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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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환경과 관련된 각종 문제와 사건들은 해결하기가 단순하지 않고, 서로 연결돼 있어 감추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한 번 시작되면 그 파급 효과가 속도와 크기 면에서 엄청나다. 복잡성, 연결성, 불확실성은 현대사회의 특징이면서 위기의 속성이기도 하다. 평상시 경영 환경에 대한 정보 수집과 공유, 의사 결정 과정, 이해 관계자 관계 관리 등은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시간을 가지면서 조율 과정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각종 문제와 사건이 위기로 발달됐을 때 평상시 제대로 작동하던 조직 운영 체계와 정보 수집 및 위기 의사 결정 과정이 마비될 수밖에 없다. 위기관리 대응의 신속성은 조직 전사적으로 해당 위기에 집중하고 있고 전사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또는 명확하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 잘못한 것, 우리가 앞으로 알아야 할 사실 등을 즉각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라는 말이다. 신속성은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라는 말과 같다. 과정의 침묵은 은폐가 된다. 발생한 사건·사고를 보는 사람들에게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이고 신뢰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강함수
에스코토스 컨설팅 대표 
성균관대 신문방송학 
박사 수료, 현 성균관대 
미디어문화융합대학원 겸임교수, 전 에델만코리아 이사
강함수 에스코토스 컨설팅 대표
성균관대 신문방송학 박사 수료, 현 성균관대 미디어문화융합대학원 겸임교수, 전 에델만코리아 이사

신속한 대응이 어려운 이유

많은 기업은 조직 내에 위기관리 관련 책임과 역할을 규정하고 전담 인력을 확보하면서 위기 예방과 대응을 위한 사전 준비 업무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실무적으로 위기를 겪어본 내부 인력들은 평상시 사전 준비를 해도 ‘신속’이라는 원칙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위기관리 매뉴얼에 입각해 위기관리팀 구성을 작동시키고 역할을 나눠 규정된 업무를 진행하지만, 외부에서 느끼는 대응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언론에서 “늑장 대응해 골든 타임(golden time)을 놓쳤다”고 비판하지만 위기가 발생했을 때, 상황 파악부터 의사 결정에 필요한 정보 확보가 바로 실시간 이뤄지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즉각 대응할 수 있겠냐며 실무자들은 한숨을 쉰다. 보통 실무자들은 상황 파악조차 하기 전에 즉각 대응하는 게 나은지, 구체적인 확신을 줄 만한 사실을 취합할 때까지 대응하지 않고 기다리는 게 나은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답은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지나치게 늦어진다는 것이다. 

우선, 무엇을 해야 하나. 이것은 위기 정보와 관련된 이야기다. 위기에 직면하면, 사방에서 질문이 쏟아진다.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를 가지고 답변을 요구한다. 현장을 파악하는 조직 내부 담당자들도 제대로 파악이 안 되는데, 전달할 말이 없다. 상황 파악에 따라 조직 내부에서 의사 결정이 되어 조치와 지시가 내려와야 이야기할 수 있는데, 섣불리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으니,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 자체를 일단 멈추게 된다. 숨기는 게 아니라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이라 기다리고 보는 꼴이 된다. 위기 발생 초기에 요구되는 신속성은 당신이 결정한 상황을 말하라는 것이 아니다. 책임 소재는 어디에 있고 회사는 책임을 질 것인가, 손해배상을 할 것인가, 대표이사가 직접 사과할 것인가 등을 당연히 지금 바로 결정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 그렇다고 어떤 커뮤니케이션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위기 시 정보 공백을 외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전문가 그룹의 활동 무대로 남겨 놓으면 안 된다.

신중하면서 신속한 대응 필요

위기 대응의 신속성은 위기 의사 결정의 신중성 토대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사실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중요한 사실의 데이터를 대략이라는 단어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순간 위기가 더욱 확산되는 경우가 있다. 바다에 원유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유출된 원유의 양은 환경 영향에 중요한 사실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한 직후 즉각적으로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유조선이나 공장 안에 보관된 원유량을 대략 파악해 1만t이라고 말하고 난 뒤, 유출된 원유량과 범위가 더 벌어지고 숫자가 맞지 않을 경우 ‘피해 축소’를 의도했다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위기 유형에 따라 다를 것이지만, 발생한 위기에서 전략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인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살펴보고 해당 사안에 대해서는 신중하면서도 신속성 있게 대응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렇게 대응해야 한다. 

“지금은 유출량의 정확한 숫자보다는 현장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 지금 전사적으로 모든 자원을 투입해 지역 관계자 협조를 받아 대응하고 있다.”

신속한 대응 성공 사례 ‘존슨앤드존슨’

위기관리의 성공 사례로 언제나 다뤄지는 존슨앤드존슨의 해열제 ‘타이레놀’ 복용 사망 사건의 경우, 즉각적인 리콜 결정과 사과 발표를 한 경우로 꼽힌다. 1982년 9월, 미국 시카고 지역에서 7명이 갑자기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시카고 교외 도시 엘크그로브빌리지의 12세 소녀가 감기 기운을 느껴 타이레놀 두 알을 먹고 등교했다가 쓰러져 숨졌다. 이어 성인 남녀 6명이 시중에서 구입한 타이레놀을 먹고 잇따라 사망했다. 부검 결과 이들의 몸속에서 청산가리가 검출됐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먹은 것이 바로 ‘타이레놀’이었고, 이후 미국 전역에서 약 250명이 타이레놀을 복용한 뒤 고통을 호소했다. 조사 당국은 누군가 통 속에 든 타이레놀 캡슐을 열어 청산가리를 채워 넣고 매장 진열대에 가져다 놓은 것으로 추정했다. 물론 존슨앤드존슨이 사건 발생 직후 곧바로 리콜을 결정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사건 발생 일주일을 넘기지 않고 미국 전역에서 유통 중인 타이레놀 3100만 병을 전량 리콜하고 캡슐형 생산 라인 폐쇄와 함께 광고를 중단하는 조치를 했다. 사건 발생 후 일주일이 된 시점이었다. 만약 당신이 이 회사 리더였어도 타이레놀이 사망 원인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쉽게 리콜을 결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 시점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도 똑같은 결정이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존슨앤드존슨 사례처럼 타이레놀 복용과 사망 간 인과관계가 불확실해도 추가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으니, 즉각 복용하지 말라고 강하게 커뮤니케이션하고 신속하게 판매를 중단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위기관리 담당자들을 만나면, 언제 신속하게 대응해 말하고 언제 침묵하면 될지 알려주는 교본 같은 것을 원한다. 사실 그런 것은 없다.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한지 판단하는 기준은 사태의 진실성과 심각성을 고려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최종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지, 최종적으로 무엇을 보호하고자 하는지, 우리의 결정이 다른 무엇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를 충분히 살피는 수밖에 없다. 다만, 위기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우선 능동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하기를 권한다. 진행 중인 위기 상황에서 기업은 위기를 투명하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인지시켜 신뢰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지금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라는 말밖에 할 것이 없어 입장이 난처하다고 인식하는 순간, 개인 의견을 이야기하고 감정을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하자. 위기 대응의 신속성은 전략이 아닌 전술이 돼야 한다.