다. 2022년 기준으로 1760만 명이 거주하는 네덜란드에서 260만 명은 해외 출생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곳은 튀르키예(옛 터키·25만 명)이며 수리남(17만8000명), 모로코(17만3000명) 등이 뒤를 잇고 있다. 

네덜란드의 모습은 21세기 들어 몇 차례의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면서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2002년 5월 이슬람을 퇴행적이라고 비난하고 이슬람 이민을 끝장내고 싶다고 발언한 핌 포르퇴인이 암살됐다. 2004년 네덜란드의 영화감독 테오 반 고흐가 모로코 출신의 이슬람 신자인 모하메드 부예리에 의해 살해됐다. 반 고흐 감독이 단편영화 ‘복종: 파트 1’을 제작했는데, 여기에서 이슬람을 여성에 대한 폭력을 조장하는 종교로 묘사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2015년을 전후한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대규모 난민 유입은 다시 반이슬람, 반난민 정서를 확산시켰다. 이와 더불어 네덜란드는 마약 카르텔을 중심으로 한 범죄와 폭력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국가 공권력이 취약해지며 일상이 위협받는 상황이 지속되자 강력한 국가를 선호하는 경향은 확산됐고 이는 포퓰리즘 극우 성향에 대한 지지로 연결됐다. 

2022년부터 본격화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주택 문제 역시 포퓰리즘 정당의 약진에 우호적인 환경을 제시했다. 연간 10만 명 수준의 이민자가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22만 명을 넘어서자 주택 부족 문제는 심각해졌다. 약 39만 채의 주택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자 임대료는 상승했고, 때맞춰 진행된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국민의 삶을 더욱 힘들게 했고 이러한 상황과 반이민 정서가 결합되면서 빌더르스가 이끄는 자유당은 세를 확장할 수 있게 됐던 것이다.

제1당 지위를 차지했지만 빌더르스가 총리가 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150석으로 이뤄진 네덜란드 의회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연정 파트너를 물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정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빌더르스는 종전의 입장을 완화하는 태도를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집권을 위해서는 극단적 주장을 완화해 지지 기반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멜로니 총리 사례와 같이 빌더르스가 기존의 극단적 주장을 완화하면서 자유당 주도의 연정을 구성할 것인지, 아니면 극우 정당을 배제한 타 정당 간 연합을 통해 새로운 연정이 구성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결과도 네덜란드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은 동일하다.

11월 19일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무정부주의 자본주의자를 자처하는 하비에르 밀레이가 당선됐다. 사진 AP연합
11월 19일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무정부주의 자본주의자를 자처하는 하비에르 밀레이가 당선됐다. 사진 AP연합

아르헨티나 극우파 밀레이 대통령 당선 

11월 19일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는 무정부주의 자본주의자를 자처하는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중앙은행 폐지와 달러 사용, 국영 석유 회사를 포함한 공공 부문의 대규모 민영화, 정부 지출의 절반 이하 수준 감축 등 그의 공약들은 현실성 없어 보이지만 끝이 없어 보이는 하이퍼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아르헨티나 국민은 어떤 결과가 나오든 현재보다는 좋을 것이라는 자포자기적인 기대 심리로 그를 지지했다. 페론주의로 대표되는 무분별한 재정지출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 것이다. 극단적 주장들의 일상화와 정치 세력화 그리고 집권은 세계적인 공통 현상이 되고 있다. 미국도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을 누르고 대통령에 다시 취임할 것이라는 전망이 강해지고 있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상황이 8년 만에 다시 재현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안정적인 정치 시스템을 자랑해 왔던 독일의 경우도 연정이 붕괴하고 극우 정당(AdF)이 약진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가 익숙했던 정치 시스템은 이제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기존 정당들이 변화하는 흐름을 도외시하고 명분과 관성에 사로잡혀 있는 사이 국민은 자기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키겠다는 결심을 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2024년 총선을 앞둔 우리의 경우 이러한 흐름과는 다른 기존 정당 간 세력 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대안의 목소리조차 없는 더 큰 불행한 상황인지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